재림교인 유산
글루데르 키스페
은혜의 여정
교회는 배우며 성장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에서 구원받고 구출된다는 것을 언제나 믿어 왔다.
우리 교회를 등장시킨 재림 운동에 설교를 통해 영감을 불어넣었던 침례교인 윌리엄 밀러는 1822년에 한 신조를 기록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개인적인 소신을 피력했다. “그리스도께서 정의가 요구하는 죄의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이 희생물의 머리 위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지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의 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1844~1863년
그리스도, 우리의 의, 이것은 현대 진리?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들은 초창기에 조셉 베이츠의 영향 덕분에 안식일과 하늘 성소를 포함한 현대 진리의 여러 다른 현안에 집중했다. 성소에 관한 주제는 여전히 죄인에게 희망을 주면서 하늘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재림 신도들의 이해를 증진시켰다. 베이츠는 안식일과 하늘 성소를 연관 지었다. 그는 요한계시록 11장 19절의 지성소로 가는 문이 십계명을 드러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결론 위에서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보다 십계명 준수에 더욱 초점을 두었고, 도덕적 율법은 우리에게 예수를 가리킨다고 제임스 화잇과 존 N. 앤드루스는 생각했다.1 1854년, 갈라디아서의 율법에 관한 J. H. 왜거너의 소책자에서는 갈라디아 3장 24~25절의 율법이 도덕법을 언급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라는 명백한 호소로 책의 내용을 마무리했다.2
왜거너의 책은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지는 못했다. 3년 뒤, 스티븐 피어스는 “도덕법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끄는 몽학선생이 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말하면서 왜거너의 견해에 대응했다.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체로 삼는 율법 제도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이다.3
1863~1888년
인간의 의에 초점을 맞추다
많은 재림교인들에게, 피어스의 입장은 복음보다 율법을 더 강조하는 것이고 안식일을 폐지하려는 비평가들에게 자신의 반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왜거너의 책자가 발행한 이후 30년간 우리 선구자들의 태도였다.
재림교회 창설자들은 신조를 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성경이 우리의 신조이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려는” 자신들의 헌신을 강조하면서 “교회 언약”을 채택했다.4
1872년, 유라이어 스미스는 우리 신조의 첫 부분을 만들었다. 그것의 두 번째 항은 이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이…우리의 모범으로 사셨고, 우리의 희생 제물로 죽으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해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다. 거기서 그분은 자신의 보혈로 우리를 속죄하신다. 그 속죄란 십자가에서 단순히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을 넘어 그분이 제사장으로 수행하는 마지막 사역을 말한다.” 그러나 스미스의 선언도 많은 선구자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의 선행에 집중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888~1931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1888년 대총회는 재림교회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였다. 미니어폴리스 논쟁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기본 질문, 즉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위가 구원과 연관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스미스와 조지 버틀러가 주도하는 한 그룹은 ‘인간의 노력, 행위, 순종, 율법, 계명, 우리의 의 그리고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를 강조했다. 엘릿 왜거너와 알론조 존스가 주도하는 다른 그룹은 ‘그리스도, 믿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에 관련된 용어에 집중했다.
마침내 엘렌 화잇은 두 젊은이 즉 왜거너와 존스를 지지했다. “나는 닥터(왜거너)가 우리 앞에 제시한 바와 같이 율법에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낸 데서 진리의 아름다움을 본다.”5 “이것은 내게 새 빛이 아니었다. 지난 44년 동안 보다 높은 권위자로부터 이것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6
엘렌 화잇은 죽기 전 27년간 그리스도와 구원의 주제에 집중했다. 그 기간에 나온 서적들에는 <정로의 계단>(1892), <산상수훈>(1896), <시대의 소망>(1898), <실물교훈>(1900) 등이 있다.
1931~1957년
우리의 의 vs 그분의 의
1931년, 새로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 진술이 소개되었다. 제3진술은 다음과 같다. “신성을 간직한 채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간 가족의 본성을 취하시고 사람 중 하나로서 지상에서 사셨으며 그분의 생애에서 우리의 모범으로서 의의 원칙을 예증하셨고, 능력 있는 많은 이적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입증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보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살아 계신다.”7
6년 후, M. L. 앤드리슨의 책 <성소 봉사>가 출판되었다. 그 책 때문에 재림교회 내에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앤드리슨은 완전주의적 이해를 강하게 구축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의 책의 한 장인 ‘마지막 세대’에서는 마지막 세대의 완전한 성도들에 의해 하나님의 품성은 마침내 옹호받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8 앤드리슨의 여파로, 특히 1957년에
1957~1980년
완전주의 vs 그분의 의
1888년처럼 대조적인(사실상 대치하는) 두 진영이 최악의 고비에 이르렀다. 리로이 프룸과 프랜시스 D. 니콜이 그리스도의 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앤드리슨의 완전주의에 대항했다. 1975년에 발행된 <완전, 불가능한 가능>을 보면, 허버트 E. 더글러스와 C. 머빈 맥스웰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오셨다고 믿었다. 반면에 에드워드 헤펜스톨과 한스 K. 라론델은 그분의 본성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9
1980~2015년
‘그리스도, 우리의 의’에 초점을 두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린 1980년 대총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의 새로운 공식 진술을 승인했다. 이어진 영적•신학적 성숙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 우리의 의’에 대해 심도 깊은 성경 연구가 많이 이어졌다. 대총회는 기본교리에 대한 서적을 연이어 출판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그 주제에 대해 서적들을 출판했는데 노먼 걸리의
오늘날 한 집단으로서 그리고 개별 교인으로서 재림교인들은, “죄를 알지도 못한 이(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고후 5:21) 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기쁨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글루데르 키스페
페루 우니온 대학교 신학과장이며 그와 아내 실바나는 예링과 할리의 부모이다.
1 [James White], “Justified by the Law,”
2 J. H. Waggoner,
3 Stephen Pierce, “Answer to Bro. Merriam’s Question Respecting the Law of Gal. III,”
4 “Doings of the Battle Creek Conference, Oct. 5 & 6, 1861,”
5 Ellen G. White, “A Call to a Deeper Study of the Word,” manuscript 15, 1888, in
6 Ellen G. White,
7 “Fundamental Beliefs of Seventh-day Adventists,” in 1931
8 M. L. Andreasen,
9 Herbert E. Douglass et al.,
캡션
조지 버틀러
유라이어 스미스
알론조 존스
엘릿 왜거너
프랜시스 니콜
리로이 프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