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신실함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섄탈 J. 클링바일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요나단, 당신은 어쩌면 그리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나요?(저는 삶이 참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성실하기란 불가능할 텐데요.) 어떻게 당신은 두 번씩이나 당신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 사울 왕에게 충성할 수 있었나요? 당신은 언제나 가족에게 충실하고 신실했습니다. 동시에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쫓기는 친구 다윗에게도 신실했죠. 당신의 왕좌를 빼앗길 것을 알면서도 다윗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자기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6).
다윗, 동굴에서 당신은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신의 부하들이 웅크리고 있는 동굴로 오랫동안 당신을 쫓던 사울 왕이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왔죠(저는 기다리는 걸 못 참습니다.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참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기대한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저에게 대단한 시험입니다.). 매우 쉬운 일이었을 거예요. 심지어 하나님의 섭리처럼 보였죠. 칼 한 번만 휘둘렀다면, 수개월간 짐승처럼 쫓겨 다니던 광야 생활은 끝나고 왕좌로 연결되는 길이 활짝 열렸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사울의 목숨을 빼앗지 않기로 했죠.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에 충실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죠?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삼하 11:11).
당신은 비록 ‘히타이트족’으로 알려졌지만 제2의 조국에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께 충성했죠(대세를 거스르면서까지 성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실이란 사람들이 나를 실망시키거나 심지어 나를 조종하고 매수하려고 할 때에도 무언가를 굳게 지키는 것이지요.). 당신은 충성스럽고 용감했습니다. 당신의 표준은 높았고 그것을 지켜 냈습니다. 선물과 뇌물, 심지어 완전히 허용된 쾌락도 당신의 충성심과 신실함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었죠. 하나님의 궤와 주님의 군대가 전쟁터에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집에 가거나 쉬도록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목숨을 바쳐 충실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8).
천사의 번쩍이는 날갯짓 한 번에도 당신은 삶을 뒤엎을 준비가 되어 있었군요(저의 신앙은 자꾸만 익숙한 것으로 기울어집니다. 한눈에 다 파악되는 것을 더 좋아하지요. 당장 아무런 유익이 없어 보이는데도 하나님께 신실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결혼 계획은 어쩔 셈인가요? 요셉이 뭐라고 할까요? 또 이웃들은 뭐라고 할까요? 일평생 수치 속에 지내야 하는 삶은 또 어떻고요? 평생 사람들이 비아냥거릴 텐데도, 평생 사실과 다르게 오해받고 억울하게 취급당할 텐데도 당신은 그저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보소서. 저는 주님의 여종이오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요셉, 당신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이집트에 있었죠. 형제들이 당신을 팔았죠(모든 사람이 지켜볼 때 신실한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무도 모를 때에 신실하기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의무와 욕망이 상충할 때 신실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조심해야 했고 그때 보디발의 아내가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기회를 제시했지요. 거절하기 매우 힘든 그 제안을 당신은 거절하고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겉옷도 버려 두고요. 이방인 주인에게 그렇게 신실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괜찮은 인생을 만들어 주는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을 떼어 놓은 하나님께 어떻게 그렇게 충성할 수 있지요?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왕상 17:13).
당신은 사르밧의 가난한 과부였죠. 엘리야는 당신의 마지막 남은 기름과 가루를 요구했습니다. 당신은 돌보아야 할 아들이 있었어요. 하나님 사람이라는 이 외방 사람의 어디가 믿을 만하기에 그의 말을 참되다고 생각했나요? 왜 집에 가서 그에게 마지막 빵을 만들어 주었나요? 제 생각에는 당신은 잃을 것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것이 마지막 식량이었으니까요(저는 가끔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신실함이란 종종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기도 하지요. 지나치게 많이 가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지요.). 당신은 마지막 양식을 포기했고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팔에 당신의 가족을 내맡겼습니다. 어디서 이런 믿음이 솟아났지요?
요나단과 다윗, 우리아, 마리아, 요셉 그리고 사르밧의 과부, 당신들 중 그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았어요. 당신들 모두 의심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당신들의 인생 이야기는 ‘신실함’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립니다. 당신들의 신실함은 ‘신실하신 분’을 만난 결과였던 것이지요. 당신들의 눈에는 창조주의 모습이 스쳤던 것이지요. 보이는 것에만 속박되어 있지 않는 분, 형태 없는 텅 빈 세상에서도 나무와 짐승을 헤아려 보시고 말씀으로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신 분 말입니다.
당신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 당신들 속의 가능성을 보시고 당신들 없이 영원히 지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하신 분을 여러분은 깨달은 것입니다.
당신들은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기를 고집하지 않았고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타나도 이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습니다. 믿음을 전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삶에서 저는 용기를 얻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 10:23).
섄탈 J. 클링바일
대총회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부부장이다. 제럴드와 결혼했고 늘 긴장하게 만드는 십 대 딸 셋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