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나는 난민이었다
자유를 찾아온 여인
구술 : 블리아 숑 구술, 정리: 테리 샐리
“하느님, 저를 도와주세요!” 라오스와 태국 사이의 메콩 강 한가운데서 나는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 거친 급류가 나를 하류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도망 다니는 것 말고 다른 것은 몰랐다. 도망 다니는 데 이력이 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군대가 정글에 포진했고, 생후 7개월이었을 때 아빠와 ‘어린 엄마’(아버지의 둘째 부인)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포화를 피해 도망쳤다. 정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밤에만 요리하며 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우기에 홍수로 수위가 높아진 메콩 강의 급류를 건너는 것은 내 수영 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나와 함께하게 된 가족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나와 다른 세 아이(그중 한 명은 4살이었다.)를 수영 잘하는 나의 사촌에게 묶었다.
달이 떠오르자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구명조끼 삼아 밤새 헤엄쳤다. 수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곧 날이 밝을 것이다.
“줄을 자를 거야.” 사촌이 말했다. 우리를 도망치게 도와주다 발각되어 두들겨 맞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 혼자 아이 셋을 어떻게 강 건너 태국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사촌이 줄을 자르자 급류가 우리를 휘감아 라오스 쪽으로 밀어 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분에게 도와달라고 부르짖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을 어른들은 그분을 “하늘의 주인” 또는 줄여서 “하늘님”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그분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다.
나의 부족인 몽족은 영들을 섬기는 정령숭배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하늘님을 향해 도움을 구했다. 나 자신도 그의 능력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 물에 빠졌을 때 그리고 코브라에게 물려 죽을 뻔했을 때 그분이 나를 구해 주신 것이다.
이제 안전한 땅 태국에 도착하기 위해 격렬한 물살과 싸우는 순간, ‘하늘의 주인’께서 다시 한번 생명을 구해 주실지 모른다는 절박한 희망에 매달렸다. “하늘님, 도와주세요!”
그러자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몸이 다시 태국 쪽으로 향했다. 함께 사투를 벌이며 강기슭까지 다가갔고 덩굴 몇 가닥을 붙잡고 강가로 나왔다.
하늘님이 다시 한번 생명을 구해 주셨다!
난민 생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 우리는 몽족 난민 5만 명이 거주하는 반 비나이 수용소에 도착했다. 거기서 만난 한 가족이 나를 받아 주었지만 나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고 결국 억지로 결혼을 했다.
남편과 나에게는 자녀 셋이 생겼지만 내가 아프고 약해지자 남편은 나와 이혼했다. 나는 하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다. 다시 한번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나는 점차 힘을 되찾았고 자녀를 다시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
미국에서 난민 정착을 위한 인터뷰를 실행했고 나는 자녀들과 함께 입국을 허가받았다. 우리는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 정착했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지역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들이 나를 도와주었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이윽고 하나님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고 나는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이름을 알기도 전에 나의 생명을 구해 주신 하늘의 주인이 사실은 성경의 하나님이며 나의 하늘 아버지였다.
2006년에 나의 두 아이가 침례를 받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하시는 능력에 관해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었다. 나는 난민이지만 더 이상 고아는 아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내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하다.
블리아 숑
자녀와 함께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 계속 거주하고 있다. 테리 샐리 북미지회 재림교회 난민•이민 사역 코디네이터이다.
캡션
기쁜 날! : 블리아 숑(왼쪽에서 두 번째)이 딸 패니아(왼쪽), 아들 슈아(패니아 옆)의 침례식에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