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사
어린이 난민
트라우마와 상실에 가장 취약한 희생자
앤 해멀
최근에 중동에서 3주를 보낸 적이 있다. 이스탄불에서 보낸 마지막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다 어둠 속에서 작은 형체를 목격했다. 보도에 아이 하나가 다리를 끌어안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소년은 어둠 속에 있었지만, 팔고 있는 휴지는 가로등에 보이도록 놓여 있었다.
이스탄불에는 행인에게 휴지를 파는 난민 어린이가 많다. 그런데 유독 이 작은 소년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멈춰 섰다.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보니 아이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7살이나 8살쯤 되어 보이는데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 눈물 젖은 무고한 작은 얼굴을 보니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아랍어를 할 수 없고 그 아이는 영어를 말할 수 없을 테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말은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은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20리라를 꺼내어 아이에게 주고 휴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보통 가격이 1리라이기 때문에 20리라를 받고 아기가 웃음을 짓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이의 상처는 몇 리라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었다. 소년은 작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여러 번 두드렸다. 나와 함께 있던 친구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끝내 웃지 않았고 나는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무릎에 내 손을 얹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아이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 소년에게 가족이 있기를 바랐다.
막막한 현실
난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마어마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집에서 억지로 떠났을 뿐 아니라 엄청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과 폭력을 목격하였다.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란 ‘일상적인 인간 경험의 범위를 넘어선 긴장으로 가득한 일’로 정의된다. 그러나 난민에게 트라우마는 일상이다. 하버드 의대 정신외상 전문가인 주디스 허먼에 따르면,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것은 희귀한 사건이 아니라 보통의 대처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사건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트라우마일 수 있다.
어린이의 이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전부 트라우마로 간주된다고 어린이•가족 치료 전문 심리학자 데이브 지글러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방치’야말로 가장 흔하고 끈질긴 형태의 트라우마이며 어린이 성장에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다. 통상적으로 난민 아동은 성장에 필요한 정서적 신체적 지원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 영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남는다.
인지 행동 치료의 창시자 중 하나이며 의 저자인 도널드 미첸바움은 전체 정신 질환 인구의 50퍼센트가 정신적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같은 심각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85퍼센트가 학대나 트라우마의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 심각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신체 기능에 염증 반응을 일으켜 질병을 초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년기 정신 외상이 만성 질환 발달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가장 방대하게 실시된 공중 보건 연구인 ‘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 Study, ACE Study)’에서는 아동기의 트라우마 경험이 성인기의 정신적•신체적인 건강 위험 요소를 크게 상승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트라우마의 영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해로운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는 두뇌 발달에 물리적인 손상을 입었다. 어린이의 뇌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어른 또는 또래들과 신뢰 관계를 쌓기가 힘들어진다.
속수무책인 아이들
지난 9월,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된 난민 아동의 실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 가족이 터키에서 그리스를 지나 유럽에 가려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3살짜리 아이가 익사한 것이다. 빨간 티셔츠, 파란 반바지, 찍찍이 달린 테니스화를 신고 해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어져 있는 꼬마의 모습에 우리는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가 물에 떠밀려 온 사건 몇 주 뒤 나는 터키 보드룸에 갔다. 여러 가족이 휴가를 즐기고 자녀들은 해변에서 뛰어놀았다.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향한 위험천만한 지중해 항해를 앞두고 대책을 강구하는 난민들에게 상점에서는 구명조끼를 팔고 있었다.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엎어진 3살짜리 아이의 얼굴을 우리는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날 밤 같이 익사한 5살짜리 형의 얼굴을?
그들에게 필요한 것
난민 아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감이다. 보드룸 해안에서 죽은 아이들의 가족은 자신들을 원하지 않는 나라, 머무는 것 자체가 위험한 나라에서 도망쳐 나오는 중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을 원하지 않는 또 다른 나라, 일시적인 피난처만 제공하는 나라를 찾아간다. 임시 거처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도 그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넌다. 난민 아동과 가족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안전이다.
난민은 음식과 거처라는 기본 조건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이 엄청난 숫자의 가족들이 자신과 자녀를 위해 기본적인 생필품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하다. 건강한 성장에 필요한 신체적•감정적인 조건이 결핍된 어린이는 오랫동안 신체적•감정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정신 외상 전문가들은 말한다.
난민 아동에게는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 주며 자신의 경험을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트라우마가 뇌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지만, 끈끈한 애정이 뇌 구조, 즉 향후 뇌의 발달과 정서 회복의 토대가 되는 두뇌 회로에 물리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라고 정신 외상 전문가들은 밝혀냈다. 애정으로 보살피면 트라우마의 영향을 막거나 개선할 수 있다.
따라서 난민 가족과 공동체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들은 더 넓은 지역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지지는 외상 후와 재난 회복력을 가늠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난민 아동은 또한 삶의 안정감을 필요로 한다. 가능한 한 예측 가능한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학교가 참석 가능한 난민 아동에게 안정감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난민들을 위해 일할 기회가 없지만 선물과 기부를 통해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것을 도울 수는 있다. 우리의 태도와 기도를 통해 우리도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에서 안전과 수용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L. 앤 하멜 박사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에 사는 심리학자이며 외상 스트레스에 면허가 있는 전문가이며 외상 스트레스 전문학회 회원이다. 대총회에서 위기 개입과 선교사들을 관리하고 후원을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