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패스하기
인도네시아 사법고시를 안식일에서 다른 날로
조이스 마누룽
드디어 그날이 왔다.
2년 혹은 8년, 심지어 12년 동안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사법고시를 치를 수 있기만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서인도네시아연합회 본부에 재림교인 약 20명이 모였고 나도 거기 있었다. 변호사 자격 시험을 보기 위해서다.
그날을 일요일이었다.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해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재림교인은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1999년 대법원에서 변호사 시험을 주관할 때는 평일에 시험 일정이 잡혔고 나는 첫 사법고시 시험에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2003년 변호사 시험 주관을 인도네시아 변호사 협회(PERADI)에 맡겼고, 협회는 이후 모든 변호사 시험을 토요일에 실시했다.
1999년에 낙방한 뒤, 나는 법조계의 일을 잠시 접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2008년 다시 법조계로 돌아가려 했지만 안식일 문제로 시험을 다시 칠 수 없었다. 시험 일자를 옮겨 달라고 탄원하기 위해 나는 변호사를 희망하는 재림교인들을 모으기로 했다.
첫 노력은 실패했다. 이메일을 많이 보냈지만 마르쿠스 세티아완 한 사람에게서만 회신이 왔다. 시험 일정 변경 요청 서한이 거절되자 그는 법조인 꿈을 접고 의료 선교사가 되었다.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몇 년이 지나가 버렸다. 9년간 지속되던 싸움이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 중요한 시도
2011년에 아프리아니 시자밧이라는 재림교인이 내게 연락해 왔다. 자신의 고용주가 업무상 변호사 시험을 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여러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뒤 재림교회 지역 종교자유부장인 사무엘 시모랑키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모랑키르 부장은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다. 부장의 제안에 따라 재림교인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률지원기관’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사무엘 시모랑키르 부장이 일하고 있는 서인도네시아연합회의 도움으로 법률지원기관은 다른 날에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변호사협회에 요청했다.
답변이 없이 며칠이 지났다. 나는 협회 감독위원회의 회원과 연락하여 우리의 요청서가 도착했는지를 물었다. 요청서는 도착했으나 요청이 너무 늦었다고 그는 대답이었다. 이번에 치르게 될 변호사 시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것이었다.
실망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싶어 하는 재림교인이 25명으로 늘어났다. 협회는 2013년에 제출한 우리의 청원도 거절했다.
가능한 돌파구
2014년 12월 돌파구가 생겼다. 동료 팀방 팡가리부안이 얼마 동안 협회에 독립적으로 로비를 벌여 오고 있었다며 협회가 재림교인을 위해 변호사 시험을 토요일 일몰 직후에 치를 수 있게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본래 시간에 응시한 이들이 문제를 유출하지 못하도록 재림교인 응시자들은 그날 하루 종일 격리된 장소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협회는 요구했다.
협회와 시험조직위원회를 여러 번 만났고 관련 사항을 승인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승인서는 오지 않았다. 협회는 일몰 직후에 치르는 변호사 시험 계획을 돌연 취소해 버렸다. 실망이 너무 컸다. 오랫동안 기도해 왔고 해결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협회 지도자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는 변호사 승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안식일에 예배드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법 준수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협회 지도자들은 우리의 요청에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회의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회의가 끝나고 한 달 후, 협회는 세 조직으로 분열됐고 각자 합법적인 협회임을 주장했다. 세 조직 중 어디에 안식일 문제를 건의해야 할지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이 생겼다. 변호사 시험을 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도하면서 이 상황을 고민하다가 어린 아들에게서 답을 찾았다. 어느 날 아들이 방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들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그런데 내가 변호사 시험 일자 바꾸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 자신과 재림교인 25명만을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의 탁월한 변호사요 옹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우리가 평범한 변호사나 법의 옹호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의 법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인가?
놀라운 소식
2015년 9월, 우리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협회에서 갈라진 세 조직을 포함하여 모든 사법고시 조직에서 변호사 시험을 시행할 수 있다고 대법원에서 결정한 것이다. 서인도네시아연합회의 도움으로 우리는 여러 해 전 협회에서 떨어져 나온 인도네시아 변호사협회에 지원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2016년 1월 24일 일요일, 인도네시아 변호사협회는 서인도네시아연합회 본부에서 재림교인 및 비재림교인에게 변호사 시험 기회를 제공했다. 이 협회는 재림교회와 협력하여 변호사 시험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마르쿠스 세티아완과 아프리아니 시자밧도 재림교인 20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변호사 시험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머리를 숙여 기도했다.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왔다. 법률 서적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기도하고 탄원했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 시험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변호사 시험 2주 후, 재림교인 응시자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통보받았다.
시편 기자는 증언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가끔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때도 있지만.
조이스 마누룽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변호사이다.
위 :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위치한 서인도네시아연합회 본부에서 변호사 시험이 실시되었다.
오른쪽 : 필자 조이스 마누룽(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변호사 시험을 마치고 재림교인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