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자복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에 속죄 제물을 가져왔을 때 실제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이다. 모든 속죄제가 죄의 자복을 포함한다고 단언할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관련된 성경 구절에서 시작하여 시편을 중심으로 몇 구절을 살펴보고, 일반적인 언급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1. 자복과 희생 제사 : 자복과 속죄제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은 레위기 5장 5절에 나타난다. 문맥을 보면 재판에서 증언해야 할, 부지중에 연관된 고의적인 범죄(1절), 정결 예식 수행의 지연(2~3절), 맹세의 지체(4절)를 위해 속죄하는 것이다. 민수기 5장 7절에서, 자복과 배상은 신성을 더럽혔다고 여겨지는 윤리적인 범죄에 요구되었다. 이것들은 반역적·반항적인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죄들은 의도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율례는 분명하게 죄인 편에서의 공개적인 인정을 요구한다.
마지막 경우는 레위기 16장 21절인데,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기의 손을 염소에게 얹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고백한다. 이것은 독특한 예식이며 그 염소는 희생 제물로 드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속죄제를 드릴 때 언제나 죄의 자복이 있었다는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의문은 왜 속죄제를 취급하는 다른 구절들에서는 죄의 고백이 언급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레위기 4장). 아마도 레위기 5장 5절과 민수기 5장 7절에서 고백이 강조된 이유는 범한 죄의 고의적인 성격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레위기 16장 21절의 고백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속죄제를 다루는 다른 구절에서 고백이 빠진 것에 대해 명백한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이런 본문 누락이 자동적으로 그런 고백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복 이면의 기본적인 신학 원칙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이다. 틀림없이 이 원칙은 모든 속죄제에 적용되어 왔다.
2. 희생 제사, 소리, 말 : 시편은 성전 예식에 소리와 말이 함께했다고 말한다. 학대로부터 구원받은 후에 예배자는 이같이 말한다.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27:6). 화목제에 관한 구절들은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시편 54편 6절에 따르면, 거기에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이 함께 있었다. 감사제를 드릴 때, 사람들은 “노래하며 그의 행하신 일을 선포”(시 107:21~22; 레 7:12)하도록 열렬하게 권고받았다. 즐거운 의식을 행할 때, 이렇게 찬양이 있었기에, 죄를 고백하고, 희생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복을 받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회개한 죄인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시 24:5; 32:1~2, 5, 7, 11). 시편 기록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51:3~5),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을 구하고(7, 10절) 자신이 드린 희생의 무가치함을 인식하고(16절), 종국에는 희생 제사가 상한 심령의 물리적 구현일 때, 하나님께서 그 희생 제사를 받아들인다고 인정한다(17~19절). 속죄제가 전혀 아무 말도 없이 드려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3. 자복의 의미 : 죄인들은 자복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범했고 참으로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인정했다(레 16:21). 또 그들은 죄를 자복하고 버림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찾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잠 28:13). 성경에서 자복은 언약의 갱신과 연관이 있다(느 5:5~37; 10:18~19). 이것은 속죄제를 드릴 때의 자복이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언약 관계 갱신의 구성 요소일 가능성을 언급한다. 다시 말해 여호와로 말미암은 죄의 용서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의미했다(출 34:1~10). 회개한 죄인들은 여호와 앞에서 그분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자신이 죄를 범한 사람에게 화해를 요청했다.
따라서 고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있는 구절들에서는, 무엇보다 밝혀져야 할 고의적인 죄들을 주로 다루고 강조하고 있다고 필자는 말해 주고 싶다. 일반적인 속죄제에 아무런 자복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고백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화목제의 경우 아무런 언어적 표현이 요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 본 대로 그 제사들에도 말을 표현하는 일이 함께 있었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목사, 교수, 신학자로 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