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강도에게 말씀하신 것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강도에게 그가 죽어도 영혼은 생존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는가?(눅 23:42~43).
십자가 위의 강도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하고자 하는 그분의 능력에 기꺼이 복종하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냐며 군중이 그분을 조롱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강도를 구원하고자 하셨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안타깝게도 의인이 죽어서 낙원으로 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이 구절이 사용되고 있다.
1. 낙원 : 예수님은 강도와 자신이 이를 곳, 다시 말해 종착지를 ‘낙원’이라고 부르셨다. 원래 페르시아어로 ‘울타리 안, 공원, 정원’을 의미했다. 창세기 2장 8~10, 16절의 그리스어 번역본(70인역)에서는 같은 말(파라데이소스)을 에덴동산에 사용했다. 그 말은 신약 성경에서 두 번 나타난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바울은 환상 중에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낙원,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갔다(4절). 요한계시록 2장 7절에서, ‘낙원’은 생명나무가 있는 곳이다. 승리하는 자들은 그곳과 생명나무로 갈 수 있다. 성경 어디에도 의인이 죽자마자 바로 가는 낙원은 없다. 분명히 그곳은 부활한 의인이 그리스도와 아버지와 함께 있을 곳이고 생명나무로 갈 수 있는 곳이다.
2. 예수와 낙원 :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죽은 뒤 낙원에 가지 않았다(행 2:31; 마 12:40). 예수님은 무덤에 머물다가 부활하신 후 마리아에게 나타나 자신이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노라.” 이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요 20:17; 참고 마 28:9)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강도에게 자신이 금요일에 그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었던 게 분명하다.
게다가 예수와 강도는 동시에 죽지 않았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금요일 해 지기 전에 죽으셨다(요 19:33). 예수님이 죽었을 때 강도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의 다리는 꺾였다. 십자가에서 죽은 일은 보통 며칠이 걸린다.
3. ‘오늘’의 의미 : 일반적으로 이 본문의 해석은 쉼표를 ‘오늘’ 앞에 둘 것인지(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혹은 ‘오늘’ 뒤에 둘 것인지(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와 연관이 있다. 첫 번째는 영혼 불멸을 믿는 해석자들 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 사상은 강도가 죽자마자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스어 성경 본문에 쉼표가 추가된 것은 서기 15세기경이다. 누가는 쉼표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를 의미했을 것이다. 이런 제안은 구약 성경에서 엄숙한 약속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오늘’의 유사한 용례에서 지지를 받는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신 30: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신 30:18). ‘오늘’이라는 용어는 엄숙한 진술을 소개한다. 예수님이 죽음 직후 낙원에 계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적합한 표현인 것이다. 그분이 강도에게 엄숙하게 약속하신 것은 부활 후에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서 구원을 누릴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해석은 누가복음에서 부사 ‘오늘’이 사용된 예를 통해서도 지지받는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오늘’ 이미 시작되었음을 가리킬 때 그 용어를 사용하셨다(2:11; 4:21; 5:26; 19:9). 이것은 구원의 ‘오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며, 낙원에 이르면 그 구원에 참여할 것임을 강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본문은 중간 상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십자가의 구원 능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목사, 교수, 신학자로 일하다가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