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
절망할 필요가 없다
도널드 베드니 2세
영적인 문제 때문에 좌절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이 매일 ‘일보전진 이보후퇴’라서 기진맥진하고 힘 빠지는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절망하지 말라. 희망이 있다.
바울에게 듣는 희망
바울은 빌립보 신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영적 조건과 성장에 관한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하나님의 약속’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 그는 빌립보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학대받고 고문당하고 불법적으로 투옥됐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를 보면 하나님이 거기서 활동하신다는 확신이 넘쳐난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3~6).
이 구절에는 명심해야 할 여러 가지 격려가 언급되는데 그중 네 가지를 생각해 보겠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이미 시작됐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셨다. 이른바 원복음이라고 하는 약속, 즉 그들이 빠져 있는 구덩이에서 구원해 내겠다는 최초의 복음적 암시를 주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심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우리 첫 부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 뱀(마귀)과 죄에 대한 적개심을 인간의 마음속에 ‘심으실’ 것이다. 행동의 부적절함에 대해 자각하고 삶의 방향에 대해 절망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신다는 증거다. 에덴에서 주신 약속을 이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행동과 사상, 심지어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반응은 저주가 아니라 복이다.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악의 세력에 저항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할 때를 제외하면 인간은 어둠의 일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우리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요 3:19). 하지만 성령의 활동은 그것을 바꾼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은 내적으로 이루어진다
백성의 새로운 정치 지도자에게 기름 붓는 일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위임하셨을 때 사무엘은 선택의 기준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에게서 그는 훤칠한 신장과 외모를 지닌 사울의 모습을 보았다. 주님께서 자신을 올바른 장소에 보내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 그는 하나님의 명을 따르기가 두려웠다. 자신이 기름 부은 사울이 버젓이 살아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데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사무엘은 하나님께 설명했다(삼상 16:2).
하지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나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 기뻤다. 목숨 내놓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셨음에 기뻤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주님은 엘리압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는 우리 내면의 영적 상황이다. 그분은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변화시키신다.
이 변화에 관한 약속을 에스겔이 가장 잘 요약한 것 같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변화된 행동 양상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뇌의 능력에 관하여 최근 읽은 적이 있다. 두 가지 유형의 섬유질과 축색돌기, 수상돌기가 뇌세포 막에서 뻗어 난다고 한다. 축색돌기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보내고 수상돌기는 메시지를 받는다.
호주 학자 존 에클스는 뇌의 이런 요소들을 연구하면서 단추 모양의 송신 섬유질이 약간 확대되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을 ‘종말단추(프랑스어로 boutons)’라고 불렀다. 종말단추에서는 화학 물질이 분비되어 몸을 움직이게 한다. 메시지가 시냅스를 지나 뇌세포에서 몸 전체로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나 행동이 신경 섬유 끝에 단추들을 만들어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다음번에도 반복되기 쉽게 한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알고 있다. 습관은 한번 형성되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쁜 습관은 반복되기는 아주 쉽고 깨기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넘어질 때 사탄은 “그것 봐. 넌 변하지 않았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문제 많았던 모습과 똑같잖아.”라고 말한다. 우리의 행동을 보면 사탄의 말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에 대한 사무엘의 판단처럼 피상적이다. 우리의 발은 가야 할 길보다 나쁜 행동에 길들여진 통로로 쉽게 이끌리지만 순종의 길을 걷기로 선택하면 뇌에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진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업이 믿음의 길을 따라 진행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 것같이 그분 안에서 행하라”(골 2:6, 한글킹제임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끊임없이 신뢰하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완전한 일을 이루신다(약 1:4).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 일을 이루신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아내와 나는 가끔 퍼즐 맞추기를 한다. 어떤 것은 쉽지만 어떤 것은 서로 모양이 너무 비슷해서 맞추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영적인 상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패배한 권투 선수처럼 수건을 내던지고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패배로 보이는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 행동을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시작한 것을 끝내신다. 바울과 같이 우리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볼 수 있다.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믿음직하게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마치신다.
도널드 베드니 2세
앤드루스 대학 개발 담당 수석이다. 아내 엘린다와 함께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에 살고 있다.
발문
퍼즐 조각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