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게메지 워구
유럽에서 전도하는 가나 재림신자들
최근의 ‘역선교’ 현장에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 장막회에 가나 출신 재림교인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유럽의 개신교회에서 볼 수 있는 ‘역선교(reverse mission)’의 현장이었다.
지난 8월, 네덜란드의 스타츠카날에서 개최된 제22회 가나인 장막회는 유럽인 선교사들의 전도로 재림교인이 된 가나의 재림교인들이 이제는 오히려 빠르게 세속화된 유럽에 복음의 씨앗을 심는 ‘역선교’의 결과였다.
장막회 기간 동안, 오후 시간을 이용해 청년들이 스타츠카날 지역의 영혼들을 위해 노방 전도와 문서 전도를 수행했다. “장막회를 주최한 지도자들은 우리 청년들이 선교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어요.” 장막회 선교 책임자이자 암스테르담 가나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스티븐 O. 빔프 목사가 말했다.
작년에는 선교 활동의 결과로 여러 사람이 장막회의 말씀 집회에 참석했다. 빔프 목사는, 참석자 가운데는 노방 전도에서 들은 복음 성가에 감동받아 집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한 청년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럽 재림교회의 역선교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학자들은 유럽과 북미 지역의 이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역선교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가나 출신 재림교인들은 유럽의 재림교회와 함께 장막회 선교에 동역하고 있다.
동역하는 사람들 중에는 네덜란드인으로 부자지간에 참석한 보프 하위징아와 알라르드 하위징아가 있다. 이들은 140킬로미터를 운전해 스타츠카날 야영장까지 ‘안식일 소파’를 운반해 왔다. 이들 부자는 런던의 재림교회 청년이 시작한 ‘안식일 소파’라는 선교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보고 네덜란드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위징아 부자(父子)는 야영회로 가는 길에 ‘안식일 소파’를 놓고 계속 이동시키면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소파에 앉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소파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면 이들 부자(父子)는 이 소파는 휴식을 주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안식일이 주는 휴식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안식일 소파’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어 준다고 아버지 보프 하위징아가 말했다. 한번은 교통 체증으로 차가 막힌 거리에 ‘안식일 소파’를 놓았는데 사람들이 줄을 섰고 소파에 앉은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놀라운 일이에요. 사람들이 이 소파에 앉으면 5분 만에 자기 이야기를 해요.”
로테르담에 살고 있는 가나 출신의 재림교인인 제니 심퍼(21세)는 스타츠카날의 ‘안식일 소파’에서 12세의 네덜란드 소녀와 대화하게 됐다.
제니는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소녀에게 주변에서 들은 가나인들의 합창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러고 나서 제니는 소녀에게 하나님을 믿느냐고 질문했다. 소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벨기에 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소녀는 자신과 가족들은 다른 교단의 기독교 소속이긴 하지만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제니는 이 소녀에게 <각 시대의 대쟁투>를 소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났고, 책을 받은 소녀는 가까이 있던 가족에게 책을 맡기고 돌아와 제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책을 받고 그 아이가 좋아했어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네요.” 제니가 말했다. 제니는 장막회 후에 로테르담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친구들인 네덜란드인, 모슬렘, 아시아인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가나인 재림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아이작 K. 돈코르 목사는 자신의 교회에서는 가정 방문을 통해 선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다른 교인들과 비교인들의 가정 방문에 동참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교인들을 교회로 초청하고 있다.
비교인들이 교회에 방문하면, 교회에서는 신앙 서적을 선물로 주고 성경 공부반으로 안내한다. 몇 주간의 성경 공부가 끝나면 졸업식을 거행하고 그 사이에 침례를 받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가나어 트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새 신자 대부분이 가나 사람이다. 독일인이 참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주변의 독일 재림교회로 연결해 준다고 돈코르 목사는 말했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리처드 오포쿠 아타코라는 이번 야영회 기간 동안 스타츠카날 시내에서 성경 통신학교 초대장을 전했다. 리처드는 이탈리아에는 이런 선교 활동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일터에서 삶의 모본으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금요일 저녁 파티에 초대받은 리처드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인 동료들이 왜 갈 수 없는지 물었을 때 리처드는 안식일 시간에 자신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휴식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동료들은 놀랐고, “젊은 사람이 금요일 저녁에 놀지 않고 교회에 가는 경우도 있나요?”라고 물었다.
동료들은 리처드의 믿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고, 이 일을 계기로 리처드는 안식일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소개하는 기회를 얻었다.
리처드와 다른 장막회 참가자들 같은 청년들이 유럽에서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하는 배경이 궁금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를 도와 스타츠카날까지 ‘안식일 소파’를 운반해 온 17살의 알라르드 하위징아를 만나 보면 된다. “저는 전도가 재미있어요. 전도는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거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넬스커 페르바스
네덜란드 재림교회
도둑님들, 환영해요
단 낮 시간에만
네덜란드 재림교회는 최근 네덜란드연합회 건물에 침입한 절도범들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도난 경보 시스템과 즉각적인 경찰의 대응으로 마무리되었다.
네덜란드연합회장 빔 알팅크 목사는 건물의 알람 기능이 울린 후에 남성 용의자 두 명이 하위스터르하이더 중심가에 위치한 연합회 건물에 갇혀 있었다고 전했다.
용의자들은 지붕 밑 다락방에 숨었지만 경찰은 열 영상 장비를 사용해 이들을 찾아냈다. 이들은 도주하는 과정에서 두 벽 사이에 갇히게 되었고 소방관이 출동하여 구조하는 동안, 용의자들의 추가 도주를 막기 위해 경찰 헬리콥터가 건물 위에서 선회했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알팅크 목사는 “우리 재림교회는 용의자들을 용서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음을 밝힙니다.”라고 적었다.
아침에 출근한 연합회 직원들은 없어진 물건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지만, 정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이 파손된 것을 발견하고 안타까워했다. 2016년 8월 19일 새벽 5시에 현장에 도착한 알팅크 목사는 두 벽 사이에 갇힌 용의자들을 구하고 체포하기 위해 벽을 허물어야 했다고 보고했다. 용의자들이 도망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천장 부분도 손상됐다.
용의자들이 기소되어 유죄를 확정받게 되는 경우 형량이 얼마나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알팅크 목사는 이 용의자들을 재림교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분들이 낮 시간 동안에 앞문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니 프란시스, 앤드루 맥체스니
재림교회인 최초로 수여받은
시각장애인계의 노벨상
레이 매컬리스터 박사, 시각장애인에게 고대 성서 본문 읽는 법 소개
시각장애인들이 성서 고대 언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점자로 제작한 재림교인이 ‘시각장애인계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앤드루스 대학의 시각장애인 시간 강사이자 공인 마사지 치료사인 매컬리스터와 그가 운영하는 연구 단체 ‘셈어 학자들’이 미국 시각장애인협회로부터 제이컵 볼로틴 상을 받았다. 부상으로 현찰 최고 2만 달러가 따르는 이 상은 시각장애인의 사회 진출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제게 필요한 문헌 자료들을 전 세계의 학자들이 원활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방안이 성사되면 좋겠어요.” 수상자 매컬리스터 박사가 말했다. 미국 시각장애인협회에서는 매컬리스터 박사가 운영하는 ‘셈어 학자들’이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훌륭한 학술적 기여를 했다고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학자 3명으로 구성된 ‘셈어 학자들’에 상금 2만 달러를 수여합니다. ‘셈어 학자들’은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고대 성서 언어의 점자화를 성공시켜 시각 장애인이 원어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셈어 학자들’에는 매컬리스터와 더불어 인디애나 주 앤더슨에 위치한 앤더슨 대학의 점자 필사자이자 히브리어 교수인 새라 블레이크 라로즈, 인디애나 주 미시애나에 위치한 미국 시각 장애인 연합 지부장 매튜 이터가 활동하고 있다.
시각장애인계의 노벨평화상으로 알려진 이 상은 시카고 지역에서 1912년부터 1924년 36세로 사망할 때까지 시각장애인 의사로 수고하면서 시각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한 제이컵 볼로틴 박사를 기념하여 명명된 상이다.
재림교인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매컬리스터 박사는 2010년에 앤드루스 대학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구약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매컬리스터 박사는 현재 앤드루스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매컬리스터 박사는 자신이 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점자어로 변환했고, 이것을 전자식 핀과 비슷한 점자 디스플레이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매컬리스터 박사는 더 그럴듯한 헬라어•히브리어 점자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기존 점자에 없던 특수 문자를 개발했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의 경우 독자들이 글을 읽다가 쉬는 지점을 알려 주어 읊조리거나 노래하게 해 주는 강세 부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부호는 기존의 히브리어 점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에게 낭송은 즐거운 일이에요. 구약 성경을 읽는 시각장애인들이 이 강세 부호를 통해 구약 성경 낭송의 즐거움을 얻길 바랐어요. 강세 부호를 개발한 뒤에는 평가가 필요했어요.”라고 매컬리스터 박사는 말했다.
2007년에 라로즈 교수는 점자로 표시할 수 있는 성경 헬라어•히브리어 목록을 만들었다. 라로즈 교수의 도움을 받아 매컬리스터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문서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시스템과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의 ‘찾기 및 바꾸기’ 기능을 활용하여 알레포 히브리 성경을 점자로 변환했다.
“히브리어 성경과 강세 부호를 모두 점자로 변환시켰어요. 이제 시각장애인도 히브리어 성경을 자유롭게 낭송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외에 다른 히브리어 문서, 셈어와 헬라어 자료들도 점자로 변환했고요.”
2014년에 매컬리스터 박사는 다양한 언어를 점자로 변환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회사 둑스베리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 매컬리스터 박사는 이터 지부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터 지부장은 둑스베리사와 함께 일하면서 다양한 성경 언어들을 점자화 해 왔다.
매컬리스터 박사는 앞으로 더 많은 문서들을 점자화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알 수 없어요. 제가 아는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거예요. 앞으로 제 인생의 모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안전하고 흥미로운 모험이 될 거라고 믿어요.”
도시 인구 10퍼센트를 재림교인으로 만든 여인
갈리나 모스칼렌코의 회심이 마을에 몰고 온 변화
앤드루 맥체스니
남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재림교인들에게 갈리나 모스칼렌코 집사에 대해 물어본다면, 활짝 웃으며 갖가지 칭찬을 늘어놓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인구 1,400명인 북스코의 시민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스칼렌코는 1990년대에 우크라이나의 조용한 시골 도시인 북스코의 첫 번째 재림신자였다. 그녀가 재림신자가 된 이후로 모스칼렌코의 영향으로 마을 전체 인구 중 약 10퍼센트가 재림교인이 되었다. 북스코 교회는 우크라이나 전체 도시 교회 중에 재림교인이 가장 많은 교회라고 우크라이나연합회 관계자가 말했다.
모스칼렌코 집사는 북스코 재림교회의 지도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발전소 직원으로 일하면서 영원한 지옥을 두려워하던 한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올해 54세인 모스칼렌코는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두 가지라고 소개했다. 바로 기도와 전 교인 선교 운동(TMI)이다. “우리 교회는 울타리가 없어요. 도시 전체가 우리 교회라고 저는 믿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북스코 재림교회는 모스칼렌코의 회심과 함께 시작된 교회이다. 1989년에 발전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립스틱을 사 달라고 부탁한 것이 계기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하던 시절, 그녀와 남편 블라디미르가 북스코에 정착했을 때 그곳에는 어떤 형태의 교회도 없었다. 북스코는 러시아 남부 흑해 주변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미콜라이브 시에서 약 80 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이다. 취재를 위해 <애드밴티스트 월드> 기자가 북스코 시를 방문했을 때, 울퉁불퉁한 길을 2시간 반가량 천천히 운전해야 했다.
북스코에서 모스칼렌코 집사는 열심히 일했고, 업무의 일환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바 오데사 시로 한 달에 수차례 출장을 갔다. 부업으로 화장품도 팔았다.
립스틱 좀 사 주세요
노바 오데사 시로 출장 가던 날, 동료 타냐가 립스틱을 사 달라고 부탁했다. 타냐는 편안하지 않은 동료였다 “툭하면 소리 지르던 타냐가 제게 이런 부탁을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당시 28세였던 모스칼렌코 집사는 타냐가 옅은 색깔의 립스틱을 주문한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 “왜 옅은 색을 사려고 하나요? 거의 잘 안 보이는 색이잖아요. 남편이 립스틱을 못 바르게 하나요?” 모스칼렌코 집사가 물었다.
타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요?”
타냐가 웃었다.
“교회에 다니나요?”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요?” 모스칼렌코는 믿을 수 없었다.
충격을 가라앉히고 그는 타냐에게 어떤 교회에 다니는지, 자신도 교회에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이번 토요일에 노바 오데사로 오세요.” 타냐가 말했다.
모스칼렌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왜 토요일인가요?”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토요일에 오면 그때 말해 줄게요.”
토요일에 타냐는 모스칼렌코 집사를 작고 소박한 건물로 안내했다. 그날 그 건물 안에서 있었던 일을 모스칼렌코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두 팔을 벌리고 저에게 달려왔어요. 마치 평생 동안 저를 기다려온 것처럼 반겨 주었지요. 저를 안아 주고 입을 맞추었어요. 제가 온 걸 무척 기뻐했어요.”
모스칼렌코는 조용히 뒷좌석에 앉았다. 짧은 치마, 짧은 블라우스, 빨간 립스틱 차림으로 교회에 온 탓에 벌거벗은 것처럼 창피했다. 하지만 설교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모습은 잊고 말씀에 집중하게 됐다. 마치 목사님이 자신만을 위해 말씀을 준비한 것처럼 느껴졌다.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여러분은 용서받고, 여러분의 죄는 옮겨지고, 죽음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전율했다. 그리스정교 신자로 자랄 때는 착하게 살지 않으면 마지막에 모든 죄에 대해 심판받을 것이라고 배웠다.
“28년 동안 심판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살다가 그 심판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저는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라고요”
모스칼렌코 집사는 2년 후에 침례를 받았다. 남편도 그로부터 2년 뒤 침례를 받았다.
재림신자가 되다
1990년대 초, 남부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음식이 부족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다. 소비에트 연방 몰락 후에 집단 농장이 폐쇄됐고 모스칼렌코의 가족 농장이 인근에서 유일한 농장이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살아갈 방법이 막막했어요. 두 사람의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도둑질을 멈추고 정직하게 살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도둑질을 배웠다. 농장 일꾼들은 곡식을 훔쳤고,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차를 훔쳤다. 도둑질을 못하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모스칼렌코 집사 부부는 자신들의 곡식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로 결정했다. 가족 수가 적은 가족에게는 1톤, 가족 수가 많은 가족에게는 1.5톤을 주는 등 각 가족의 필요에 따라 나눠줬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금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도와드리는 겁니다. 이제 정직하게 사는 법을 배우세요.’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모스칼렌코 부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모스칼렌코 부부는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언제나 집을 개방해서 옷과 음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밥 먹고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쓰여진 메모를 발견하면 얼마나 기쁜지 아세요?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에 모스칼렌코 부부는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재림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교회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이미 교인 수가 너무 많아져서 교회가 비좁았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교회를 지었고, 7월에 봉헌 예배를 드렸다. 그때부터 모스칼렌코는 지역 교회 지도자로 봉사하고 있다. “제가 어떻게 교회 책임자가 되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부흥의 비결에 대해 질문하자 모스칼렌코 집사는 기도와 TMI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교회에서는 매일 아침 6시와 저녁 5시에 기도회가 있고 장년 100명과 어린이 30명 중 다수가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어제 왜 교회에 안 오셨어요?”라고 묻거나 “우리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모스칼렌코 집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요.” 모스칼렌코 집사가 말했다.
재림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는 교회가 됐다. 토요일 낮에 진행됐던 학교 졸업식은 일몰 후에 진행되고 있다.
교인들은 지역 사회 봉사에 적극적이다. 감자 수확을 돕고 다른 농사일을 거들거나, 길거리를 청소하고, 참전 용사, 장애인, 병자들을 방문하고,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신앙 서적들을 나눠 주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 남편과 자녀를 두고 떠난 여성의 장례식이 있었어요.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지만, 교회 예산으로 장례식을 진행하고 식사도 준비했어요. 마을 전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도시 인구의 10퍼센트가 재림교인이 된 이유가 그것이라고 모스칼렌코 집사는 덧붙였다.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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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온 리처드 오포쿠 아타코라가 네덜란드 스타츠카날에서 성경 공부 초대장을 나눠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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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이 용의자 두 명을 구출하기 위해 네델란드연합회 본부의 벽에 구멍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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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 볼로틴 박사 상을 들고 있는 레이 매컬리스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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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북스코의 재림교회 현관에 서 있는 갈리나 모스칼렌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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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벽을 넘어 도시 전체가 우리 교회”라고 모스칼렌코 집사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