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그대에게는 구주가 있다
엘렌 G. 화잇
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고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이 지상에서 겪은 환경은 거칠고 험했다. 그분의 영광이 가려졌던 이유는 외적인 위엄으로 눈길을 끌지 않기 위해서다. 그분은 외형적 과시를 전부 피하셨다. 재물, 세상의 명예, 인간적인 위대함은 결코 인간을 사망에서 구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세속적인 것으로 매혹시켜 자기편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을 오직 하늘의 아름다운 진리로만 이끌어야 했다. 메시아의 품성은 오래전부터 예언되어 왔으므로, 그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에 기초해서 자기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셨다.
경이로운 계획
천사들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계획을 보고 놀라워했다. 인성을 쓰신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들은 주목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땅에 왔다. 다른 민족은 꾸민 이야기를 믿고 거짓 신들을 경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예언의 빛이 비쳤던 땅에 천사들이 왔다. 천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선택된 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찾아갔다.
제사장 사가랴가 제단 앞에서 봉사할 때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깝다는 것이 이미 발표되었다. 이미 선구자가 출생했고 그의 사명이 이적과 예언으로 입증되었다. 그의 출생에 관한 소식과 그 사명의 놀라운 의미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들의 구주를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거룩한 진리의 빛을 세상에 나누어 주도록 부르심 받은 하나님 백성의 무관심을 하늘의 사자들은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다고 증언해야 할 백성으로 존재했음에도 유대 민족은 그리스도의 강림이 임박했음을 알지 못했다.
성전에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켰지만 거기서도 그분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유대의 제사장과 교사들은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이제 곧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무의미한 기도를 외우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예배 의식을 거행했고 재물과 세상의 명예를 위해 다툴 뿐,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무관심이 이스라엘에 편만했다. 이기적이고 세상에 빠진 사람들은 온 하늘을 진동시킨 기쁨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자 갈망하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런 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파견됐다.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있는 그들의 집을 떠나 다윗 성을 향해 여행할 때에 천사들이 그들과 동행했다. …왕가의 후손이 사는 성에 왔지만 요셉과 마리아를 알아보거나 존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피곤하고 쉴 곳이 없어 성문에서부터 성 동편 끝까지 좁은 길을 모두 헤매며 그날 밤을 위한 휴식처를 찾았지만 얻지 못했다. 붐비는 여관에는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가축이 거하는 거친 건물에서 쉴 자리를 발견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신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나 이 소식은 하늘을 기쁨으로 채운다. 빛의 세계에서 내려온 거룩한 존재들은 더 깊고 애정 어린 관심으로 이 땅에 다가온다. 온 세상이 그분의 임재로 더욱 환해진다. 베들레헴의 언덕 위에는 셀 수 없는 천사의 무리가 모인다.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임에 충실했다면 예수의 탄생을 선포하는 그 기쁨에 그들도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제외되었다.
겸비한 증인들
…소년 다윗이 양을 쳤던 들에서 목자들이 밤을 지새우며 여전히 양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고요한 시간에 약속된 구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며 다윗의 보좌에 즉위하실 왕께서 오시기를 기도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말을 들은 목자들의 마음은 영광스러운 계시로 가득 찬다. 구주께서 이스라엘에 오신 것이다. 그분의 강림은 권세와 존귀와 승리를 연상시키나 천사는 빈곤과 초라함 가운데 나신 구주를 그들이 알아보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천사는 말한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늘의 사자는 목자들의 두려움을 진정시켰다. 그는 그들에게 예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천사는 그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세심하게 배려하여 그들이 하늘의 광채에 익숙해지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기쁨과 영광은 더 이상 숨겨질 수 없었다. 천군 천사의 밝은 광채가 온 들판을 환하게 비추었다. 땅은 숨을 죽이고 하늘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땅을 굽어보았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늘의 노래
목자들이 천사들의 노래를 듣던 그때보다 오늘날 하늘과 땅이 서로 더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옛날, 평범한 직업을 지닌 보통 사람들이 대낮에 천사들을 만나 포도원과 밭에서 이야기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은 여전히 인간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평범한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도 천국은 매우 가까울 수 있다. 하늘 궁정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발걸음에 함께할 것이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롬 11:33)이 숨겨져 있다. 하늘의 보좌를 구유와 바꾸시고, 경배하는 천사들과의 교제를 외양간의 가축과 바꾸신 구주의 희생에 우리는 경탄한다. 인간의 오만과 자부심은 그분의 임재 앞에 견책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의 놀라운 겸비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한다는 것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굴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의 죄로 말미암아 연약해진 상태의 인성을 취하셨다. 아담의 모든 후손과 마찬가지로 그분은 엄청난 유전의 법칙이 끼쳐 온 결과를 받아들이셨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상에서 그분의 육신적 선조가 되는 인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전을 지낸 채 그분은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공유하고 우리에게 죄 없는 삶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궁정에서 그리스도께서 지닌 지위 때문에 하늘에서 사탄은 그분을 미워했다. 그가 쫓겨났을 때는 그리스도를 더욱 미워했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하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미워했다. 그러나 사탄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인간의 연약함을 지닌 무력한 어린 아기로 오도록 허락하셨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그분이 겪도록, 또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인간으로서 싸워야 할 싸움을 싸우도록 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된 사람의 마음은 아들에게로 쏠린다. 아버지는 어린 자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삶의 위험들을 생각하고 떤다. 그는 사랑하는 자식을 사탄의 세력에서 보호하고, 시험과 투쟁에서 벗어나도록 붙들어 주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 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겪게 하신 이유는 우리 어린 자녀들이 생명의 길을 확실히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다. “사랑이 여기 있다.” 놀랄지어다. 하늘이여! 경탄할지어다. 땅이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는 엘렌 G. 화잇(1827~1915)이 70여 년간 공적 사역에 종사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를 사용했다고 믿는다. 위 본문은 <시대의 소망>, 43~49쪽에서 발췌했다.
발문
이러한 유전을 지낸 채 그분은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공유하고 우리에게 죄 없는 삶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