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그분의 손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교회에 임할 마지막 환난의 때에 관한 성서적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환난의 때’란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의 경험을 언급한다. 구약 성경에서 이 경험은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기 직전 하나님 백성이 경험할 일을 예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야곱의 경험과 관계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겠다.
1. 야곱의 경험 : 에서를 만나기 전, 야곱은 형에게 저지른 행동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심한 죄책감을 겪었다(창 32:11). 7절에서 그는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차랄’-염려하다. 고통스럽고 괴롭다.). 죄책감에 시달린 그는 에서의 마음을 달래는 선물을 보내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4~5절). 그날 밤 야곱은 홀로 남아 깊은 고뇌 속에서 기도하며 죄책감과 두려움 가운데 여호와 앞에서 몸부림쳤다. 후에 그는 그 경험을 이같이 회상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차랄)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3). 야곱이 겪은 환난의 때와 그의 구원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다(시 20:1).
2. 예레미야와 다니엘에서 적용되는 마지막 때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야곱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미래에 겪는다고 선언한다. 문맥상 이 구절은 백성이 포로(렘 30:1~3)에서 돌아올 것을 선언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별이 끼어든다. 그것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에 관한 게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 미래에 겪을 환난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도 해방시키신다(4~9절). 그러한 삽입 후에 선지자는 포로에서 귀환하게 되는 희망에 관하여 다시 언급한다(30:10~11). 선언된 환난의 때는 공포와 두려움의 날이고, 얼굴이 창백해지는 날이고, 평강(살롬)이 없는 날이다(5, 6절). 그들이 지닌 두려움 그리고 대적을 이길 만한 능력의 부재를 보여 주기 위해 수고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이전에 그런 적이 없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엄청난 날이다(7절). 그것은 특별히 “야곱의” 즉 하나님 백성의 “환난의 때(차랄)”로 불린다(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셔서 거기서 그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들은 결코 다시 대적의 세력 아래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고 그들은 메시아 왕이고 주님이신 분만을 섬길 것이다(8, 9절).
다니엘서 12장 1~3절도 하나님 백성의 환난 때를 언급한다. 예레미야에서처럼, 전례 없는 “환난의 때(‘차랄’, 1절)가 있을 것이다. 다니엘은 그 환난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간여하여 그들을 구원하신다(1절). 이 놀라운 경험은 그들을 제거하려는 북방왕의 공격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11:44~45). 이러한 고난의 때는 죽은 자의 부활의 있기 직전, 미가엘이 그들을 구원하러 일어날 때에 일어난다. 그것이 마지막 날 사건이다.
3. 요한계시록의 환난의 때 :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시험의 때(‘틀립시스’-환난, 근심)”(계 3:10)라고 부른, 하나님 백성에게 임할 마지막 환난의 때를 말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환난이지만 하나님 백성의 믿음을 파괴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로 충성스런 자리에 남아 있던 자들로 묘사되었다(7:14). 그들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파괴의 바람이 풀려난 후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직전에(6:17~7:3) 이런 경험을 한다. 다니엘에서처럼, 이 시기 동안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님 백성을 없애려고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구하시리라고 요한계시록 13장 11~17절은 분명하게 말한다. 야곱처럼, 그들은 죽음의 공포와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이고 그들은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런 어려운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의 손안에서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신학자, 교수, 목사로 교회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