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당한 선교사와 엘렌 화잇
솔로몬 제도의 총리, 이정표를 세우다
켄트 킹스턴
솔로몬 제도의 총리가 솔로몬 재림교회 병원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마나세 소고바레 총리는 축사를 통해 순교했던 재림교회 선교사들을 추모하고 재림교회의 선구자인 엘렌 G. 화잇을 언급했다.
말라이타 섬 동쪽에 위치한 아토이피 재림교회 병원에서 하객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일간 기념식이 열렸다. 육로가 없는 아토이피 재림교회 병원은 비행기나 배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솔로몬 제도의 수도인 호니아라에서는 비행기로 40분이 걸린다.
소고바레 총리는 재림교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간호학교의 영향으로 솔로몬 제도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정책이 수립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호학교는 파푸아 뉴기니에 위치한 퍼시픽 재림교회 대학의 캠퍼스에 있다.
“솔로몬 제도의 건물 건축에도 재림교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이곳 아토이피 병원과 간호학교 건물을 모델로 해서 건물들이 지어졌습니다. 재림교회의 병원은 솔로몬 제도에서 가장 좋은 병원 중에 하나이고,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는 가운데 운영되고 있습니다.”라고 소고바레 총리가 말했다.
소고바레 총리는 연설 중에 영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고,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196페이지를 낭독했다.
“우리가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하며 여행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바라볼 때 나는 경탄과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확신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소고바레 총리는 아토이피 지역의 지도자들을 독려하면서 재림교회 공동체와 생길 수 있는 문화적 오해와 갈등을 대화로 풀어 나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해 동안 아누타 섬의 새로운 재림교회 건물이 파괴되고 재림교인들을 추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고바레 총리는 콰이오족 사람들에게 복음과 건강한 삶을 전달해 주기 위해 희생하며 일했던 재림교회 선구자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선구자들의 희생으로 1966년 8월 25일에 병상 91개를 갖춘 병원이 신축되었다.
소고바레 총리는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바쳤던 선구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79년에 랜스 라우드 선교사는 트랙터 사고로 순교했고, 메리 세미(1929년 사망), 브라이언 던(1965년 사망), 란스 게르스바흐(2003년 사망) 선교사는 원주민에게 살해당했다.
기념식 후에 참석자들은 배를 타고 우루 항구에 도착하여 가파른 언덕 위해 위치한 메리 세미의 무덤을 찾아 순교한 선교사를 추모했다. 서부 솔로몬 제도 출신의 재림교회 선교사였던 메리 세미는 어린 소녀의 신부값을 놓고 논쟁을 벌이던 중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메리의 남편 세미 푸케케라는 가파른 언덕길로 도망쳐 뛰어내렸는데 바람을 타고 기적적으로 바다에 떨어졌고 이후에 반대편 해변에 있던 배에 의해 구조되었다.
병원의 이름인 아토이피는 콰이오족(族) 말로 “집을 짓기에 어려운 곳”이라는 뜻이다. 1960년대 초반에 병원을 지을 당시, 바닷게 수천 마리가 파 놓은 굴로 지반이 약해졌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추정된다.
솔로몬 제도가 속해 있는 남태평양지회의 보건전도부장 체스터 쿠마 박사는 기념사에서 자신이 아토이피 병원에서 1988년에서 1999년까지 일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도움을 베푸신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으로 소개했다. 1994년에, 재정적 어려움으로 아토이피 병원 폐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하루 동안의 긴 회의와 간절한 기도에도 폐원은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최종 투표 직전에 대표자 중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그 대표자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제대로 말을 잇기 위해 감정을 추스르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대표자는 전화 통화에서 뉴질랜드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토이피 병원의 정상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정과 일치하는 금액이었다.
뉴질랜드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한 쿠마 박사의 회고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앤드루 번 호주 대사와 함께 VIP로 초대받은 뉴질랜드 대사관의 메리언 크래셔 대사도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난민을 돕는 일, “설교만큼 중요해요”
아드라 세르비아 지부장이 현장에서 전하는 교훈
앤드루 맥체스니
재림교회 목회자인 이고르 미트로비치 목사는 재림교회의 사명이란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지난 여러 해 동안 유럽의 난민촌 현장에서 일하면서, 미트로비치 목사는 재림교회의 첫 번째 사명에 맞먹을 만큼 중요한 두 번째 사명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미트로비치 목사는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 난민 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 두 가지 사명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재림교회는 전도회를 개최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효과를 거두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착취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아모스 2장 6~8절과 8장 4~7절을 인용하면서 미트로비치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돕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난 5년간 아드라 세르비아 지부장으로 일했던 미트로비치 목사는 재림교회의 구호 사역으로 인해 난민들과 다른 구호 단체 직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통역사 중 한 명이 재림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세르비아에서 아드라는 난민 사역 외에도 다양한 다른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수많은 난민이 유입되는 동안 발칸 국가에 살고 있는 재림교인 6,000여 명 중 상당수가 난민을 위해 음식을 모으고 의복, 생수 등 생필품을 나눠 주는 일에 참여했다.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지역을 관할하는 남동부 유럽 연합회장인 조르디자 트라지코브스키 목사는 재림교인들이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여 난민들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지만, 난민 수 통제를 위해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만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으로 계획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우리 교인들은 세르비아로 오는 난민들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지역 교회들이 빠른 시간 안에 자체적인 조직을 만들어 난민 돕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다른 NGO 단체들이 구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청년들이 난민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트라지코브스키 목사가 말했다.
유럽의 난민 문제가 통제 불능 상태에 접어들었던 2015년 7월에 아드라는 다른 4개 구호 단체와 공동으로 베오그라드 역사 근처에 난민 구호 센터를 열었다.
“아드라는 국내 재난 구호와 국제 재난 구호를 위해 상당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세르비아 아드라의 난민 구호 센터는 구호 사업에서 빠른 대응과 적절한 계획이 열매를 맺은 좋은 선례가 되고 있습니다.” 국제 아드라 회장 조너선 더피가 말했다.
현재 난민 약 5,000명이 세르비아에 거주하고 있다. 미트로비치 목사는 매일 수천 명이 쏟아져 들어오던 1년 전보다 난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아드라 난민 보호 센터를 찾는 난민이 많다. 난민 보호 센터 2층에서는 음식과 생필품, 심리 치료, 어린이 프로그램, 부모들과 십 대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구호 단체가 운영 중인 1층에서는 법률 지원과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매일 이용자 50~70명이 찾는 난민 보호 센터는 24시간 운영 중이고, 아드라는 유급 직원 7명을 고용했다.
미트로비치 목사는 현재 진행 중인 난민 사태를 대하면서 재림교회가 멋진 정장 차림으로 깨끗한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을 직접 도우라는 요청에 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트로비치 목사는 예수님도 그분의 지상 봉사 기간 동안, 설교하는 것보다 병자를 치료하고 약자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민 구호 사업을 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성경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난민이었어요.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 예수님, 모두 난민이었지요. 구호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 성경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요.”
오늘날의 난민도 성경 인물들처럼 자신의 집을 잃고 쫓겨난 사람들이고 최소한의 생필품만 가지고 거주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난민들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난민 대부분이 보수적인 종교관을 지니고 있어요. 자신들을 돕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나게 된다면, 난민들이 진짜 하나님을 발견할 기회를 갖게 될 거라고 믿어요.”
미트로비치 목사는 통역과 사회복지사로 아드라와 함께 일하는 비재림교인 중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아드라 세르비아는 작은 규모지만, 난민 구호 사업을 위해 전문직 종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비신자 동료와 자신은 교리에 대한 토론을 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과 다른 아드라 직원들의 설교를 듣고 있다고 미트로비치 목사는 말했다.
“우리가 함께 일하는 비신자 동료들과 한마음이 되어 일할 때, 성공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가 가장 먼저 도와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가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입니다.”
선교사가 된 폴란드 축구 선수
다리우스 긴다의 안식일 준수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앤드루 맥체스니
연봉 50만 달러의 축수 선수 계약을 거절한 다리우시 긴다를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렀다.
재림교회 모태교인인 긴다는 안식일 준수를 위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한 결정에 대해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이것이 저의 신앙이에요. 돈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죠. 저의 신앙을 존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모시겠다는 결정으로 그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긴다는 인구 3,850만 명 중에 재림교인이 5,800명에 불과하고 국민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이자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인 폴란드에서 영웅이다. 긴다가 보여 준 믿음의 모본에 감사한다는 편지가 거의 매일 한 통씩 도착한다.
축구 선수 긴다(46세)는 선교사이다.
“우리는 세상이 가리키는 것을 쳐다봐서는 안 돼요.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은 단지 몇 초면 사라져 버려요.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세요. 그것만이 영원한 것이지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애드벤티스트 월드>와 인터뷰하면서 그는 말했다.
스포츠 팬들에게 ‘다렉’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긴다는 축구 선수일 뿐 아니라 크리스천 음악가이고, 남서부 폴란드의 초즈노프시 재림교회의 안식일학교장이다. 23세, 15세인 두 딸이 있고,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일주일 중 3일은 5부 리그 축구 팀인 스코라 야드위신 팀의 감독으로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긴다는 19세 되던 해인 1989년에 프로축구 선수가 된 후, 안식일에 경기 참여를 거부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긴다는 매우 신실한 재림교인입니다. 안식일 준수를 포기했다면 축구계에서 전설적인 선수가 됐을 것입니다.” 폴란드 재림교회 지도자 야로슬라프 지에길레브스키 목사가 말했다.
큰 돈
긴다의 어머니는 재림교인이었다. 긴다는 순종적인 아들이었다. 주변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긴다는 성실하게 공부하고 안식일에는 교회에 출석했다. 축구를 좋아했던 긴다는 축구도 열심히 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축구할 때 즐거웠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절해 보이는 긴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4부 리그 팀인 초즈노비안카와 첫 번째로 계약할 때 긴다는 금요일 해 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 지는 시간까지는 경기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놀랍게도 팀은 이 어린 스트라이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폴란드의 공산주의 정부가 무너지기 한 달 전인 1989년 5월의 일이었다.
“16살 때 침례를 받았어요. 제가 결코 안식일을 어기지 않을 것을 그때 알았어요.” 긴다가 말했다.
1993년에, 당시 23세였던 긴다에게 리그 최고의 자글레비에 루빈 팀이 스카우트를 위해 테스트를 받아 보라고 제안했다. 스카우트를 위한 신체 테스트 후에, 테스트에 참여했던 9명 중 긴다와 다른 선수 한 명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계약 조건은 월급 2만 달러에 골을 기록할 경우 보너스로 1만 6,000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것이었다. 새롭게 민주 정부를 이룩했던 당시 폴란드의 경제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긴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서명하려고 펜을 들었는데, 계약서 조항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러고는 계약을 포기했죠.” 당황한 팀 관계자가 무엇이 문제인지 물었다.
긴다가 답했다. “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입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는 경기할 수 없습니다.”
팀 관계자는 아쉬워했고 계약은 무산됐다.
매스컴을 놀라게 하다
긴다는 초즈노위안카 팀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속한 4부 리그 팀의 연봉이 적었기 때문에 그는 지저분한 물펌프 공장에서 일하면서 축구를 해야 했다. 그러던 중 1998년에 폴란드의 유명 기자가 긴다를 인터뷰했다. 폴란드의 유력 일간지에 5년 전 긴다가 고액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던 사연이 실렸다. 기사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15개 신문사와 여러 TV 방송국에서 찾아와 그의 집, 공장, 교회에서 긴다를 인터뷰하고 소개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몰랐어요. 인터뷰를 통해 저는 재림교회에 대해 소개했고, 제 인생에서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긴다는 바로 그때 자신이 축구를 통해 복음전도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제가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긴다에 대한 신문 기사와 TV 프로그램은 인터넷에도 소개됐고, 지금도 그는 거의 매일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있다.
“편지나 이메일로 자주 연락해서 저에게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제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제 신앙을 간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그래서 10년 전의 일이지만, 제 간증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요. 오늘날 사람들도 10년 전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저의 경험이 그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신문과 방송을 타고 긴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이전에 긴다를 바보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에 대한 기사가 실렸을 때, 그분들은 저의 결정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저에게 편지를 보내요. ‘믿음을 굳게 지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앤드루 맥체스니
믿음의 기도로 캠포리 행사장에 비가 그쳤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은 패스파인더 대원 300명
라트비아의 패스파인더들이 학수고대하던 날에 비가 내려 행사가 중단될 판이었다.
지난 7월, 라트비아 패스파인더 캠포리 개회식 15분 전,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패스파인더들은 비교인 친구, 어드벤처 클럽의 어린이, 장년 지도자들과 함께 대형 텐트 안에 모여 있었다.
750명이 일주일 동안 묵을 예정으로 모였는데 19년 동안 지속돼 온 라트비아 패스파인더 야영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중단될 위기가 닥친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비를 만드신 하나님, 저 비를 멈춰 주세요.’ 하고요.” 라트비아 재림교회 패스파인더 부장 구나 리마네가 말했다.
그때 리마네 부장의 무전기가 울렸다. 야영장 반대편에 있었던 패스파인더 지도자였다. “시작해야 해요.” 그가 말했다. “구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리마네 부장은 스피커를 통해 기도했고, 모든 어린이가 그 기도에 귀 기울였다. 그 후에, 드럼 연주 팀이 빗속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드럼 연주 팀이 개회식 장소에 도착했을 때, 별안간 비가 멈췄다.
“개회식 2분 전이었어요. 그리고 캠포리 기간 동안 다시는 비가 내리지 않았어요.” 리마네 부장이 말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어린이와 부모들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이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함께 참석한 부모들도 말했어요. ‘이럴 수가! 하나님은 살아 계세요.’”
그날 있었던 일로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다. 그날의 일은 하나님이 패스파인더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점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고 라트비아 교회 지도자들은 말했다. 인구 2백만 명인 라트비아에 재림교인은 4,000명이다.
“라트비아의 패스파인더들은 열정이 넘치는 훌륭한 선교사들입니다.” 라트비아합회장 빌니스 라트갈리스 목사가 말했다.
패스파인더들은 아드라가 제공하는 선물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나눠 주고, 생강과자를 굽고 비재림교인 친구들을 여름 캠포리에 초대하여 패스파인더 클럽에 가입시킨다.
“여름 캠포리는 패스파인더를 하나로 묶어 주는 매우 중요한 행사예요.” 리가에서 온 패스파인더 지도자인 마이야 폴리나(22세)가 말했다. “학기 중에는 참석하는 사람, 불참하는 사람도 있지만 캠포리에는 모두 다 참여하거든요.”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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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 참석자들이 재림교인 선교사로서 순교한 메리 세미의 무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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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난민 센터 바깥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이고르 미트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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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2012년 소속 팀 유니폼을 착용한 다리우스 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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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다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폴란드 축구 선수이자 코치인 긴다가 바르샤바에서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7월 라트비아 살락그리바에서 개최된 캠포리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개회식을 기다리고 있는 패스파인더 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