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인 유산
KGB 제복을 입은 천사
하나님은 숱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2부
파벨 리베란스키
(1부에서 파벨은 몰도바 군인으로 징집됐다. 이때 KGB 장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는데….)
군대에서 맞이한 첫 안식일은 레닌 방에서 보냈다. 정말 이상했다. 이전에는 청년들, 형제자매와 함께 교회에서 안식일을 보냈는데, 이제는 공산주의 지도자들과 군대 장교들의 초상화와 선전 도구들 사이에 앉아 있다. 매번 하사관이 들어와서 물을 때마다 나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월요일이 되자 KGB 소령이 나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서 모터사이클 면허증이 있는지 물었다. 면허증은 집에 있었다. 소령은 내가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식일 문제와 음식에 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KGB가 신자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복무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반대 이유를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면허증을 보내 달라고 집에 전보를 보냈다. 믿을 수가 없었다. KGB가 자신들의 소굴에 나를 가둬 두려고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던 게 분명하다. 계속 기도하면서도 끊임없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 성도들의 편지로 격려를 받고 큰 힘을 얻었다.
군 생활
막사에 있는 고참들은 ‘신참’ 병사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믿음을 포기하라는 압력에다가 나는 고참의 괴롭힘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자신을 굳게 지키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저녁에는 기타를 연주하며 삶, 어머니, 우정 그리고 그리스도인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렀는데 그 후로 병사들이 나를 정중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군 생활 초에 소령은 나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나와 함께 나란히 걸어서 KGB 소령이 들어서자 모두가 일어섰다. 요리사에게 다가가더니 “메뉴에 뭐가 있나? 돼지고기 요리가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요리사에게 돼지고기나 그 기름으로 요리하지 않은 식사를 나에게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그 명령에 요리사와 그 지시 사항을 들은 모든 사람이 놀랐다.
소령의 아내 알라 세르듀코바는 해왕성이라는 리조트에서 수석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의 운전병으로 일하는 덕분에 덤으로 훌륭한 요리도 접할 수 있었다. 흑해로 가족 휴양을 떠날 때 소령이 나를 데려간 호의 또한 큰 선물이었다.
안식일에 일하는 압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소령은 자신의 사무실을 내게 허락했다. “토요일에 일어나자마자 여기로 와라.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테니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기도해도 좋다.”라며 편의를 봐주었다. 나중에는 자신의 사인과 도장이 찍힌 외출증 수십 장을 내게 주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내 이름을 적고 군부대 밖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군대에 가서 처음으로 수후미에 있는 교회에 참석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예배와 영적인 것에 갈급했던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교회에서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안식일 대부분은 소령의 사무실에서 보냈다. 소령은 나보다 늦게 도착하면 노크했고 내가 문을 열면, “공부도 하고 읽기도 하고 쉬라”고 말하면서 들어오곤 했다.
금요일에 이동할 일이 생기면, 소령은 항상 일몰이 되기 전에 안식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했다. 안식일에는 나에게 절대로 일을 시키지 않았다.
성경
어느 날 소령은 자신의 빈 책꽂이를 가리키며 “성경 공부나 독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뭐든지 갖다 놓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12살 생일 때 받은 소중한 성경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어린 나에게 쇼핑백을 들려서 교회 장로님 댁에 보냈던 어느 안식일 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바실리 장로님은 한동네에 살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종종 장로님이 교회 성도들을 위해 어떻게 성경과 예언의 신을 제공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감시했다. 나는 장로님께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장로님은 집 안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바깥 어딘가에서 장로님은 작고, 축축하고, 냄새가 심한 꾸러미 하나를 갖고 왔다. 장로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신 뒤 나에게 곧장 집으로 가되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말고 아무에게도 그 꾸러미를 보여 주지 말라고 하셨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축축하고 조금은 손상된, 새 성경책의 포장을 벗기셨다. 작지만 무척 아름다운 성경책이었다. 축축했던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바실리 장로님이 뒷마당에 성경책을 묻어 두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룩이 지고 눅눅해졌지만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소령의 사무실에 성경책을 가져올 수 없었다. 밀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뒷면에는 ‘성서공회’에서 출판되었다는 표시가 있는데 소련에는 성서공회가 없었다.
어느 날 알렉세이 시트닉 목사님이 모스코바 당국에서 재림교인에게 출판을 허락한 잡지를 들고 찾아오셨다. 나는 목사님의 성경을 펴서 출판 장소와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1968년 모스크바’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잘된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성경을 바꾸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인쇄된 잡지와 함께 성경책을 소령의 사무실에 가져갈 수 있었다. 안식일뿐 아니라 다른 자유 시간에도 나는 사무실로 갔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장소가 생긴 것이다!
소령은 나의 책들을 주목해서 살펴보았다. 모두 모스크바에서 인쇄된 적법한 출판물임을 확인했다. 아마도 “교회 형제들이 읽으라고 준 모든 것을 가져와도 된다.”고 말한 것은 지하 출판물(타자기로 담배 종이에 타자를 친 인쇄물)이 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나는 소령에게 성경을 읽어 보라고 제안했고 내가 군 복무를 마칠 때쯤 그는 거의 다 읽게 되었다. 어느 안식일 내가 성경을 읽고 있을 때 소령은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조용하기에 쳐다봤더니 나를 보고 있었다. 매우 존경하는 표정으로 “내가 성경 읽기를 방해하고 있었지?”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소령의 존경심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집으로
군대에서는 군사•정치 교육에서 가장 우수한 병사들만 휴가를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포상금과 함께 2주간 휴가를 받았다! 소령이 도와준 것이다. 소령은 나의 부모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존경하고 높이 평가했다. 고향 교회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간다니 감격스러웠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청년 사역과 선교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3년 동안 몰도바 지하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자원봉사와 결혼 그리고 목회와 교회 행정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나의 KGB 천사를 잊은 적이 없다.
군 복무를 마치고 30년이 지난 2011년에 나는 소령의 가족을 찾아 전화했다. 사모님은 나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내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기억하고 있지. 소령님이 ‘파벨에게 돼지고기를 먹이지 마라.’고 항상 말했으니까.”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나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방문하여 기독교 서적을 나누고 기도하며 도우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소령의 가족에게 나타내셔서 그들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지니게 되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
소령의 가족과 하나님께서 군대에서 내게 행하신 모든 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신비하고 선하다.
파벨 리베란스키
유로-아시아지회의 출판전도•청지기•신탁부장이다.
캡션
13-1
소련군에 징집된 필자
13-2
아내(왼쪽), 두 딸, 사위와 함께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