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하나님과 가난한 자
이방인, 고아, 과부는 하나님께 특별하다
톰 에번스
신명기 10장 18절에는 하나님이 각별히 여기는 세 부류가 언급된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하나님께 특별한 삼총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도우시는가?
그 대답은 우리 모두와 연관되어 있다. 다음에 인용된 구절을 보면 하나님 자신이 직접 그들의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떡과 의복을 주시나니”(신 10:18). 그러나 신명기에 기록된 이들 세 부류에 일어난 11가지 사건들을 모두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와주려는 그분의 뜻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신다는 걸 알 수 있다.
신명기 14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난한 자를 도와줄 프로그램의 개요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를 묘사하고 있다.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저버리지 말지니라.” 그분께서는 권고하신다. “매 삼 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 14:27~2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분의 특별한 삼총사뿐 아니라 위 구절에서 뜻하는 레위인들을 돕는 일꾼으로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따라 직접 복을 연관시키셨다.
외국인, 고아, 과부를 대하는 방법에 관한 하나님의 지침은 꽤 구체적이다. 그분의 백성은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거나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아야 했다(신 24:17). 그들은 수확기에 곡식을 벨 때 송두리째 베지 않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감람나무 열매와 포도, 밀을 남겨 두었다(19~21절).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4). 수확한 곡식의 십분의 일을 특별 십일조로 레위인에게 주어야 했고 그것으로 객과 고아와 과부를 보살펴야 했다(신 26:12). 이 특별한 세 부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사회의 소외 계층이 하나님의 호의를 얻지 못한다는 통념과 정반대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가운데 그분의 미소가 드러나도록 하셨다. 그들 역시 그분의 자녀이며 우리의 형제자매이다.
고아
‘아비 없는 사람’을 뜻하는 고아는 객, 고아, 과부를 한데 언급할 때 18번, 그 외에 추가로 23번이 더 등장한다.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 시편 68편 5절일 것이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편 27편 10절은 고아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전쟁이나 사고, 질병으로 아버지를 잃게 되면 그 자녀와 미망인은 경제적으로 비참한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열왕기하 4장 1~7절은 남편을 잃은 슬픔 가운데 절박한 재정적 상황에 맞닥뜨린 한 과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자비한 채주가 죽은 남편의 빚을 갚으라며 과부의 두 아이를 종으로 삼으려 했다. 그녀에게 기적적인 구원이 필요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필시 이웃에게 도움 받지 못했거나 지원이 미흡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이 해결해 주지 못한 것을 그 여인은 하나님에게 직접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기대하는 것
하나님은 오늘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고아를 위한 국제 기독교 연대(Christian Alliance for Orphans)에 따르면 어린이 1,760만 명이 양쪽 부모를 잃은 ‘이중 고아’이며 최소한 한쪽 부모가 없는 아이는 1억 5천만 명이다. 이른바 ‘사회적 고아’1 즉 시설(보육원)에 있는 아이나 부랑아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하나님 자녀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는 그분의 섭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교회가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을 통해 세상에 알려 주는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자 기대이다.
나의 간증
2014년, 우리 가족은 어느 단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143’을 통해 크리스마스 때 고아 형제 둘을 초대하기로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들을 네 번 더 초대했고 동유럽에 있는 그들의 보육원도 방문했다. 그 아이들은 영어를 배웠고 나의 아들 녀석 하나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과 소통했다. 우리는 현재 그들을 입양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
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을 부모가 버릴 수 있는지 의아했다. 미래가 촉망되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가족이 필요하다. 사랑해 주고 키워 주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게 해 줄 가족 말이다. 그들은 세상의 가장 세속적인 곳으로부터 왔다. 기도하며 교회에 나가고 가족 예배를 드리는 일,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 모두 그들에게는 새로운 개념이다. 우리와 함께한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의 삶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기뻤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형은 어느 안식일에 나의 설교를 들은 후 내게로 와서 서툰 영어로 말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도울 거예요.”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감정이 복받쳤다.
우리 가족의 경험은 주변의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이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보여 달라고 간절히 구해 보라. 엘렌 화잇은 고아를 도우라는 성경적 명령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결혼한 이후에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는 지시를 받았고 한동안 아이 몇을 직접 맡아서 길렀다. 그다음에는 그 아이들을 돌볼 가정을 찾아 주었다. 신자들에게 이것은 자신들도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모본이 되었다.”2
특히 자주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았음에도 3~5세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교육하고 훈련했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세 부류, 즉 이방인, 고아, 과부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화잇은 이 문제를 “우리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각 교회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3
예수님께 이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것은 그분의 결정에 관여한다. 자기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협력에 그분은 크게 영향 받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1https://cafo.org/wp-content/uploads/2015/06/Christian-Alliance-for-Orphans-On-Understanding-Orphan-Statistics_.pdf
2<가려 뽑은 기별>, 34
3 위의 책
톰 에번스
미국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에 있는 북미 복음전도연구소 부소장이다.
발문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가운데 그분의 미소가 드러나도록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