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문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하셨는데, 왜 루시퍼와 그의 천사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루시퍼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짓된 억측에 근거한 듯하다. 아마도 질문의 의도는 ‘왜 타락한 천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들을 보내지 않으셨나?’일 것이다. 우주적인 대쟁투가 성경 신학의 중심 주제일지라도 성경에는 그 시작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없다. 그래서 대쟁투가 시작될 때 하늘 무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다 알기는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질문에 관련해서 개인적인 생각 일부를 나누는 일뿐이다.
1. 공의와 사랑 : 죄는 창조된 게 아니다. 그것은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 죄는 창조와 존재를 부정한다. 죄란 지적인 피조물이 파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겠다는 부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비존재라는 ‘무(無)’를 택한 것이다. 하늘 무리는 반역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을 정죄하는 하나님의 행동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사랑으로 행하셨다. 자신의 선한 피조물이 완전히 파괴에 휩쓸리지 않게 하신 것이다. 반역한 천사들조차 대쟁투의 마지막 때에는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할 것이다(예, 빌 2:10~11).
2. 루시퍼가 지은 죄의 독특함 : 우리는 대체로 죄를 상태(예를 들어 죄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나 행위(예를 들어 범법하는 일)로 이해한다. 루시퍼와 그 천사들의 경우에 관하여 우리가 접하는 죄의 형태는 무엇보다 낯설다. 죄는 아직 노골적이지 않았다. 죄는 그들 안에서 잉태되면서 그들의 본성을 현격하게 바꾸고 해체시켰다. 이 혼란한 비정상은 하나님의 창조 일부를 서서히 허물었고 스스로 창조주의 뜻에 대한 거역을 표현했다. 피조물을 죄로 유인하는 표면적인 힘은 아직 없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죄와 악이 시작하는 순간이다. 아담과 하와의 상태는 이와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죄 역시 루시퍼의 죄와 마찬가지로 변명의 여지가 없고 같은 형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3. 결심과 계시 :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와 그의 천사들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셨다. 반역한 천사들에게 그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일 때문에 신성한 우주의 질서와 그들 자신까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음을 성경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죄의 탄생을 멈추고자 애쓰셨다. 그분의 아들, 즉 하나님과 창조물 사이의 중보자를 통해(골 1:15)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계시하셨다. 그들은 또한 그들 사이에 있어 왔던 하나님의 아들 즉 천사장(단 10:21; 12:1; 유 9; 살전 4:16; 계 12:7)이 바로 창조주이셨음을 깨달았다(골 1:16). 이 장엄한 계시로 인해 아마도 많은 천사들이 다시 하나님께 충성했을 것이며 반란도 그쳐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증거와 논증을 조사하기 위한 사법 과정이 시작되었으며 법정의 판결은 분명했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사탄에게 죄가 있음이 드러났다. 스스로를 부패시키는 죄악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루시퍼와 그 무리들의 선한 본성이 파괴된 이상, 이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이 계시한 사랑을 거절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도 동일한 조건을 부여하셨다. 우리와 같이 인간이 되신 자기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가장 찬란하게 자신의 사랑을 계시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졌다. 죄악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대부분이 파괴됐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놀랍게 보여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 파괴는 멈춘다. 그 사랑은 반역적인 피조물을 정당하게 단죄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정당하게 구원한다(롬 3:25~26).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목사, 교수, 신학자로 교회를 섬긴 뒤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