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작은 손
예수님이 어린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어린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에 대해 의심이 생긴다면, 그건 단지 그분의 이름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서 읽기를 중단했을 때뿐이다.
그분은 어린 소년의 도시락이 위대한 기적의 출발점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분은 아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을 정도로 그분에 대해 무지했던 제자들을 나무라셨다. 열두 살 나이에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셨다. 탐욕적이고 무정한 자들의 성전을 비우셨고, 제도적으로 성전에서 배제되었던 어린이들이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틀림없는 사례에만 그친 게 아니라 그분 자신이 어린이가 되셨고 망가진 이 세상에서 어린이들이 늘 겪어야 할 모든 연약함과 위험을 떠안으셨다. 그분은 가난한 자의 아들로, 억압받는 소수 집단의 구성원으로, 잔혹한 독재자의 분노를 피해 도망치는 하찮은 난민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른 길이 있었을 텐데도 어린이의 시절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 상태를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영속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 세상 어린이의 이야기와 연결하셨고 신자들이 세상의 어린이를 대하는 모습이 곧 자기를 대하는 모습의 복사판이라고 선언하셨다. 어린이가 자라나기만을, ‘성숙’하기만을 혹은 우리처럼 숙련되기만을 바랄 일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소중히 여기라고 하신 것은 아이들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현재 가치, 즉 걱정 없는 웃음, 끝도 없는 질문,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이다.
언젠가 그분의 은혜가 우리의 메마르고 문제 많은 자아를 뚫고 들어올 때 우리는 그분의 왕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다. 어린이로 오셨던 그분에게 언젠가, 어디선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맡겼다는 뜻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