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인 생활
두 엘렌 화잇
둘 중 누구를 알고 있는가?
레이철 윌리엄스 스미스
교우들과 영화 ‘Tell the World(세상에 전하라)’를 함께 보았다. 시청한 뒤 서로 생각과 의견을 나누었고 그러다가 예상치 못했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졌다.
시청하는 내내 그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조지프 베이츠 내외와 함께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1970~80년대 어린 시절에 석유 등불 옆에서 그들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 구들로 하퍼 벨이 장작 패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도끼를 휘둘러 장작을 쪼개던 일이 떠올랐다. 영화 속 여자들이 착용했던 긴 드레스와 보닛(턱 밑에 끈을 매어 여자와 어린이가 착용하는 챙 없는 모자)은 바로 내가 입고 썼던 것이었다. 매일 엄마와 나는 그런 식으로 옷을 입었다. 우리가 썼던 보닛이 훨씬 더 컸지만.
눈물을 흘린 이유는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만이 아니다. 주된 이유는 두 엘렌 화잇을 대면하고 그 둘이 내 삶에 끼친 영향 때문이다. 바로 과거와 현재의 엘렌 화잇이다.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장소
먼저는 어린 시절에 만난 엘렌 화잇이다. 그녀의 책 표지는 빨간색이었다(물론 그녀는 검은 표지의 책 그리고 나의 부모들이 연구했던 미간행 원고도 많이 기록했다.). 내가 보닛을 착용하도록 배운 것도 그녀 때문이다. “얼굴과 머리가 드러나는 작은 보닛은 단정치 못하게 보인다.”1고 그녀는 말했다. 또 “땅에 질질 끌리는 매우 긴 옷이나…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거의 무릎까지 올라오는 매우 짧은 옷”2을 피하기 위해 내 옷은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올라오는 길이였다.
영화에서 엘렌 화잇이 놀란 남편에게 자신이 깨달은 식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또 있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빨간 책의 엘렌 화잇이 말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나는 6살 때부터 경험했다. 하루 두 끼 식사에 “식간에는 절대 한 입도(먹으면 안 되고).”3 또 그녀가 권면하지 않은 것도 실행했다. 주 1회 금식, 열흘 금식, 생식, 관장 기타 등등.
그 엘렌 화잇 때문에 우리는 광야에 외따로 살면서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도시 생활이 유달리 불건전하고 특별히 성결하지 못했던 당시에 그녀는 “도시에서 벗어나라.”4라고 말했다. 그 엘렌 화잇 덕분에 우리는 육성, 간단한 음향 효과, 휴대용 녹음기를 이용하여 성경 이야기를 실감나게 만드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연극은 죄라고 그녀가 진술했기 때문이다(사실 엘렌 화잇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혼자 집에서 공부했다.
피자 한 조각을 먹거나 활기찬 음악을 듣거나 기도할 때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을 바지를 입고 보석을 착용하고 음행하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만큼 나쁘게 여긴 이유도 엘렌 화잇의 글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
그러나 12살에 나는 또 다른 엘렌 화잇을 만났다. 그녀는 어린아이로서 내가 갈망하는 것들 대부분을 짓밟아 버리고 수천 가지의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라도 어기면 죄책감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엘렌 화잇이 말했다고 하는 것들에 넌더리가 난 나머지 나는 그녀의 글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직접 읽어 보기 시작했다. 성경의 놀라운 이야기들과 예수님의 삶에 관하여 그녀가 상세히 묘사해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정로의 계단>을 읽고 나서는 나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게 되었다. 달밤에 집 밖으로 나와서 겟세마네의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읽는 것이 가장 즐거운 여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엘렌 화잇 덕분에 마음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고정관념에 도전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의도는 좋았지만 뭔가 잘못 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그분들이 핵심에서 벗어나 균형을 잃었다는 걸 내가 깨닫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다음 글을 읽으면서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는 걸 그때 겨우 깨달았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에게 삶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명성과 지위를 얻을 만큼 교육받고 싶은 야망이 있는가? 감히 표현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지성의 상아탑에 이르고 심의회, 입법회의 자리에 앉아 국가의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가? 이러한 열망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5
나의 부모는 세상을 등졌고 자녀들이 세상을 피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엘렌 화잇은 말하고 있다. “여러분 각자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목표를 높게 세우라.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말라.”6
학교도 안 다니고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보닛과 긴 옷을 입고 국회에 서서 법안 통과를 지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 넓은 비전
그런데 또 다른 글귀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더 원대한 뜻을 품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복음에 문을 열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하나님께 팔을 벌린다. …세상 곳곳에서 죄에 눌린 심령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싶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님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 그분의 사랑에 관하여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백만도 넘는다. 그들은 이 지식을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그들의 외침에 대답하는 것이다.”7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호소처럼 울렸다. 수백만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머리에 보닛을 쓰고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결국 나는 원칙들에 관하여, 변하지 않는 근본 진리에 관하여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 원칙이 내 삶을 지배하고 변화를 이끌었다.
그 후 예수님과 예언의 신이라는 선물을 관계에 기초하여 이해하게 되었고 갑옷처럼 자신을 구속하는 신념들을 털어 버리고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일주일 전에, 나는 극단주의에서 빠져나와 활기찬 신앙을 시작하게 된 나의 이야기를 일반 청취자 6만 명에게 팟캐스트를 통해 전했다. ‘그래! 이제 수백만의 사람 중 일부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밤 ‘Tell the World’를 시청한 것이다. 내가 본 엘렌 화잇은 오래전 나 자신이 새롭게 만났던 그 엘렌 화잇이었다. 그 엘렌 화잇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한편,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성경으로 향하게 했다. 이 엘렌 화잇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과 그의 사랑에 관하여 전하라고 촉구했다.
나는 엘렌 화잇이 둘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무기와 같은 존재, 즉 맹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인물인 엘렌 화잇이다. 또 하나는 자신에게 계시된 놀라운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애쓰면서 사랑 넘치는 하나님의 가슴 뛰는 소리를 모두가 더 잘 듣기를 바라는 진정한 인간 엘렌 화잇이다. ‘Tell the world’에서 바로 그 엘렌 화잇을 담아낸 것 같다. 실제로 생존했던 엘렌 화잇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진짜 엘렌 화잇의 모습 말이다.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런 것이 전부 다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뿐이었다.
artv.adventistreview.org에서 ‘Tell the World’로 검색하면 영화를 시청할 수 있다.
1<교회증언 1권> 189
2상게서, 464
3<절제생활> 191
4<가려 뽑은 기별 2권> 141
5<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6
6상게서
7엘렌 G. 화잇, <교육> 262~263
레이철 윌리엄스 스미스(Ph.D., Ed.D.)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