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교리
스테판 회셸레
섬길 준비되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회를 선사하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남에게 거의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두려워하거나 어느 정도의 교만 때문에 씨름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는? 그렇지 않다. 나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목사이자 시간제로 행정 업무를 보고 있어서 흥미진진한 활동이 가득하다. 더욱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들을 가장 탁월하게 활용하는 곳에 몸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내 일이 약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살짝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이 드라마에서 나의 역할은?
1989년에 독일이 평화롭게 통일된 이후로 최근 3년간 유럽은 가장 극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2015년 당시 독일에만 난민 90만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이들 가족 대다수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슬픔을 겪었다. 정치가들은 그들을 어떻게 수용할지 수개월 동안 논의했다. 유입되는 난민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공개토론회를 지켜보는 내 아이들조차도 이런 사태 해결이 폭력 없이 진행된다는 데 놀라워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학과 교수인 나의 역할은 여기서 무엇일까?’ 나는 계속해서 자문해 본다.
내가 사는 독일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세속적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고무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이런 난민들을 돌보는 활동을 가장 많이 한다.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어쩔 줄 모르는 청년과 가족들에게는 갖가지 도움이 필요하다. 무료로 기초 언어를 가르치는 일부터 서류 작업을 돕는 일, 난민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일에서부터 본국인과 이주민 사이에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까지,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를 버리고 떠나온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일에는 끝이 없다.
나 자신에 대해 살짝 불만이 생기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아내는 지난해 가을 사회 활동 프로그램을 마치자마자 난민구제 기관에서 일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인도주의의 최전선에서 봉사하고 있다. 반면에 나는 그저 계속 가르치고 마감 시간이 다가온 프로젝트 연구를 완수하고 학교 행정 업무를 마무리한다. 내가 더 흥미진진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최전방에서 선교하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물론 독일 재림교회가 신속하게 ‘난민과 함께’라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을 나는 기쁘게 여긴다. 이 지역에서 사역을 진행하는 교회마다 아드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떨까? 왜 나는 당장 이런 역사적인 일에 참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을까?
은사의 적절한 활용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도 사람들은 누가 어떤 과업을 성취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 내적 갈등, 사회의 적대적 시선 등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자신들이 그 일을 전부 떠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사도들은 곧 깨달았다. 다른 이들이라고 사회 사업을 하면 안 될 게 무언가?(행 6장) 타 문화 사역에 은사가 있다면(갈 2:7~10), 그들은 그것을 사용해야만 한다. 모두가 설교를 하거나 가르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사회복지사는 아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 못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독특한 은사를 지닌 이들이 진짜로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조그만 교회가 보여 준 사례가 그렇다. 중년의 여성들과 나이 든 교인들은 오랫동안 청년센터를 운영하면서 아주 단순하지만 공동체에 꼭 필요한 사역을 해 왔다. 그들은 비록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조그만 마을에서 가난한 자들을 돕고자 했다. 평일에는 오후마다 십대 아이들이 찾아와 놀고, 어울리고, 숙제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최근에는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온 아이들도 참석했다. 후에는 자신들이 예배에 참석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중 10명이 그리스도께 삶을 바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저 평범한 사람 몇 명이 자기 지역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능으로 봉사했을 뿐이다. 그들은 시간을 내어 일상의 문제를 가지고 온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기쁨을 나누었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영적인 은사가 황홀하거나 초자연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때로 타고난 솜씨인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옳은 일을 하는 데 또 문제를 바로잡는 데 이런 재능을 크게 활용할 수 있다. 하나님은 봉사에 가장 적합한 사람 혹은 봉사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은사를 통해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게 하신다. 따라서 영적 은사의 활용은, 일상적인 활동이라도 제대로 실행하면 예상 밖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은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에 대해 마르틴 루터는 “말을 돌보는 하녀와 왕자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어쩌면 여러분은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일을 해 왔고 더 이상 그 일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회의를 준비하거나 열 번이나 가르쳤던 과목을 또 가르치는 것같이 말이다. 그것은 또 난민을 방문하고 먹을 것을 전하는 일처럼 단순한 일일 수도 있다(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 일은 시간을 내어 경청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매일 할 수 있는 재능이다.). 결국 하나님의 은사는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훌륭한 도우미가 되려는 나의 야망과도 관계없다. 그것들은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이며 일을 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스테판 회셸레(Ph.D.) 알제리와 탄자니아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독일 프리덴사우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과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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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은사와 선교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의 모든 교인에게 영적 은사를 주사 교인 각자가 교회와 인류의 공동 유익을 위한 사랑의 봉사 사업에 사용토록 하셨다. 이 은사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분의 뜻대로 각 교인에게 주어졌으며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임무들을 수행하는 데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재능과 봉사의 직무들을 공급해 준다. 성경에 의하면 이런 은사들에는 믿음, 병 고치는 일, 예언하는 일, 복음 전도, 가르치는 일, 다스리는 일, 화목하게 하는 일, 동정을 베푸는 일, 백성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기 위한 자기희생적 봉사와 사랑 등이 포함된다. 어떤 교인들은 봉사의 일을 위해 준비시키고, 교회를 영적으로 성숙게 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지식의 일치를 가져오는 일에 특히 필요한 목회 사업과 복음 전도 사업과 가르치는 직무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성령의 은사를 받아 교회가 인정하는 임무에 종사하게 된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성실한 청지기로서 이러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할 때 교회는 거짓 교리의 파괴적인 감화로부터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육성하에 성장하게 되고, 믿음과 사랑 안에 굳게 서게 된다(행 6:1~7; 롬 12:4~8; 고전 12:7~11, 27~28; 엡 4:8, 11~16; 딤전 3:1~13; 벧전 4:10~11).
*2015년 대총회에서 수정된 부분은 <교회지남> 편집실에서 자체 번역한 것이며 한국어로는 아직 공식적으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