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교리
마르코스 블랑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개인적인 종말론과 우주적인 종말론의 균형
여러 대륙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필리핀에서 예언에 관하여 생기 넘치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같은 아르헨티나 친구 하나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에서 새로운 교황의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곧바로 다소 일반적인 대답을 이야기했고 다른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재림에서 매우 가까워. 우리 모두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거든. 그 뒤에 우리가 눈을 뜨는 날이 재림의 날이기를 바라야겠지.” 이런 대답을 그때 처음 들어 본 것은 아니다. 비슷한 답변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논증에서 요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예언적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개인의 죽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논증은 종말론의 두 가지 국면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종말론 즉 마지막 일들에 관한 교리에 두 가지 주요 차원이 있음을 인식했다. 개인적 차원과 우주적 차원이다. 특히 우주적 종말론과 관계된 두 가지 국면을 살펴보면서 우주적 종말론의 타당성에 대해 살펴보자.
개인적인 종말론
일반적으로 말해서 개인적 종말론은 신자들의 개별적인 죽음 이후의 운명을 언급한다. 예수께서는 개인의 죽음과 부활의 아침 사이의 중간 상태를 무의식적인 잠에 비유하셨을 뿐 아니라(요 11:11, 14) 믿는 자와 악인 모두가 부활 후에 각자의 보응을 받을 것을 강조하셨다(요 5:28~29; 마 25:46; 참고 눅 14:14).
그리고 부활 후의 마지막 운명은 이 땅에서 우리가 여전히 살고 있는 동안 결정된다고 그리스도는 설명하셨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이러한 준비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분은 죽음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부자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부자의 주된 관심사는 곡식을 쌓아 두어 여생을 걱정 없이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영생은 이 땅에서 내린 결정과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하는 우선순위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존재가 갑자기 마쳐질 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의 초점은 개인적인 타이밍에 있다. 우주적인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타이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두 번째 국면 즉 우주적인 종말론을 언급하셨다.
우주적인 종말론
우주적인 종말론에 대한 예수의 가장 잘 알려진 언급은 감람산에서 하신 말씀이다(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이 묵시(黙示) 설교는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주어졌다. 예수의 예언 설교는 당시부터 재림과 그 이후까지의 기간을 역사적으로 포괄한다.
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은 계시 예언이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더 많이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은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에서 역사적인 성취를 이루며(눅 21:20) 그 이후 하나님 백성에게 고난의 시기인 “이방인의 때”(24절)가 이어진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후에 누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고하는 우주적인 징조들을 바로 나열한다(25~28절). 누가가 계시 예언의 역사적인 과정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계시 예언이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문맥 가운데, 예수께서는 그분의 다시 오심 즉 마지막 때에 있을 실제적인, 문자적인, 역사적 사건을 준비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의 예기치 않음을 백성들이 준비하지 않았던 홍수에 비교하셨다(마 24:37~39).
아무도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의 올바른 태도는 “주의”하고 “깨어 있어 기도”하는 것이다(막 13:33). 그렇다고 예수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이 아무 때나 일어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먼저 성취되어야 할 예언들에 대해 예수님이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이 등장하고, “큰 환난”(21절)이 있고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면 “그제야 끝”(14절)이 올 것이다.
이 계시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주요 관심사는 마지막 때 사람들이 이 절정의 사건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마지막 때 예언들의 일정을 대략 스케치하는 데 있었다. 실제로 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과 재림을 준비하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역사적인 시간이나 예언적인 일정에 상관없이 어느 때든지 일어날 수 있는 반면에 후자는 비록 예상하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역사적인 예언들이 성취된 이후에야 일어날 것이다.
왜 우주적인 종말론이 중요한가?
“우리 신자들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매일 준비해야 한다면, 왜 우주적인 종말론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재림 준비 또한 되어 있는 것인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께서 친히 두 종류의 준비를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신 걸 보면 개인적 사건과 대조되는 우주적 사건에 대한 준비를 강조하신 것이다.
이외에도 우주적인 종말론은 하나님의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인 우리의 정체성 및 사명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예언은 하나님의 심판 때가 가깝다는 것과 마지막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가 역사의 특정 시점 즉 작은 뿔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이 마친 이후(단 7~8장), 재림 직전에 일어날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은 마지막 때 남은 자손의 사명을 구성한다.
이 기별의 핵심은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이다. 다시 말해 우주적 종말론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구원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인지, 그리스도와 사탄의 대쟁투의 상황에서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우리는 임박한 죽음과 임박한 재림 양쪽 모두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개인적 종말론뿐 아니라 우주적 종말론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후자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체성과 사명도 잃어버릴 것이다.
마르코스 블랑코 남미 스페인어 출판사(ACES) 편집국장이며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다. 조직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발문
예언은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가 역사의 특정 시점에 일어날 것을 보여 준다.
사이드바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의 복스러운 소망이며, 위대한 복음의 결정이다. 구주의 오심은 실제적이며, 직접적이요, 가시적(可視的)이며, 세계적이다. 그분이 오실 때,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여 살아 있는 의인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은 죽을 것이다. 세상의 현실적 상태와 함께 거의 모든 예언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가까움을 알려 준다. 재림의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권면을 받고 있다(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요 14:1~3; 행 1:9~11; 고전 15:51~54; 살전 4:13~18; 5:1~6; 살후 1:7~10; 2:8; 딤후 3:1~5; 딛 2:13; 히 9:28; 계 1:7; 14:14~20; 19:11~21).
*기본교리 중 2015년 대총회에서 수정된 부분은 <교회지남> 편집실에서 자체 번역한 것이며 한국어로는 아직 공식적으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