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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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프란츠 목사 별세
순발력 넘치는 재치, 모범적인 아버지, 건강 생활의 본보기로 기억에 남는 행정의 달인
대총회 총무로 일하면서 교인 수 통계 업무와 선교사 모집을 담당했던 클라이드 O. 프란츠 목사가 2017년 5월 24일, 향년 104세로 잠들었다.
프란츠 목사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대총회 총무로 사역했다.
평생 봉사
프란츠 목사는 1932년 3월 1일, 쿠바의 카마구에이시에서 자급사역을 하는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2년에 프란츠 목사는 서던 재림교회 대학의 전신인 미국 테네시주의 서던 단과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대학에서 아내 로이스 마에 클라크 사모를 만났고, 1935년 6월 2일에 결혼했다.
프란츠 목사는 앨라배마-미시시피합회, 켄터키-테네시합회, 아이오와합회, 브리티시 서부합회에서 재무로 봉사했다. 1950년대에는 2년 동안 쿠바 앤틸리스 연합회장으로 봉사했다. 1954~1961년에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본부가 있는 인터-아메리카지회의 총무로 일한 후에, 1966년까지 재무로 일했다. 같은 해에 열린 대총회 회의에서 프란츠 목사는 대총회 부총무부에 선출됐다. 4년 후에는 총무에 임명됐고, 1980년에 은퇴할 때까지 봉사했다.
1970년대에 총무로 일했던 프란츠는 각 지역에서 본방인 지도자가 자리 잡기 전까지 일해야 할 선교사를 확보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지회에서 봉사할 지원자를 모집하는 게 우리의 주 업무였어요.”라고 2013년에 100세를 맞은 프란츠 목사가 재림교회 보도 매체 ANN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건강과 장수
100세를 맞은 프란츠 목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장수한 비결이 한 가지 있다면 재림교인으로서 채식을 해 온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건강한 생활의 표본이셨습니다.” 100세 생일 기념 감사예배에서 가족 대표가 말했다. 100세 이후에도 프란츠 목사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란츠 목사는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손수 운전을 하고, 매일 3 킬로미터를 걸었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그는 타고난 재무였다. 은퇴 후에도 손님용 침실을 컴퓨터와 복사기가 딸린 서재로 바꾸어 개인 재정을 관리했다.
프란츠 목사는 자신에게 또 다른 장수의 비결이 있다고 말했다. “그 비결은 바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죠. 안식일을 지키면 건강에 도움이 돼요. 하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어요.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요.”
프란츠 목사는 3번 결혼하여 3번 모두 사별했다. 이후 프란츠 목사는 3번의 결혼생활 모두 감사한 시간이었고 더 이상 결혼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란츠 목사의 딸은 아버지의 장수의 비결 또 하나가 바로 유머 감각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참 잘하셨어요. 아버지의 유머, 활기찬 대화, 순발력 넘치는 재치가 그리울 거예요.”
프란츠 목사는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까지 제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어요.” 4년 전 ANN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클라이드 프란츠 목사의 유족으로는 아들 척, 딸 수 스미스, 손주 넷, 증손 열, 고손 하나가 있다.
유로-아시아지회 뉴스
재림교인 목회자
러시아 국가자문위원에 선출
종교 자유 지지자들의 입장 반영할 기회
재림교회 목회자가 러시아 협의기구인 사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유로-아시아지회의 홍보부장이자 종교자유부장인 올레크 Y. 곤차로프 목사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위원직을 맡는다. 러시아 연방과 구 소비에트 지역의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이것이 러시아 재림교회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재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재림교회 목회자가 러시아 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됐습니다.”
이번 결과는 2017년 6월 6일에 발표됐다. 곤차로프 목사는 재림교회를 비롯해 러시아의 종교자유수호연맹(RARF)과 다른 지역 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곤차로프 목사의 이번 선출이 러시아에서 재림교회의 존재와 활동에 대한 긍정적 지지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러시아 사회와 정부 지도자들이 재림교회를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러시아 재림교회 역사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입후보 성명을 통해 곤차로프 목사는 자신이 재림교회 목사이고,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종교자유 운동과 그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총지원자 27명 중 3명이 당선됐고, 곤차로프 목사는 57표를 얻어 세 번째로 선출됐다.
2005년에 개설된 사회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위원들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고 공공 기관의 이익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사회 활동가들과 정부 공무원들 간에 평등적인 대화를 주선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일이 러시아 재림교회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림교회의 공적인 지도자로서, 이번 선출은 큰 봉사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곤차로프 목사가 러시아 종교 단체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 나가고 종교 단체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르코스 파세그히, <애드벤티스트 월드> 선임 기자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하라
재림교회 후원 행사에서 종교 자유의 중요성 재확인
2017년 6월 1일, 워싱턴 D.C.의 종교자유센터에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얻게 한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종교 자유 연구가, 종교 자유 운동가, 종교 자유 지지자들이 참석했다. 하루 동안 열린 이번 행사의 주제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종교개혁, 그리스도인 정체성, 양심의 자유에 관한 대화’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16세기 후반의 종교개혁의 의미와 현재 계속되고 있는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위한 탐구의 상관관계를 토론했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16세기의 사람들은 공포 속에 살았습니다. 고통과 질병의 원인을 잘못된 믿음 속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를 공동 후원한 가눈 디오프 대총회 종교자유부장이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을 찾아 헤맨 사람들에게 종교개혁이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
15분의 짧은 강연을 통해, 각기 다른 교파에서 온 학자들은 이 세상의 종교 지형을 영구적으로 바꿔 놓은 선구자들과 그들의 주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강연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고, 논쟁적인 주장도 소개했다.
“마르틴 루터의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신학은 재림을 고대하는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는 이 부분에서도 개혁자였습니다.” 디오프 목사가 말했다.
디오프 목사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우리가 오늘의 자유를 누리게 됐지만, 종교개혁 이후에도 여러 걸림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개인에게 종교 자유가 허락된 것이 아니고 국가에 종교 자유가 허락됐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경우에는 폭력과 고통이 따르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종교개혁은 마무리될 수 없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종교개혁가는 마르틴 루터였지만, 강연자들은 다른 종교개혁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강조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개척자였던 윌리엄 펜도 종교 자유의 선구자로 소개됐고, 17세기 미국에서 예배의 자유를 주장한 초기 퀘이커 교도의 활동에 관한 소개도 이어졌다.
재림교회의 시각
대총회장 테드 N. C. 윌슨 목사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재림교회의 활동을 소개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신념이 인간 존엄성의 기본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과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양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윌슨 목사는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고 믿었습니다.” 윌슨 목사는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자유는 우주적 권리이며, 모든 사람이 양심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개혁의 현재 진행
침례교 세계연맹의 네빌 칼람 총무는 종교개혁 시대부터 현재의 종교 자유 운동까지 이어지는 연결선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상의 권력과 동맹하여 자신들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 세력이 등장할 게 분명하므로 계속하여 종교개혁을 연구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라고 촉구했다.
메노나이트 세계 총회의 세사르 가르시아 총무는 “정치 세력이 기독교와 손잡고 믿음을 강요하게 되면 교회의 권위가 손상을 입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자발적인 결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했다.
“교회가 늘 깨어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 살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사명입니다. 행동하고, 활동적이고, 이웃의 변화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나가야 할 길입니다.”라고 한 참석자가 말했다.
북아태지회 뉴스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재림교회 잡지
월간지 <시조>, 서울문화유산에 선정
한국 재림교회가 발행하는 재림교회 잡지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한글판 <시조>가 출판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것이다.
2013년에 서울시가 시작한 서울미래유산 지정 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선정하는 사업이다. 한국 재림교회의 출판사인 시조사는 매월 <시조>를 출간하고 있다. 1910년에 창간한 <시조>는 비공식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기 간행물이다.
“2017년의 서울미래유산 중에서 잡지로는 <시조>가 유일하게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한국 재림교인에게 큰 기쁨이 됐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특히 <시조>의 독자인 서울 시민들이 이번 미래유산 지정으로 <시조>를 추천해 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한국 재림교회 지도자가 말했다. 제보를 접수한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는 2016년 12월 시조사를 직접 방문해 심의 및 동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선정했다.
2017년 1월, 서울시는 인증 동판을 전달했고 서울미래유산 인증 동판은 제막식 행사와 더불어 시조사 건물 입구에 설치됐다. 시조사에서는 3월 호부터 <시조> 표지에 서울시 미래유산 인증 로고를 삽입하여 발행하고 있다.
“<시조>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공식적으로 <시조>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시조>는 한국인의 사회적, 정서적 건강을 위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림교회가 사회를 빛나게 하고 인류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는 교회라는 것을 확증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지도자가 말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시조>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됨으로써 <시조>의 가치가 한 단계 상승했고 재림교회의 기별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번 미래유산 지정으로 문서전도인들이 <시조>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미래유산 지정을 통해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시조>를 알아보게 되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미래유산 지정 후에 동료 의원들에게 <시조>를 홍보하고 있다. 시조사의 엄길수 사장은 미래유산 선정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경험했다고 말하면서 출판물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시조>는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갖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리브나 스테벤스, 인터-아메리카지회 뉴스
옛 독재자를 잊지 않는 재림교회 목회자
마누엘 노리에가, 파나마 교도소에서 83세로 사망
프랑스에서 복역 중이던 파나마의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2011년에 파나마로 추방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호세 다니엘 산체스 목사는 노리에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7년 5월 29일에 파나마의 교도소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한 노리에가는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때 체포됐다. 노리에가는 마약 거래, 자금 세탁, 그 외의 혐의가 추가되어 교도소에 감금됐다. 노리에가는 2007년까지 17년 동안 미국 마이애미의 교도소에 수감됐고, 이후 프랑스로 옮겨져 프랑스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산체스 목사는 2011년 안교 교과에서 노리에가가 감옥에서 침례를 받고 재림교회에 입교했다는 소식을 읽게 됐다. 소식을 전한 팀 크로스비는 1992년에 노리에가가 주정부 교도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다.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노리에가의 모습을 보고 그를 만나고 싶었어요.” 노리에가의 사망 후 전화 인터뷰에 응한 산체스 목사가 말했다.
2대째 재림교인이자 온두라스 출신인 산체스 목사는 2012년에 파나마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교도소 선교에 동참하고 있었다. 파나마시에서 남동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엘 레나세르 교도소에서 사역하던 산체스 목사는 교회 직원회의 동의를 얻은 후에 노리에가를 만났다. “열 번 이상 노리에가를 만나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교제를 나누었다.”고 그는 말했다.
“진짜 안식일,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능력과 은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노리에가는 예수님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예수님에게 자신의 삶을 바친 이후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했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제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신 구세주이심을 믿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고 말했어요.”
“노리에가가 집권 시절에 저지른 잘못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상처와 분노 속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의 죄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가 용서받고 회복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에요.” 산체스 목사가 말했다.
산체스 목사는 2016년에 마지막으로 노리에가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한 후에, 노리에가는 나를 안고 울면서 ‘제가 출소하면, 목사님의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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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O. 프란츠 전 대총회 총무가 2017년 5월 24일 향년 104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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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종교자유센터에서 개최된 종교개혁 기념 행사의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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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한국에서 발행되는 재림교회 월간 잡지 <시조>가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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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다니엘 산체스와 아들 호세 다니엘 주니어, 부인 비르히니아. 산체스 목사는 파나마 집권자였던 마누엘 노리에가의 영적 조언자로 봉사했다. 노리에가는 파나마에서 축출된 뒤 교도소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17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