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전망
테드 N. C. 윌슨
개인의 양심과 종교개혁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다
얼마 전에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 앞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마르틴 루터는 500년 전 이달, 세상을 뒤흔들어 버릴 글을 교회 문에 못 박아 우렁찬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렸다. 당시의 문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1517년 10월 31일에 시작된 종교개혁은 천 년의 절반이 지난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루터가 ‘면죄부 효력에 관한 반박문’(95개 논제)을 게시했을 때, 그의 의도는 혁명이 아니라 학문적인 토론을 시작하는 데 있었다. 그 문서는 겸손하게 시작한다.
“진리를 사랑하기에 진리를 밝히려는 열망으로 문학 및 신학박사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평교수인 마르틴 루터 신부는 다음의 진술을 변론하며 이것에 대해 그곳에서 토론하고자 한다. 직접 참석하여 말로 토론할 수 없는 사람은 편지로 그렇게 해 주길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멘!”1
두 가지 핵심 신조
루터가 당시에 널리 편만했던 가르침에 반대하며 논의하고자 했던 두 개의 중심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성경만이 믿음과 행실의 유일한 규범이다.
2. 인간 존재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의 중요성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하게 확신했고 비텐베르크에 은신하는 동안 11주 만에 신약 성경을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가 사용한 언어 표현은 오늘날 독일어 성경의 번역본을 위한 길을 닦아 주었다.
종교개혁의 능력과 힘을 통해서 사람들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성경 진리로 돌아갔다. 성경이 말하는 명료한 의미를 깨달으면서 마르틴 루터는 이 성경 진리를 분명하고 웅변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다. 루터는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받아들였다. 성경은 성경 스스로가 권위를 지니며, 이성적인 독자들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성경 자체가 성경을 해석하며,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 교회의 최종 권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2
엘렌 화잇은 <각 시대의 대쟁투>에서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은 “다름 아닌 교황 지상권의 기초를 공격했다. 그의 가르침은 종교개혁의 근본 원칙을 담고 있다.”3라고 평가했다.
‘오직 성경’인가 ‘우선 성경’인가?
후에 ‘성경 최우선(prima scriptura)’이라고 알려진 또 다른 교리가 개신교회들에 들어왔다. 이 교리에서는 “성경이 교회에서 믿음의 유일한 규범은 아니지만 성경에 우선적인 권위가 있다. 성경에서는 성경의 수위권(primacy of scripture), 말하자면 성경이 전통과 교회 결정들 중에 으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전통과 교회 결정 또한 성경과 나란히 얼마간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4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최우선이라는 말이 좋게 들릴지라도, 그것은 종교개혁의 원칙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늘 전통이나 교회의 교훈을 뛰어넘는 최종적인 권위에 놓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에 대한 루터의 태도를 말하면서 엘렌 화잇은 이같이 진술한다. “사람의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존중하는 것의 위험성을 루터는 알았다. 그는 두려움 없이 학자들의 사변적 무신론을 공격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지배해 온 철학과 신학에 반대했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로운 일이라고 말하고, 청중의 마음을 철학자나 신학자의 궤변에서 돌이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영원한 진리로 돌아오게 하고자 노력했다.”5
‘오직 성경’과 성경적인 성경 연구 방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종종 성경을 인간의 책으로 간주하면서 비평적 방식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지식하고, 정보가 부족하고, 꽉 막힌 사람으로 잘못 묘사되기도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 행정위원들이 표결한 공식 문서 ‘성경 연구 방법’에 설명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성육신의 목적을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성경을 단지 인간의 책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의 방법이 아무리 주의 깊고 철저할지라도 성경의 기별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의 신적, 인간적 특성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 학자라도 인간적인 측면에 주로 기대어 성서 기별에서 그 능력은 뒷전으로 배제하고 전달 매체에만 집중할 위험이 있다. 매체와 메시지는 분리될 수 없으며, 메시지 없는 매체는 인류의 중요한 영적 필요를 다룰 수 없는 빈껍데기라는 사실을 그들은 잊어버린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이중적이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특성을 공정하게 취급하고 메시지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고양하면서 믿음을 굳게 할 것이다.”6
개인 양심과 성경
보름스 의회에서 자신의 태도를 견지했을 때 루터는 전통, 문화, 개인 견해가 아니라 성경에 기초하여 행동했고 양심은 성경의 빛을 따랐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의 증언이나 가장 분명한 논리를 통해 확인되기 전까지는, 또 내가 인용한 구절들을 통해 납득되기 전까지는, 그 구절들에 의해 내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기 전까지는, 나는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양심을 거스르며 말한다는 것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7
성경 말씀에 구애받지 않고 교회와 정부의 요구를 따르도록 압력받았을 때, 루터는 자신의 양심의 기초를 성경 위에 굳게 세웠다.
“황제, 제후, 심지어 가장 비천한 그리스도인도 나의 업적을 조사하고 판결해야 한다는 것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단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는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인간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내 양심에 폭력을 가하지 말라. 내 양심은 성령에 붙들리고 묶여 있다.”8
마르틴 루터의 양심과 행동은 성경의 지시를 따랐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종교개혁의 정수는 그분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그리고 산 믿음에 있다.
계속되는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에게서 시작되고 끝나 버린 게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 역사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9라고 엘렌 화잇은 말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진리를 보존하셨고,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 말씀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계시하신다.
‘새로운 진리’는 반드시 이사야 8장 20절에 진술된 성경의 시금석에 따라 검토되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성경은 종교개혁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핵심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전하는 전령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은 끝났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속해야 한다. 바로 이 마지막 때에도 우리의 증언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만 기초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이 올 때, 루터처럼 우리도 성경에 붙들린 양심으로 우리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하자.
1 “The 95 Theses,” at www.luther.de/en/95thesen.html
2 “What the Bible and Lutherans Teach,” at wels.net/about-wels/what-we-believe/
3 <각 시대의 대쟁투> 126
4 “Prima Scriptura, Sola Scriptura and Sola Ecclesia,” at www.orthodoxevangelical.com/2014/02/26/prima-scriptura-sola-scriptura-and-sola-ecclesia/
5 <각 시대의 대쟁투> 126
6 “Methods of Bible Study,” approved and voted by the General Conference of Seventh-day AdventistsExecutive Committee at the Annual Council in Rio de Janeiro, Brazil, October 12, 1986. For entire document, see: www.adventist.org/en/information/official-statements/documents/article/go/-/methods-of-bible-study/
7 J. H. Merle d’Aubigne,
8 In d’Aubigne, b. 7, ch. 10, cited in E. G. White, 166
9 <각 시대의 대쟁투> 148
테드 N. C. 윌슨 대총회장 추가적인 내용은 대총회장 트위터(@pastoredwilson) 또는 페이스북(@PastorTedWils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문
마르틴 루터의 양심과 행동은 성경의 지시를 따랐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