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교리
모든 선의 근원
종교개혁은 패러다임의 전환
라스즐로 갈루스즈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심원한 변화의 진원이었다. 이 변화의 요인은 사회적 혹은 경제적 세력이 아니었다. 중심 이슈의 본질은 신학이었다. 1세대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와 스콜라 철학이 인간 전통 아래에 복음을 파묻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구원받는 길에 관한 이해가 치명적인 오류로 뒤덮였다. 이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었다. 은혜를 가게에서 사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구원관이 교회에 팽배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본으로
16세기에 복음이 새롭게 이해되면서 엄청나 변화가 일어났다. 종교개혁사 저술로 유명한 학자 디아메이드 맥컬럭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1라고 요약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로 거저 주어진 선물이며, 인간이 그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마르틴 루터 신학의 근본적인 기여이다.
이 사상은 혁명적이었다. 왜냐하면 공로 개념이 중심 역할을 하던 중세의 구원관과 심각한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죄를 하나의 존재로 여겼다. 변화 과정을 통해 치료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은혜의 도움과 더불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거룩한 사람”2이 되면 그 결과 구원이 이른다고 믿었다.
이런 관점에는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노력을 더해야 한다는 개념이 담겨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한 보상으로 영생을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된 비즈니스(돈으로 구원을 사는 면죄부 구입 등)의 신학적 토대인 연옥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볼 때 그릇된 구원관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루터의 논증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십자가 신학’이다. 여기서는 은혜를 얻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인간에게 공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죄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를 그 중심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
루터 사상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iustitia Dei)’이다. 로마서 1장 18~20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대면하느냐가 인류의 가장 큰 문제라고 논증했다. 종교개혁 이전 신학에서 ‘하나님의 의’란 곧 거룩한 심판자가 내리는 형벌이었다. 루터는 1513~1517년에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연구했고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이 책들을 강의하면서 그 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이우스티티아 데이’는 하나님 자신이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의’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의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성서적으로 논증했다. 의는 하나님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주신 선물이다. 신자 자신이 의롭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선물을 통해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의에 대한 이 새로운 정의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선의 기초이다.3 십자가는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분은 자신의 기쁨을 나눠 주는 데서 행복을 느끼신다. 그분은 인색하거나 실리를 따지는 분이 아니며 은혜 내리기를 기뻐하신다.”4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로마서의 절정에서도 바울은 이 사실을 드러낸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칭의의 필요성(롬 1~3장)과 그것이 역사하는 방식(4장)을 설명한 후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11절에서 칭의의 결과를 말한다. 이 본문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분을 받은 하나님 백성의 복을 묘사한다. 그 문단의 기본 진술은 서두에 올바르게 나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1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화해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소망의 기초이자 기쁨의 이유가 되는 자신의 우정을 베푸셨다.
로마서 5장 1~11절의 논증에 따르면, 신자의 주요한 특징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다. 깊고도 충분한 행복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삶에서 그분의 영광을 구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갖가지 형편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이유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을 위해 죄의 속박에서 그들을 구출하셨기 때문이다. 이 구원에 우리가 아무것도 기여한 게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근거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대면하면서도 확신을 지닐 수 있다. 믿음이 사람의 생애에서 선한 행동들을 낳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원이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처럼 ‘믿음 더하기 행함’의 결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해당하는 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실존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교리이다. 이 경험이 우리를 존재의 핵심부까지 변화시켰고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에게 칭의 교리는 ‘그리스도인 교리의 요약’이고, ‘교회가 서느냐 무너지느냐를 결정하는 항목이었다.’ 유럽이 이 중대한 신학적 이슈로 인해 불타올랐던 5백 년 전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종교개혁의 원칙에 훨씬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성경의 교훈은 오늘날 세속적인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신선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무려 5백 년이 지났어도 종교개혁은 중요하다.
1 Diarmaid MacCulloch,
2 Roger E. Olson,
3 Alister McGrath,
4 Michael Reeves and Tim Chester,
라스즐로 갈루스즈(Ph. D.)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이드바
구원의 경험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자비와 사랑 가운에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심으로 우리가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우리는 자신의 필요를 자각하고, 우리의 죄악성을 인정하고, 허물을 회개하며 예수를 구원자와 주님, 대치물과 모본으로 믿는 믿음을 행사하게 된다. 구원하는 이 믿음은 거룩한 말씀의 능력에서 나오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며 죄의 세력에서 구원을 얻는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거듭나고 성화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기록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능력을 받는다. 그의 안에 거함으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현재와 심판 때에 구원에 대한 보증을 얻는다(창 3:15; 사 45:22, 53; 렘 31:31~34; 겔 33:11; 36:25~27; 합 2:4; 막 9:23~24; 요 3:3~8,
16; 16:8; 롬 3:21~26; 5:6~10; 8:1~4, 14~17; 10:17; 12:2; 고후 5:17~21; 갈 1:4; 3:13~14, 26; 4:4~7; 엡 2:4~10; 골 1:13~14; 딛 3:3~7; 히 8:7~12; 벧전 1:23; 2:21~ 22; 벧후 1:3~4; 계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