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특집
초심으로 돌아가라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서
7월의 어느 더운 오후, 독일 아이제나흐의 마을을 바라보며 바르트부르크성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융커 외르크 기사로 알려진 한 사람이 어떻게 그 요새에 와서 10개월간 머물렀었는지를 조용히 상상해 보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마르틴 루터이다. 성경과 구원에 관한 입장 철회를 거부한 루터에게 교황 레오 10세가 보름스 회의에서 파문과 추방을 선언한 결정적인 사건 이후, 이 종교개혁자는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명령에 따라 남몰래 안전지대로 옮겨졌다.
그곳이 바로 바르트부르크성이다. 그는 수년간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성경을 면밀히 연구한 뒤 11주 동안 신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 11주의 헌신적인 노고로 독일 그리고 세계의 형세가 영구히 바뀌었다. 수백 년간 숨어 있던 성경은 난생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독일어로 듣게 된 독자와 청중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 그 당시의 세상이 뒤집어졌다. 바르트부르크에서 지낸 루터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이 가슴에 와닿았다. “바위투성이 밧모섬에서 그(루터)는 거의 1년 동안 복음을 선포하고 그 당시의 죄와 잘못을 꾸짖었다”(쟁투, 169).
우리의 종교개혁 여행은 단지 이틀간이었다.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예배당에 앉아 보았다. 젊은 루터가 절박하게 애쓰면서 자비로운 하나님을 찾고자 했으나 거듭거듭 실패와 부족을 맛보던 곳이다. 그의 노력은 처절했다.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법학을 공부했던 에르푸르트의 옛 거리를 걸어 보았다.
루터의 고향 비텐베르크에도 들렀다. 그가 ‘면죄부 효력에 관한 반박문’으로 알려진 95개 조항을 인쇄하여 종교개혁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다. 반박문에서 그는 면죄부 판매에 대해 거세게 논박했다. 1517년에 기독교 역사의 중대한 운동이 전개된 지 5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루터가 종종 설교하던 비텐베르크 슈타트키르헤(시립 교회)에 앉아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제단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 중앙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보인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종교개혁의 슬로건이 되었다. 예수님이 그들의 깃발이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에서 루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로)’,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솔로 크리스토(오직 그리스도로)’라고 요약한다. 이것은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말씀으로)’와 함께 종교개혁의 근간을 이루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계승되고 있다.
전시물을 보고 일찍이 종교개혁가들이 걸었던 거리를 걸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청, 아버지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그분 안에서 쉬라는 초청,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제럴드 A. 클링바일 독일에서 태어났고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으로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지리 모스칼라
구원의 확신
가능하고말고요!
성경은 구원의 확신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전적으로 믿고 담대히 확신할 수 있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신다.1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라.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35:4).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요일4: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그분의 것이며 아무도 덤벼들거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가 그분의 것일 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맞서거나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믿는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31~39; 엡 2:4~7).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2~13; 요 1:12; 3:16~17, 36; 5:24; 6:47; 10:28~29; 롬 5:1~5; 엡 2:1~14; 요일 1:7~9; 2:1; 3:1).
극과 극
구원의 확신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들은 내적 갈등, 의심, 좌절감, 두려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반면에 너무 확신에 찬 나머지 자신감과 자기기만에 깊이 빠진 사람도 있다.2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가치 없는 삶”이라고 말했다.3 그리고 사도 바울은 건강하게 자신을 성찰하라고 독려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고전 11:28).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구원의 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분께 자신을 바치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삶이 악하다 해도 그분의 공덕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자신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죄를 짓지 않은 자처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다.”4
그러나 하나님의 분명한 계명들을 따르지 않으면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확신 속에 살아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표준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뿐이다. 불순종하는 사람의 품성은 하나님의 도덕 체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나는 구원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5
화잇은 값싼 은혜에 대해서도 경고했다.6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잘못된 희망, 잘못된 토대 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알고 있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7
또 이렇게도 설명했다. “복음은 율법의 주장을 약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높이고 존귀케 한다. 구약에서 요구되는 것은 신약에서도 똑같이 요구된다. 듣기 좋은 착각에 마음을 주지 말라. 하나님은 진실함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8
게다가 구원의 문제는 느낌에 의지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좋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느낌이 좋으니 자신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애정이 완전히 새롭게 되어야 한다.”9
한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지녀야 한다고도 말했다.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는다고 믿어야 한다.”10 이방인들이 초대 교회에서 전한 복음을 듣고 나타낸 기쁨을 화잇은 이렇게 묘사했다.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말에 함께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설교자의 보증에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닌 자들이 희망과 기쁨을 얻었다.”11
유익한 긴장감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에게는 유익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고 자신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끊임없이 집중하여(요 15:5; 빌 4:13; 히 12:2) 그분과 가깝게 지낼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엘렌 화잇은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다. 그들은 열매 맺는 나무가 될 것이다.”12
불행하게도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인 동시에 ‘아직’이라는 변함없는 현실을 의식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영생을 얻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참된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것이다. 그때에는 지금 우리의 희망이 현실이 된다.
저스틴 킴
종교개혁에 관한 메모
종교개혁에 관한 저술에 조미료처럼 등장하는 라틴어 문구를 주목해 보라. 로마 가톨릭이 라틴어를 ‘신성한 언어(lingua sacra)’로 간주하듯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표방하는 위대하고 영원한 이상들에다 교회 언어인 라틴어로 불멸성을 부여했다. 이 이상들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그 덕분에 오늘날 기독교는 무수한 개신교 교파로 분열되었다.
현대 개신교인들은 라틴어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o Christo)’,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일관된 주제에 친숙하다.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공표한 후 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이 문구들은 각각 성경, 믿음, 은혜,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상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개신교도 이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적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
이상은 하나같이 위험하다.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교회 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설교, 강의, 신학, 신학교가 새로워졌다. 음악, 음악학, 찬송, 집회, 예술, 건축이 바뀌었고 심지어 가족, 결혼, 성, 어린이에게도 영향이 미쳤다. 교회 내의 세계뿐 아니라 교회를 둘러싼 더 큰 세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일, 노동, 정치, 경제, 문화가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히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개혁된 교회는 늘 개혁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라틴어 표현의 집약이었다.
교회가 처한 역사적 맥락은 시대를 거쳐 계속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교회는 계속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했고 개혁의 이상을 변질시키는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이러한 적응들 자체가 곧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과 희망의 증거이다. 그분을 직접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이 이상들이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변화된 교회는 그때까지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개혁하는 교회는 현재의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대응하고 맞서고 반기를 들어야 한다. 배교가 추앙을 받는 이 시대에 주님의 최고 관심 대상인 교회는 성경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오류에 더 강력하게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개혁의 후손으로서 우리는 종교적·세속적 조직 모두를 향해 증언하도록 부름 받았다. 21세기의 개혁이란 가난한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종교 단체의 낭비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안식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무에서의 창조, 진정한 성서적 인간론, 하늘 성소 등 성서적인 가르침을 거절한 단체에 신학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무정하고 인위적인 영성, 차갑고 비성서적인 신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21세기 종교개혁이란 부패와 착취를 질타하고 사심 없이 정의와 자비를 전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경영 철학, 지극히 단순화 한 도덕 개혁, 틀에 짜인 행동 교정에 의존하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자유(liberta), 정의(iustitia), 진리(veritas)를 설파하는 것이다. 공개적인 담론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어떤 언어로든 오늘날 우리는 종교개혁의 이상들을 계속 옹호하도록 부름 받았다. 변화하는 교회 안에서 변함없는 진리에 ‘항상 충실한(semper fidelis)’ 사람이 되어야 할 때이다.
저스틴 킴 대총회 안교·선교부 부부장이며 청년교과의 편집자이다.
지리 모스칼라 앤드루스대학 신학대학원장이다.
1자세한 내용 필자의 다음 기사를 참조할 것. “The Gospel According to God’s Judgement: Judgement as Salvation”,
2Gregg A.Ten Elshof, (Grand Rapids: Eerdmans, 2009)
3Thomas C. Brickhouse and Nicholas D. Smith,
4<정로의 계단> 62
5<가려 뽑은 기별 1권> 315
6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값싸지 않다. 은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를 값싸게 다루는 이들이 있다. 다음을 참고할 것. Dietrich Bonoeffer,
7
8<가려 뽑은 기별 1권> 373~374
9
10<가려 뽑은 기별 1권> 373
11<사도행적> 172~173
12<하나님의 딸들> 16, <시대의 소망> 674~680 참고할 것
발문
17
독일 아이제나흐에 있는 바르트부르크성.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1521년, 이곳에 은신했다.
18
위 : 비텐베르크에 있는 슈타트키르헤(시립 교회)의 내부. 여기서 루터는 독일어로 종종 설교했다.
19
위 : 목가적인 풍경의 에르푸르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안뜰
아래 : 복원된 마르틴 루터의 집
20
왼쪽 : 16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사용했던 수도실. 여기서 젊은 루터는 자비의 하나님을 절박하게 찾았다.
위 : 면죄부를 팔기 위해 사용했던 돈 상자
바르트부르크성 남쪽 탑 아래 10미터 깊이의 지하감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 1548년에 재침례교도 프리츠 에르베는 이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박해받는 자가 박해하는 자로 변할 때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