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교리
로니 날린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이 세상
신약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본 ‘코스모스’
생명은 놀라운 선물이다. 생명을 가능케 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생각할 때면 깊은 경외감에 빠진다. 곡식을 여물게 하는 토양부터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무생물적 요소조차도 지구상의 거주자들을 붙잡아 주는 멋진 균형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질병, 자연재해, 자원 부족, 곳곳의 거친 기후 등 고통스런 사건과 비참한 상황이 매일 일어나는 무대이기도 하다. 종잡을 수 없는 선악의 혼돈을 바라보며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디자인하신 것인가? 기쁨과 고통, 환희와 슬픔 사이를 오가며 정신없이 살게 한 것이 그분의 계획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일관성 있는 답변을 신약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신약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이라는 말에 담긴 다양한 뜻
많은 다른 낱말처럼, ‘세상’이라는 낱말은 독특한 의미를 지니며 다양한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약에는 흔히 ‘세상’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코스모스’이다. 코스모스는 온전한 물리적 세상을 의미할 수 있다. 사도행전 17장 24절에서 바울은 “우주[코스모스]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묘사한다. 그렇지만 특별히 지구라는 이 세상을 더 자주 강조하고 있다(마 26:13; 롬 10:18 참조).
세상은 인간의 곤궁한 상태가 드러나는 무대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 코스모스는 종종 영적 의미로 사용되었고 하나님의 원칙에 대비되는 삶의 방식과 동의어가 되었다. 예를 들어 야고보는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약 4:4)이라 말했고, 요한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요일 5:19)이라고 선언했다. 코스모스라는 말의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를 고려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코스모스를 사랑하시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했다는 깨달음에 경외감이 든다(요 3:16).
‘세상’으로 번역된 두 번째 그리스어는 ‘오이코우메네’이다. 이 명사는 이 행성 자체보다는 땅의 거주자들을 언급하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천하[오이코우메네]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라고 바울이 진술한 구절이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오이코우메네]로 다 호적하라”(눅 2:1)고 영을 내렸다고 말한 구절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어 ‘아이온’도 종종 세상으로 번역된다. 아이온은 기간, 세대, 사물이 발생하고 존재할 수 있는 일시적인 환경을 더 적절하게 지칭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아이온)를 본받지 말고”(롬 12:2)라고 바울이 말했을 때, 그는 현시대 즉 죄로 부패된 세상에 있는 사물들의 세태를 언급한다.
‘세상’은 과거와 똑같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하여 신약 성경이 말하는 바를 고려해 보면 과거와의 불연속성이 그 핵심 개념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홍수 전의 세상에 대해 말하면서 “그때에 세상[코스모스]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벧후 3:16)라고 했다. “그때에”라는 표현은 우리가 잃어버린 홍수 이전 세상과 현재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암시한다. 그러나 창조 이후 세상의 상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바꾸어 놓은 것은 죄의 유입이었다(롬 5:12). 이제 하나님의 창조는 부패의 속박 아래 고통을 당한다(롬 8:20~22). 현재 세상에서 어둠의 세력(엡 6:12)은 자기들의 사령관을 “이 세상[코스모스]의 임금”(요 14:30), “이 세상[아이온]의 신”으로 부를 정도로 그 영향력이 확장되었다.
‘세상’은 미래와 똑같지 않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신약의 복음에서는 현재와 미래의 상황 사이에도 분명하게 불연속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과 앞으로 겪을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여러 구절에서 말한다(롬 8:38; 고전 3:22; 딤전 4:8; 히 13:14 참조). 한편으로 우리는 “이 세상[코스모스, 아이온]”에 있다(요 12:25; 롬 12:2; 요일 4:17; 딤후 4:10).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는 세상[아이온]”(마 12:32; 엡 1:21) 그리고 “장차 올 세상[오이코우메네]”(히 2:5)에 관하여 분명하게 진술하는 구절들도 있다. 흥미롭게도, 코스모스라는 말은 미래 세상을 말하기 위해 사용된 적이 결코 없다. 아마도 그 용어가 현재의 실재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과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계 21:1) 혹은 아이온, 오이코우메네 등 기타 용어를 사용하여 신약 성경 기자는 사물의 옛 체계로부터의 명백 변화를 강조한다. 그 새로운 세대는 단순히 현 세상을 개조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4~5).
확실함, 쾌활함, 의망
신약 성서에서는 현재 타락했지만 앞으로 새롭게 될 본래의 세상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크게 달라진다. 과거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악한 일을 그분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서 더 확실하게 멀어진다. 현재를 살면서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하면서 타락 이후 수천 년간 계속된 죄악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쾌활하게 지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의인이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희망과 기대로 부풀 수 있다.
*G. Kittel, G. W. Bromiley and Friedrich,
로니 날린(Ph. D.) 대총회 지구과학연구소 부책임자로 미국 캘리포니아 멘톤에서 아내 엘리사, 두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사이드바
창조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활동에 관한 권위 있고 역사적인 설명을 성경 속에 계시하셨다.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셨고, 최근의 엿새 동안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이렇게 그분은 문자적인 6일간 자신이 창조 사업을 수행하고 마치신 것에 대한 영구적인 기념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그 6일은 안식일을 더하면 오늘날 우리가 한 주간이라고 부르는 시간 단위와 동일했다. 첫 남자와 여자는 창조의 극치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세상을 다스리고 그것들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이 다 창조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었으며 “심히 좋았”다(창 1~2, 5, 11장; 출 20:8~11; 시 19:1~6; 33:6, 9; 104편; 사 45:12, 18; 행 17:24; 골 1:16; 히 1:2; 11:3; 계 10:6; 14:7).
*기본교리 중 2015년 대총회에서 수정된 부분은 <교회지남> 편집실에서 자체 번역한 것이며 한국어로는 아직 공식적으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