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쇼나 비흐마이스터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우리를 어딘가에 보내실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다른 차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남편이 운전대를 홱 틀었다. 주차되어 있는 차 뒤에 우리 차가 덜컹거리며 섰다. 여기는 어디지? 길은 왜 이리 좁고 붐비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길 양쪽에 마음대로 주차를 하고? 쇼핑센터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날이 어둑해지고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는 휴대전화 배터리의 퍼센트가 떨어질수록 긴장감도 커졌다.
우리는 미들이스트대학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불과 몇 주 전에 레바논에 왔다. 학교 구내 게스트룸에서 아파트로 이사할 준비를 하면서 생필품을 장만해야 했다. 바쁜 학사 일정으로 여유롭게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필요한 것만 빨리 구입하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이에요.” 휴대폰을 건네주며 차를 빼는 론의 말에 나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지도는 정확해 보였지만 도로는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 늘 비좁고 더 혼잡해 보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다음 좌회전 길’은 고가도로였고 차를 꺾을 기회조차 없었다.
몇 번의 우회로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똑같은 지역을 45분 동안 헤맨 뒤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장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청소 도구, 주방 용품, 게다가 할인 중인 진공청소기를 발견했다. 뜻밖에도 쇼핑센터에는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놀라웠다. 신속하게 물건을 구입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끝냈다. 그 무렵 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교통 혼잡에 부정확한 내비게이션까지 경험한 터라 심호흡을 하고 차에 올랐다. 날이 어두워져 길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예상대로 헤맸고 유턴을 거듭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왔을 때와는 다른 시내를 구경한 셈이다.
이정표를 찾아서
우리가 일하는 미들이스트대학은 멋진 언덕 꼭대기에 있다. 베이루트 시내와 지중해의 조망이 숨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베이루트는 약 5,000년 전에 조성되었다. 이집트 파라오에게 보낸 기원전 14세기의 편지들에서는 이곳을 ‘비루타’라고 불렀다. 그 아름다운 배경을 알아야 이곳 도로의 형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곳의 길 대부분은 지금처럼 교통 체증으로 골머리를 썩지 않던 아득히 먼 옛날에 만들어졌다. 자동차가 없을 때였으니 좁은 길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차난도 물론 없었다. 그러나 거대 도시가 된 오늘날에는 좁은 일방통행로, 일관성 없는 교차로에서 운전하는 것이 초행길이거나 길치인 사람에게는 특별히 큰 도전이며 혼란거리이다.
일단 전용도로에 들어서서 익숙한 이정표들이 쌩쌩 지나가면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러나 전용도로와 학교로 이어지는 꾸불꾸불한 언덕길 사이에는 반드시 복잡한 구간이 있다. 그곳은 통과할 때마다 늘 낯설어 보였다. 특히 밤길을 헤쳐 갈 때면 나는 더욱 힘들었다. 남자들과 비둘기에게만 허락된 공간감각을 발휘하여 남편이 이리저리 운전대를 틀면서 용케도 길을 찾아가면 더욱 부아가 치민다. 나는 언제쯤이면 여기서 집까지 혼자서 찾아갈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보았다. 산기슭에 있는 삼각형 교차로에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밤에도 그 조형물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집까지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사르르 긴장이 풀렸다. 사실 우리의 인생길은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 순간 갑자기 경이로운 느낌이 몰려오면서 긴장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십자가 밑으로 가는 길만 안다면 거기서부터는 집까지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낯설고 새로운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형제와 자매가 된다. 가족이 된다. 그리스도를 볼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이해되고 제자리를 찾는다.
이 새롭고 복잡한 장소에서 단순한 믿음의 교훈을 통해 나는 차분하게 평화를 얻었다. 물론 낯선 나라에서 살면 문제와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복도 넘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기후도 좋다. 지중해 날씨다. 그러나 중동 지역이라 수 세기 동안 긴장이 감돌고 있다. 불안한 정세를 피해 시리아와 인근 국가에서 넘어온 난민들은 비참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가 근무하는 대학에도 부족한 것투성이다. 기독교인 인구 비율이 3퍼센트에 불과한 이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출애굽기 4장 11~12절을 떠올린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과제에 대해 걱정했다. 그가 보기에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이라면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께 기회이며 그분의 모든 명령은 그분의 계획 안에서 이미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할 일을 주셨고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지역의 불안은 곧 복음 전파의 기회이다. 거대한 지역에 작은 교회로 존재하는 우리의 보잘것없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쁠 게 없다.
집으로 차를 몰 때마다 우리는 기억한다. 십자가에 높이 들린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안내자이고 우리의 이정표이시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다. 집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쇼나 비흐마이스터(Ph.D.) 레바논 베이루트 미들이스트대학의 교수이자 연구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