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전갈을 생각하면서
절지동물에게 배우는 교훈
전갈을 보라. 단단한 외골격, 먹이를 움켜쥐는 집게, 번개처럼 빠르게 쏘는 고통스러운 독침으로 무장한 이 녀석은 만만찮게 위험한 상대이다. 먹이가 죽어 버리거나 최소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전갈은 곤충이든, 유충이든, 쥐든 가리지 않고 다 먹어 치운다.
전갈은 혐오스러운 창조물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 존재 자체가 골치 아프기 때문에 불편한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께서 정말 전갈을 만드셨을까? 이 질문에 성경과 논리만으로 답하기 위해 나는 죄, 고통 그리고 현재 가속화되는 환경 파괴에 관하여 대통합적 논증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소개한다는 점에서 논증을 시작해야겠다. 사랑은 하나님 품성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그런 분이 창조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창조의 근본 원칙인 사랑
욥기 38장 6~7절에는 세상이 창조될 때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창조물이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하지 않았다면, 천사들은 노래로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경악했을 것이다.
따라서 처음 창조된 세상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했을 것이다. 사랑이 그 세상의 구성 원리였을 것이다. 그 세상에서는 만물은 ‘베풂’을 통하여 존재할 것이라고 나는 결론짓는다. 만물은 서로 복을 끼치면서 활동하며 아무도 ‘탈취’를 통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장 29~30절에서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완벽한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두’가 식물을 먹었다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은 생명을 빼앗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사야 11장에는 채식의 보편화에 관하여 놀랍게 설명하고 있다. 재창조된 땅에서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눕는다. 곰이 풀을 뜯고 사자가 짚을 먹는다. 그런 식으로 달라질 것이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9절)이라고 약속되어 있다.
세상 존재의 기본으로서 상처 주거나 죽이는 것이 없는, 운영 원리가 사랑인 세상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생소하다. 위협이 없는 세상이고 심지어 기본적인 생물학적 체계(가령 곰의 소화계통)도 현재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이다.
어떤 일이 있었나?
그렇다면 완벽하게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떻게 충돌하는 지경이 되었나? 성경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처럼 그 이야기는 비선형적 형태로 인상 깊게 묘사되고 있다.
이야기는 에스겔서 28장에서 아름답고 현명하고 보석과 금으로 꾸민 루시퍼에 관한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루시퍼는 보통 천사가 아니었다. 14절에서는 그가 기름 부음 받은 ‘지키는 그룹’이었다고 말한다. 하늘의 서열이 어떤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루시퍼는 매우 지위가 높은 천사였다. 하나님을 황제라고 한다면 루시퍼는 총리라고 말할 수 있다.
루시퍼는 완벽했다. 어느 날 자신에게서 죄악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교만하고 자만심이 강했다(겔 28:14~17). 이야기는 이사야 14장 13~14절에서 계속된다. 거기서 그는 말한다. “내가…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루시퍼는 총리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었다.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다
그래서 루시퍼는 어떻게 했나? 그는 천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최초의 정치 운동을 시작했다. 여느 정치 운동과 마찬가지로 그는 상대방의 품성을 공격했다. 또 우주를 다스리는 더 나은 계획이 있다고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가 제안한 다른 방식의 운영 원리는 이기심이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계 12:7)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여기서 전쟁(그리스어로 ‘폴레모스’)이란 단순히 전쟁과 전투만이 아니라 ‘논쟁’과 ‘언쟁’을 의미한다. 영어로 ‘논쟁술’(polemic), ‘정치학’(politics)을 의미하는 말도 다 거기서 파생했다. 생각에 반기를 드는 것이 그 전쟁의 주 내용이었고 현재 사탄이라고 칭하는 루시퍼는 그 일에 성공하여 다수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천사 3분의 1이 그와 합류했다.
사탄은 전쟁에서 패했고 자신이 규합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겼다(7~9절). 이 모든 게 한데 모인 곳이 지구이다. 여기서 그는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고 그들이 진정으로 소유했던 유일한 것,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배권을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요 12:31)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싸움을 계속하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권세와 기회를 둘 다 잡았다. 사탄은 창조할 수 없다. 창조주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사탄은 기본적인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뒤틀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계획이 멋지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우주에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탄에게는 문제가 있다. 그의 계획은 완전히 재난이라는 것이다. 이기심에 바탕을 둔 세상은 죽음, 파멸, 고통을 낳았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과 같이 향상하는 게 아니라 몰락했다. 그것은 처참한 계획이다. 특히 이기심이란 스스로 붕괴하면서 환경과 인간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우리 주변의 분쟁, 굶주림, 질병, 자연재해 등은 이 참담한 계획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자기 계획이 훨씬 낫고 하나님의 품성은 부패했다는 반론을 사탄이 더 이상 한마디도 꺼낼 수 없을 때까지만 하나님은 이 상태를 용인하신다. 그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왕국의 산 증인이 되고 서로 간에 복을 끼치고 이기적인 세상에 그분의 품성을 선포하고 옹호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적어도 이것이 바로 나의 성서적이고 이성적인 논증이다.
artv.adventistreview.org에서 크리스티안센의 동영상 ‘지구는 전쟁터(Earth Is a Battlefield)’를 참고할 수 있다.
스콧 크리스티안센 노던뉴잉글랜드합회 복음 전도자이며
발문
그런데 사탄에게는 문제가 있다. 그의 계획은 완전히 재난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