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직분
6+1
하나님과 리듬을 맞출 때
우리는 더 크고 더 좋고 더 빠르고 그리고 늘 더 많은 것을 찾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다. 매달 금융시장은 고용과 국내총생산에 관한 핵심 수치를 면밀히 살핀다. 애플과 삼성 같은 테크놀로지 회사들은 더 많은 판매와 성장을 이끌어 줄 혁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 공식적으로 매년 9월에는 애플 아이폰의 신제품을 기자 수천 명과 온라인 관객 수만 명에게 공개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혁신은 성장을 이룬다. 그리고 성장은 혁신을 이끈다.
재림신자들은 신기술과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지만 지속 성장이라는 매혹적인 유혹의 소리에 동일하게 빠져든다. 빈번하게 우리는 새 신자의 수나 우리 교인들을 통해 성장하는 재정에 대해 보고한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이 수천, 심지어는 수백만 명에게 다가가는 모습 보기를 좋아한다. 그게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런데 지속 성장은 하나님의 계획일까? 혹은 그렇지 않을까?
하나님의 리듬을 회복하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를 마치신 뒤 자신의 창조물을 안식으로 초청하셨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절정이었다. 해와 달과 별이 각기 궤도를 지키도록 그분이 명하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동물들이 형체를 갖추고 동산을 거닐게 되는 모습을 입이 쩍 벌어진 채 쳐다본다면 분명 경이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함께하는 시간이 바로 안식일이다. 분주한 창조주께서 행동을 멈추고 안식하시고 복을 주신다. 그리고 교제하신다(창 2:2~3). 쉼은 모든 창조 활동이 함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숙고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이레 중 하루는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 놓을 필요가 있었다”(부조, 48).
‘낙원에서라도’라는 것은 놀라운 주장이다. 하나님의 ‘6+1’ 리듬은 낡고 죄로 병들고 고단한 타락 이후의 지구 거주민을 위해서만 구상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벽한 창조를 위해, 완벽한 창조주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하나님은 일용한 양식의 공급까지 포함하여 자기 백성의 삶 모든 영역에 자신의 리듬이 스며들게 하셨다. 이집트에서 벗어난 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독특한 생활 리듬을 반영하는 십계명을 받았다. 레위기 25장 2절에서는 땅의 안식에 관하여 중요한 안식일 개념을 소개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그 땅은 하나님의 창조 중 일부였기에 역시 안식일의 안식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은 7년마다 땅을 쉬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씨를 뿌리거나 가지를 치거나 거름을 주거나 돌과 잡초를 없애지도 말아야 했다(출 23:10~12). 땅은 자기 자신의 리듬을 따라 산물을 낼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레 25:6)을 위해 넉넉히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매일의 필요를 위해 창조주이자 구속주 되신 분을 온전히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6+1’ 리듬은 매주 그리고 매년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었다.
채무 노예를 관장하는 법은 인생의 중요한 ‘6+1’ 리듬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이었다.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에서 사람은 빚을 갚기 위해 채무자에게 자신이나 가족들을 팔 수 있었다. 6년간 종노릇을 해서 빚을 갚고 제칠 년이 되면 히브리 종은 모두 풀려났다(출 21:2; 신 15:12). 신명기는 더 나아가 참된 ‘6+1’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를 놓아 자유 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신 15:13~14). 시간, 사람, 땅, 심지어 동물에 관한 성경적인 청지기 직분에는 하나님 앞에 선 언약 공동체라는 개념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명백하게 깨달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늘 담겨 있다. ‘더 크게, 더 좋게, 더 빠르게, 더 많이’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6+1’ 리듬을 배우다
시내산 앞에 진을 치고 여호와를 만날 준비를 하였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높고 고상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이스라엘의 사회 구조는 여호와와 맺는 관계(제사장 나라)와 그분의 임재를 향한 지속적인 (제사장적) 접근에 영향받았다. 매주 안식일, 매 안식년, 매 희년(7×7년)은 그들에게 이런 특권과 생활 방식을 상기시켜 주었다. 땅, 종, 동물 심지어 그들 옆에서 살고 있는 낯선 자까지라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6+1’ 리듬의 일부였다.
습관은 정형화된 강력한 행동이다. (규칙적인 운동이나 개인의 아침 헌신의 시간과 같은) ‘훌륭한 습관’은 건전하고 생산적인 삶에 크게 이바지한다. (텔레비전 화면 앞이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잠을 지나치게 적게 잠으로 우리 몸을 학대하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은 종종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초래한다. 습관은 강력한 틀이다.
(안식일을 포함하여 우리 삶의 훨씬 많은 국면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6+1’ 리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로 병든 마음을 우리 자신과 우리 이기적인 본성을 넘어서도록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세상의 아우성에 대응하는 힘을 이 리듬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멈추고, 안식하고, 교제할 때 우리는 주변 세계에서 복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제럴드 A. 클링바일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이다. 매일 하나님의 ‘6+1’ 리듬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배우려 하고 있다.
발문
하나님은 일용한 양식의 공급까지 포함하여 자기 백성의 삶 모든 영역에 자신의 리듬이 스며들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