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인과 사회 정의
코스틴 조다시, <애드벤티스트 월드> 뉴스 편집인
사회 정의에 대한 10년간의 논의 끝에, 2007년에 UN은 2월 20일을 세계 사회 정의의 날로 지정했다. 그 이후로 매년 2월 20일에는 세계 사회 정의의 날 기념식이 열리고, 이로 인해 개인, 조직, 정부 사이에 사회 정의에 대한 중대한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UN은 공식적으로 ‘사회 정의’를 사회적 억압과 가난의 근절, 공정한 고용 관행 그리고 보건과 교육에 대한 공정한 접근이 포함된 일련의 원칙과 목표로 정의한다. 동시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회 정의’라는 용어가 지난 몇 년 동안 정치 이데올로기에 겹겹이 감싸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렇다면 재림교인은 ‘사회 정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이다. 유대-기독교의 뿌리를 지닌 재림교회는 사회 정의 뒤에 숨겨진 순수한 개념에 낯설지 않다. 그것은 모세 오경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의미에서 사회 정의란 사회가 공정하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세 오경을 간단히 읽어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항상 사회법의 특성 중에서 공정함을 가장 강조하셨다. 예를 들어 ‘모세의 법’은 아무도 부당하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원칙과 체제를 강조했다. 나그네와 이방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했고(출 22:21), 법원은 부당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되었다(레 19:15).
이러한 정신은 신약에서도 이어진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기록이 마태복음 25장에 소개된 예수님의 비유이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보살피는 것과 관련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에서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약 1:27).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재림교인이 사회 정의에 대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사회 정의 구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으라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보라. 굶주리고, 목마르고, 외로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행동하기로 결심하고 작게 시작하라
도울 대상을 전 세계나 도시 전체로 정하지 말라. 주변의 한 사람 혹은 한 가정부터 시작하라. 도움을 주기 전에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라. 사람은 누구든지 존중받고 싶어 하는 깊은 갈망이 있다.
정의를 옹호하라
이런 방식으로 돕기를 시작하면 매일의 필요를 돕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성경의 권면에 따라 사회의 언저리에서 고통 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우리는 이 사회의 불의와 그 희생자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무언가를 차지하려고 한다. 많은 경우 소외된 사람은 완벽한 피해자가 된다. 결론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목격한다면, 무언가를 말하고 행동을 취할 수 있다면 행동하라.
사회 정의라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있지만, 재림교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은 잊혀진 사람, 학대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해 일하는 분이시다. 세계 사회 정의의 날을 맞으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로서 우리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