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파리에서 보낸 첫 금요일 밤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유스호스텔 3층에서 나는 이런 글을 적었다.
“건너편 침대의 카세트플레이어 소리 너머로 나는 주님을 찾는다. 네온 불빛 찬란한 도시 너머 어딘가에서 성령께서는 기꺼이 듣고 기쁘게 대답하신다.”
짤막한 다른 산문들처럼 나는 이 구절을 일기장에 적고 모서리를 접어 놓았다. 내가 받은 재림 신앙 교육의 핵심 단면이 그 글귀에서 묻어난다. 안식일 환영 기도를 드리는 습관, 친절하신 하나님께는 나의 기도도 의미가 있다는 확신 그리고 일생 중 기도가 충만하던 순간에도 종종 따라다니는 방해 요소들.
“건너편 침대의 카세트플레이어”란 내가 기도하는 시간에 무신경한 룸메이트가 틀어 놓은 것이다. 수년 동안 그것은 기도를 어렵게 만들고 또 절실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런 훼방거리가 죄다 남들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대화 시간에 곁길로 빠지는 나의 능력은 무한에 가깝거나 적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어제 하다 남겨 둔 일, 앞날의 걱정, 스마트폰 뉴스피드에서 들려오는 거슬리는 목소리, 중보 기도와 간구 시간에 집중력을 깨트리며 갑자기 생각나는 급한 일, 이런 것들은 조용하고 느긋하게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 마음으로 바라고 신체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그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금요일 밤에, 매일 아침에, 깨어 있는 동안에 딴생각이 들게 하는 수많은 훼방거리 너머로 주님을 찾는다. 그것이야말로 수년에 걸쳐 얻은 가장 위대한 깨달음이다. 믿음은 이겨 낸다는 것, 하나님은 기다리신다는 것, 은혜는 나에게까지 넉넉하여 내가 창조주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번 달 커버스토리 ‘하나님을 갈망하라’를 읽으면서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찾아보자. 늘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고 즐겨 대답하시는 주님과 의미심장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장소 말이다.
그 너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