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도 리콜이 되나요?
생각해 보니 학기 내내 그 포스터를 보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과연 그 메시지가 타당한지 성가신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여하튼 학교 캠퍼스가 그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에(심지어 화장실에도) 안 볼 수가 없었다.
포스터의 맨 윗부분에는 굵은 글씨로 ‘실패를 허용할 수 없다면’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의 주의를 끌려는 다른 포스터들도 주변에 많았다. 시선을 사로잡은 그 포스터의 내용을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그 메시지는 내 의식의 저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포스터 내용 전체를 읽어 보았는데 대학의 장애 지원 서비스(Disability Support Services) 참여를 독려하는 것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멋지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첫 문구 때문에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고군분투하는 학생들 생각 때문이 아니라 성공에 집착하는 사회 때문이다. 이 사회는 성공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버렸고 실패를 봐주지 않는다. 십 대 자녀를 키우는 일에 관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우리 집에도 십 대가 둘이다). 무언가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야말로 딸아이가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엄마인 그 친구가 말했다. 학교 성적, 운동, 심지어 패스파인더, 데이트까지 우리는 모든 것에 성공해야 한다. 종종 정서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
최근 독일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7학년(중학교 1학년) 학생 전부가 부모의 뜻에 따라 과외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성적이 탁월한 아이까지 이미 꽉 짜인 스케줄에 더하여 방과 후에도 몇 시간씩 오후 수업을 받는 것이다. 낙제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다. 자녀가 성공하는 모습, 자기 자녀만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부모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아이는 수학과 문법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고에 물든다. ‘나는 항상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요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안 그러면 나의 학업이 그리고 결국 사회적 발전도 위태로워진다. 발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 사전에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울증, 불안, 심지어 극도의 피로(burnout)가 점점 더 어린 나이에 나타나고 있다며 아동심리학자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높인다.1 그렇게 된 이유는 ‘아이들이 실패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 즉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이라는 소용돌이를 부추긴다. 그로 인한 불안과 자기 회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실패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실망을 겪게 될 경우 전혀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저 밋밋하게만 살고 탁월함을 추구하려고 애쓰지는 말라는 게 아니다. 최고만을 좇는 길에서 벗어나 이제 인생을, 나아가 영생을 배우고 통달할 수 있는 더 건강한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신학적 각도에서
성경에는 실패한 인물이 수두룩하다. 모세는 처음에는 이집트인을 쳤고 나중에는 바위를 여러 번 때렸다. 다윗은 매혹적인 유부녀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는 데 멋지게 실패했다. 베드로는 칼을 휘둘렀다.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맹렬히 박해했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한 뒤 그동안의 자기 인생이 완전한 실패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물들이 성경에 줄줄이 등장한다. 사실상 그들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용서와 사랑이신 구주의 팔에 안겼고 강력한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중요한 근본적 사실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실패를 경험하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힘이 필요하다고 더 절실히 깨닫는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실패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힘을 얻고자 한 발 더 전진하게 된다. 반대로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삶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뒤틀어 버리는 완전주의에 빠진다.
둘째, 실패를 경험하면 주변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커진다. 베드로의 경험을 돌아보며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기억하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그리스도께서 다루셨던 것처럼 친절하게 다루어야 했다.”2 자신의 실패를 건강하게 인식하면 상대의 부족을 더 잘 용서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에 더 가까워진다.
죄악 세상에서 실패는 유감스럽지만 엄연히 일어난다. 실패라는 옵션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거나 일부러 애써 구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계속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다가 첫 실패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지 않아도 되니까.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도록 자녀를 다그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실패할 수 있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넉넉하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내 아이의 다음 학기 성적표를 보고도 지금과 같은 조언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틴 G. 클링바일 미국 테네시 칼리지데일에 있는 서던 재림교회 대학의 성경 연구 및 고고학 교수이자 고고학 연구소 부소장이다.
1http://www.spiegel.de/lebenundlernen/schule/burnout-bei-kindern-wie-kommt-es-so-frueh-zu-depressionen-a-1045734.html
2<사도행적>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