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갈망하라
기도의 역설
프랭크 M. 하젤
영적인 삶에 기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우리는 익히 들어 왔다. 기도는 유혹을 이길 힘을 준다고도 들었다. 기도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희망을 얻은 이야기도 들었다. 심지어 기도로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이 변화되고 사건의 진행이 바뀌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기도는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생활에 필수 요소라고도 들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절대적으로 기도가 필요할 때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역설이다. 도와달라는, 소원을 들어달라는 무덤덤한 기도만 계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허하고 피상적인 문구만 되풀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이성적으로는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리의 영적 현실은 전혀 딴판이기 때문일지도.
정말 효과가 있을까?
교회 청년 소그룹에서 성서적인 기도의 기초1에 관하여 내가 설명하는 내용을 귀담아듣던 학생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3주 뒤에 그는 나를 보더니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나의 가르침에 대해 따졌다. “하나도 효과가 없었어요! 목사님 말씀은 사실이 아니에요!”
일의 자초지종을 묻자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다른 여학생과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정리 정돈하는 스타일이 서로 맞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더러운 접시 더미를 주방 개수대에 몇 날 며칠 그냥 두었지만 그 친구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는 룸메이트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애쓰지는 않은 채 룸메이트가 더 깔끔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더 참겠다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태도였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상대방의 회심과 마음의 변화를 위해 구하는 것도 어쨌든 남을 위한 기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경건의 가면을 쓰고 그릇된 동기로 그런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상대를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에 찌들어 기도하는 일이 흔하지 않은가?
배우자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기도하는 이유는 나 좀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이고 하나님께 특별한 무언가를 구하는 이유도 익숙해진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고통이 두렵고 병들어 고생하며 살기 싫어서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업이 잘되기를 구하는 것도 그 일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기도한 게 이루어져야 나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도의 중심 찾기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기도의 중심일 때가 비일비재하다. ‘원하는 것’이 다 나오는 영적 자판기처럼 기도를 취급할 때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기도할 때 사물에 초점을 두는 일을 그만두자. 하나님께 초점을 다시 맞추자. 그분을 중심으로 삼자. 기도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찾고 누리느냐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2 소원과 요청 목록을 내미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때 그런 기도가 시작될 것이다. 살아 있는 관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요청 목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행복 추구만 부각시킬 뿐이다. 그러나 기도의 핵심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의 성품을 받들고 따르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기도는 완전히 새로운 초점을 찾게 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것이며 우리의 요청과 소원, 심지어 우리의 삶 전체와 환경까지도 그분의 눈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이 그랬다. 그들이 우리의 모본이다. 적군이 벌 떼처럼 몰려와 유다 왕국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여호사밧 왕은 압도적인 숫자에 항거할 수 없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항목을 나열하거나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다시 언급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대하 20:5~12). 그러고는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는 말로 기도를 끝마쳤다(12절).
여호사밧은 자기 앞에 놓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다. 문제조차 지배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온갖 어려움이 새로운 빛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성품, 특성, 능력을 생각하면 우리의 경배와 기도는 새로운 영적 삶으로 채워진다. 그분을 경배하고 우러르게 된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기도의 중심이 된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신 곳으로 우리를 끌어 올려준다.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바꾼다.
이렇게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하나님 앞에 정직해진다. 그분의 사랑과 신성함에 비추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소원과 필요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그럴 때 비로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사랑 표현이 된다.
그분의 사랑 엿보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보여 드릴 만한 추천서가 없다. 인상적인 업적을 이룬 것도 없다. 그분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 만큼 우리의 사랑이나 지혜가 모범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것도,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도 전혀 없으시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이유는 간단하다. “응답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품성과 계획 때문에 기도에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3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주신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고 요구하는 것 너머까지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신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복은 그분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가 위대한 것을 구할 때 그분은 기뻐하신다.
이러한 기도로 하나님과 맺어진 관계에서는 창조주이자 구주이신 분과 함께하는 시간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즉석 기도에 익숙해 있다. 시간을 들여 자연스럽게 기도가 영글게 하는 삶의 보폭과 오늘날의 문화는 엇박자를 이루고 있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리듬은 전자레인지나 맥도널드에 친숙하다. 하나님께 소원 목록을 제출하고는 수초 내에 응답받기를 바란다. 즉시 얻고 싶어 한다. “주님, 참을성을 주시되 그 참을성을 지금 당장 주십시오!”라고 보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급하고 종종 이기적인 ‘인스턴트 기도’를 듣고 계시지만 그런 기도는 영적인 삶을 윤택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급하게 드리는 기도는 깊지 않다. 깊은 영향력은 참을성 있게 기도할 때만 생긴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바쁜 문화에서 살지 않았지만 시간은 더 촉박했다. 구원의 계획을 이루도록 주어진 시간은 3년 6개월뿐이었다. 사역 기간이 몇 달밖에 안 된다는 것은 치료받지 못하고, 가르침 받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할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숨을 거두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지는 않았어도 해야 할 것은 다하셨다. 기도하면서 조용히 아버지와 교제하는 가운데 그분은 먼저 해야 할 것을 분별하실 수 있었다. 기도를 통해 그분은 정말 중요한 것과 단순히 급한 것을 명확하게 가려내셨다. 기도하면서 창조주이자 구주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우리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기도하면서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사람은 변화된다. 중요해 보였던 것이 보잘것없어지고 다른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다르게 보인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만큼 마음이 순결해 지는 때도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방향과 동기를 부여받아 사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더없는 기회이다. 그 시간을 통해 그분이 자기 형상을 우리 속에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본 기사와 기타 실제적인 기도에 관하여 더 알고 싶으면 다음을 참고할 것. Frank M. Hasel,
Ibid., pp. 42~45
Paul David Tripp, A Shelter in the Time of Storm : Meditations on God and Trouble (Wheaton, Ill.: Crossway Books, 2009), p. 53
프랑크 M. 하젤 독일 출신이며 대총회 성경연구소 부소장이다.
“기도란 친구에게 하듯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자기 상황을 하나님께 알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도란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우리를 그분께로 끌어올린다.” – 엘렌 G. 화잇 <정로의 계단> 93
기도에 관하여 알아두면 좋은 10가지 성경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1~3).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시 17:6).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도다”(시 145:18).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렘 29:12).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0~12).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가 햇빛처럼 우리 안에 임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빛을 쳐다보십시오. 그리스도와 실생활에서 친밀하게 만나십시오. 그래서 기분 좋고 신나는 영향력을 발휘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고 깨끗하고 굳세게 하십시오. 마음에 감사가 흘러넘치게 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루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주위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과 더 가까워지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 엘렌 G. 화잇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199
“기도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 준다. 영혼을 낫게 해 달라고 위대한 의사이신 분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기도하면 우리는 서로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기도하면 예수님이 우리 편이 되시고, 기진맥진하여 혼란에 빠진 사람이 새로운 힘과 신선한 은혜를 얻어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이기게 된다.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뒤집어엎는다.”
– 엘렌 G. 화잇 <우리의 높은 부르심>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