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쇄소
에르난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한다. 지역 사업자들의 인쇄물을 많이 취급하고 있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전도 책자를 인쇄하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성경 연구 모임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평신도 전도 모임에서 말씀을 나눈다.
에콰도르연합회가 쿠바에서 문서 전도와 전도 집회를 개최하도록 요청받았을 때 에르난은 재빨리 팀의 일원으로 자원했다. 늘 선교사가 꿈이었던 에르난이 꿈을 실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몇 달 동안 추가 근무, 밤샘 작업으로 여행 경비를 모았다. 쿠바에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고 싶어서 인쇄소에서 일하는 짬짬이 성경 공부 인도하는 법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출발 당일, 에르난과 가족은 인쇄기 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매우 특별한 기도를 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쿠바로 해외 선교를 떠나는 아빠에게 은혜를 내려 주세요. 거기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돕는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아멘!”
키토에서 쿠바의 수도 아바나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에르난은 준비한 설교문을 복습하며 집회에서 만날 새로운 친구들을 생각했다.
‘인쇄 일은 이제 그만!’ 에르난은 미소 지었다. ‘한 주 내내 예수님을 위해 전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
쿠바에서 첫 2~3일 동안은 집회 장소를 준비하고 도시 주변에 나눠 줄 자료를 준비했다. 에르난은 아바나 구시가와 스페인 요새들을 구경하는 대신 지역 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전도회가 성공하도록 기도했다.
“에르난!”
아침을 먹다가 에르난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쳐다보았다.
“에르난, 에콰도르 선교 팀에 당신 같은 분이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회색 정장에 밝은 초록 타이를 맨 쿠바대회장이 식탁으로 다가와 두 팔을 높이 들고 인사했다. “여기 계셔서 마침 다행이에요. 대회 사무실에서 지금 당신의 기술이 필요해요.”
“제가 무얼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에르난이 물었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인쇄업을 하셔서 인쇄기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방금 알았어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우리 인쇄기는 낡았지만 수년간 잘 작동했어요. 그런데 오늘 멈춰 버렸지 뭐예요. 이번 달에 당신과 전도 팀이 사용할 희망의 소리 성경 연구 인쇄를 끝내려면 기계가 작동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려고 에르난을 쿠바로 보내 주셨나 봐요.”
에르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마음이 혼란해졌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하고 웃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쿠바에 전도를 하러 왔지 인쇄기를 고치러 온 게 아닌데.’
에르난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날의 좌절, 스트레스 그리고 희망을 회상하며 몸을 떨었다.
“하나님께서 그 낡은 인쇄 기계를 35년 이상이나 작동하게 하셨지만 더 이상 종이가 롤러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인쇄기가 있는 방에 들어갔더니 아직 십 대인 일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저에게 기적을 부탁하더군요.”
에콰도르에서 찾아온 인쇄 기사 에르난은 머리에 떠오르는 해결책을 전부 시도해 보았고 결국 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이 기계를 완전히 분해해 본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에르난이 제안했다.
듬직한 낡은 인쇄기는 곧 뼈대만 남았고 부속들이 방 안에 나뒹굴었다. 마치 인쇄기 고물상 같았다. 숨 막히는 열기와 습도 속에서 에르난과 십 대 조수 네 명은 웃통을 벗고 부속들과 씨름을 벌였다.
“작은 레버가 없네요.” 에르난이 네 젊은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인쇄기가 종이를 잡아당기지 못하는 거였어요. 그 부속이 없는데 복제품을 만드는 법은 저도 모른답니다.”
그때 대회장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광경을 보고 그는 기가 막혔다.
“이런! 완전히 망가졌군요. 쿠바 재림교인 모두에게 전할 희망의 소리 통신 교재와 안식일학교 교과를 인쇄해야 하는데 기계를 고친 게 아니라 다 망가뜨리셨네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에르난은 다시 몸서리를 쳤다.
“고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에르난의 말을 듣고 대회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소리쳤다.
“그만요! 지금 당장 원상태로 조립해 놓으세요!”
에르난은 없어진 레버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했고 이제 유일한 해결책은 기도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기도하고 나서 다시 조립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가 놀라서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에르난이 내게 말해 주었다. “그러더니 모두 돌아서서 그 인쇄소를 떠났어요. 모두가요. 같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모두 달아나 버렸어요. 망가진 인쇄기와 저만 남겨 두고요.”
에르난은 인쇄기 부속이 널브러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홀로 기도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는 말했다. “영원이 흐른 것만 같았어요. 방에서 나갔던 사람들이 전부 차례차례 돌아왔어요. 얼굴도 말끔히 씻고 머리도 빗고 깨끗한 옷을 입고서요. 대회장님은 저를 보며 말씀하셨죠. ‘이제 기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에르난, 먼저 시작해 주세요.'”
여전히 웃통을 벗은 채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에르난은 기도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방을 나갔을 때 제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제가 정말 그 인쇄기를 망가뜨렸나 싶어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분들께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목이 메어 하나님께도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지요.”
대회장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후, 에르난은 일어서서 눈을 뜨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거기 자신의 두 발 사이에, 몇 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그 없어진 부속이 있었다.
에르난과 십 대의 일꾼들은 인쇄기를 다시 조립하고 기름을 칠했다. 저녁이 되었다. 인쇄기가 다시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사람들이 전부 몰려왔다. ‘거듭난’ 인쇄기에 에르난이 종이를 밀어 넣었고 모두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처음 것은 항상 좋지 않아요.” 에르난은 다이얼을 돌리고 롤러를 조절하면서 조용히 하늘의 인쇄 기사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번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볼까요?”
하나님의 인쇄기는 희망의 소리의 성경 교재를 완벽하게 인쇄해 냈다. 방 안에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