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 발자취
단풍나무 숲에서
일어난
부흥
신체적·영적 회복이
계속되는 곳
1866년, 크리스마스를 딱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16개월 전에 찾아온 뇌졸중으로 약해진 제임스 화잇은 아내 엘렌이 기대한 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제임스는 미국 뉴욕주 댄스빌에서 의사 제임스 잭슨이 운영하는 요양병원 ‘홈 힐사이드’에서 수치료와 기타 천연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엘렌이 보기에는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남편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낼까 염려되었던 엘렌은 제임스를 데리고 자신이 ‘미시간 북부’라고 여기던 지역으로 순회강연을 떠나기로 했다.
엘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양탄자들을 내다 팔았다. …양탄자를 팔아 얻은 돈으로 덮개 달린 마차를 구입해 여행을 준비했고, 마차에는 남편이 누울 수 있도록 매트리스를 깔았다.”1
아들 윌리와 함께 화잇 부부는 배틀크리크의 집을 떠나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갔다(화잇은 “겨울 중 가장 추웠다.”고 기록했다)2. 그들의 목적지는 배틀크리크에서 152킬로미터 떨어진 곳, 미시간 서부의 작은 농업 지역인 라이트였다. 몸이 약한 제임스를 데리고 그토록 멀리 여행하는 일은 그리 현명한 결정이 아닌 듯 보였다. “140여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남편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견뎠다.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는 배틀크리크를 떠날 때처럼 건강해 보였다.”3
E. H. 루트가 그들을 자신의 농장에 초대해 자신의 가족과 함께 머물게 해 주었다. 라이트는 미시간을 여행하는 화잇 가정에게 제2의 고향과 같았다. 거기서 받은 환대뿐 아니라 그 교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곳은 제임스의 회복을 위한 이후의 장소로 완벽했다.
제임스에게 매일 운동이 필요하다는 엘렌의 입장은 단호했다. “남편은 매일 밖으로 나가 산책했지만 겨울에 눈보라가 심할 때면 나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루트 형제에게 남는 장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있고 말고요.’라고 대답했다. ‘장화를 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화를 신고 나가서 푹푹 빠지는 눈길을 400미터나 걸어갔다. 돌아와서 남편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했더니 이런 날씨에는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아니요. 할 수 있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제 발자국만 따라오면 되는 걸요.’ 그이는 여자를 매우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발자국을 보고 나서 여자가 그런 눈길을 갈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날 아침에 그는 평소처럼 산책했다.”4
제임스의 건강은 꾸준히 좋아졌다. 라이트를 떠난 뒤에도 계속 나아졌다. 세심한 보살핌, 강단으로 돌아가 설교해야 한다는 적당히 부드러운 강압에 힘입어 그는 마침내 회복되었다.
재림교회의 시작
화잇 부부는 왜 라이트 지역을 선택했을까? 농부 루트의 가정에서 경험한 환대 때문일까?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임스가 다시 일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라이트에는 미시간합회가 구성되기 3년 전부터 그리고 대총회가 조직되기 5년 전부터 안식일 준수 재림교회가 있었다. 1858년에 조지프 B. 프리스비가 ‘경계의 끝자락’인 라이트에 와서 복음 전도 집회를 연속 개최했다. 인근 교회 목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참석자가 많았다. 지역 학교에서 집회를 시작한 후에 프리스비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지역 관리 중 하나가 자신의 헛간을 내주었고 집회는 계속되었다. 강연이 끝날 때는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사람이 침례를 받았다.
그러나 1866년 겨울에 화잇 부부가 도착했을 때, 엘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교회가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불화와 불만의 씨앗이 교인 대다수의 마음 깊이 뿌리내렸고 세속의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 설교자들의 수고에 좀처럼 호응하지 않았고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었다.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질병은 얻은 뒤였다. …그들은 집중하여 우리에게 귀 기울였다. 남편은 나날이 건강하고 명석해졌고 맡은 일에 더 깊이 몰두했다.5
화잇 부부는 라이트 교회에서 6주 동안 지내면서 성경의 가르침, 건강 원칙, 의복 개혁을 전하면서 그들을 격려했고 체계적인 기부(십일조와 헌물) 계획을 수립했다. 교인들은 서로 잘못을 고백했고 다시 연합함으로 교회의 성장을 이루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조직적인 첫 장막부흥회가 라이트에서 개최됐다. 화잇 부부가 눈보라를 뚫고 겨울 여행에 나선 지 2년 만의 일이다. “1868년 미시간 라이트 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제임스와 엘렌 화잇, 유라이어 스미스가 참석했고 야영회 주제들이 논의됐다.”6 처음에 제임스는 호수 접경 주들의 대형 장막부흥회를 제안했지만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대안으로 소규모의 지역 집회들을 갖기로 했다. “미시간 서부와 위스콘신, 일리노이를 위한 집회, 미시간 동부와 뉴욕, 캐나다를 위한 집회, 미시간 남부와 인디애나, 오하이오를 위한 집회를 각각 열기로 했다. 첫 번째 지역 집회는 라이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라이트가 미시간 호수와 가까워서 위스콘신과 일리노이 신자들이 배로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7 첫 번째 지역 집회는 아주 성공적이어서 대규모 장막부흥회에 대한 생각은 사라졌고 합회별 장막부흥회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계속되는 증언
설립된 지 160년이 지난 오늘날도 미시간 라이트 재림교회에서는 신실한 교인들이 활동적으로 교회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오래된 단풍나무 숲에서는 지금도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1<가려 뽑은 기별 2권> 306
2<교회증언 1권> 103
3<교회증언 1권> 104
4<가려 뽑은 기별 2권> 307
5<교회증언 1권> 570
6A. W. Spalding,
7앞의 책, 9~10
버나드 앤더슨 재림교회 유산 사역의 명예위원이며 미시간주 라이트 재림교회 수석장로이다. 베스 토머스 자유 기고 편집인이며 미국 메릴랜드 로럴에 거주한다.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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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라이트에서 개최된 재림교회 최초의 장막부흥회 그림(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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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교회 뒤에 펼쳐진 들판에서 재림교회 최초의 장막부흥회가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