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꾸러미
빨간 소방차
딕 더크슨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재림교회 의료선교사요.” 도널드 밀러가 대답했다.
그는 다른 길을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온전히 삶을 바쳤다. 열심히 공부했고 로마린다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졸업 후 밀러와 아내 윌마는 의료선교사의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밀러는 종종 말했다.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곳이니까.”
밀러 부부는 의사로 업무를 시작했고 학자금 대출도 갚아 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의료선교사로 일하고 싶어 하셨는데 병원 업무에 매여 있어야 했으니까요.” 아들 고든이 말해 주었다.
“의사가 없는 멕시코의 산악 지대 마을로 단기 선교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밀러처럼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고 작은 개인 경비행기를 구입한 의사 친구가 물었다.
“물론이지.” 밀러는 기꺼이 응했다.
그 여행 이후 밀러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로 ‘단기’ 선교여행을 수없이 다녔다. 비포장도로, 짧은 활주로, 일반 공항의 아스팔트를 가리지 않고 착륙할 수 있는 숙련된 조종사가 되었다. 비행기에는 늘 의료 자원봉사자와 함께 의료 물품이 그득했다. 약 한 병이라도, 목발 하나라도, 봉사심에 불타는 간호사 한 명이라도 더 태우고자 했다.
***
밀러는 멕시코 고산 지대 주민을 위해 의료선교 봉사대와 이동 병원을 정기적으로 이끌며 40년 동안 날아다녔다.
“그래도 여전히 더 먼 곳으로 가서 의료선교사로 봉사하고 싶었어요.”라고 윌마는 회상했다. “빨리 은퇴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곳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었지요.”
은퇴한 뒤 두 사람은 오랜 숙원이던 국제 의료선교를 동남아에서 시작했다.
“캄보디아에 여러 번 찾아가 난민 캠프에서 일했어요. 뜻깊은 여행이었지요. 약을 나누어 주고, 뼈를 맞춰 주고, 음식을 나누어 주고, 어린이들을 안아 주었어요. 대부분이 고아라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따뜻한 가정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어지요. 그 대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학 치료를 받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아버지는 항상 호주머니에 페퍼민트 캔디를 갖고 다녔고 아이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다니듯 아버지를 따라 다녔어요. 아버지는 금세 ‘캔디 의사’로 알려졌어요.”
어느 날 난민 캠프 경비원들이 다급하게 밀러를 찾았다. 여자아이와 남동생이 캠프에 왔는데 즉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자아이 다리가 부러져 있었어요.” 윌마가 말했다. “어린 남동생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려고 며칠을 걸어왔지요. 깡마른 어린 소녀와 그보다 더 작은 아이를 보고 가슴이 찡했어요. 여자아이는 심하게 얻어맞아서 다리를 절었어요. 어린 동생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든 걸 무서워했어요. 밀러는 소녀의 다리를 맞춰 주고 잘 회복되도록 낡은 자동차의 부서진 조각으로 부목을 댔어요. 누나가 치료를 받는 동안 어린 동생은 야전침대 밑에서 잠들었지요.”
하루는 ‘캔디 의사’가 남자아이에게 작은 소방차 장난감을 선물했다. 단순하지만 사랑이 한 아름 담긴 선물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누나의 침대 밑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몇 주 뒤에 밀러 내외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
의사가 된 아들 고든 밀러는 아버지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서 부모님을 파리 에어쇼에 모시고 가겠고 했다. 사치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쇼에서 수백 대의 비행기를 보는 것은 비행사이자 의사인 늙은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이기도 했다. 밀러는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행 계획을 짰다. 하지만 여행 바로 전, 밀러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더 이상 파리 에어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윌마가 그 당시의 기분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안 계시잖니.”
“그래도 가야 해요. 어머니! 아버지는 이 여행을 무척 기다리셨어요. 어머니가 가시길 바라실 거예요.”
둘이 파리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을 때도 윌마는 캄보디아에서 지내던 추억을 회상했다.
“아버지였다면 아시아 운전사를 원하셨을 거야.” 윌마는 택시 옆에 서 있는 젊은 아시아 사람을 가리켰다.
“고향이 어디에요?” 윌마가 택시에 타면서 물었다.
“캄보디아요.” 운전사가 대답했다.
“혹시 난민 캠프에서 머무신 적 있으세요?” 윌마가 앞으로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네, 큰누나는 파리의 가정에 입양되었지만 작은누나와 저는 큰누나가 우리를 찾을 때까지 여러 해 캠프에서 지내야 했어요.”
윌마는 호주머니 깊숙한 데서 구겨진 사진을 꺼내 운전사 앞으로 내밀었다.
“혹시 이 사람을 아세요? 저의 남편이에요. 함께 캠프에서 일했지요. 의사였어요. 아주 좋은 의사요!”
택시 기사는 흘끗 사진을 보더니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운전석 밑 깊숙한 곳에서 작게 포장된 물건을 꺼냈다.
“네, 알아요. 밀러 선생님이요.” 그는 포장지를 풀어서 물건을 손에 들고 윌마에게 보여 주었다.
“밀러 선생님은 저의 친구예요. 제게 희망을 주신 분이지요.”
택시 기사는 오래된 빨간 소방차를 손에 들고 있었다.
윌마는 말한다. “우리의 삶이 정말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하고 회의가 들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저를 파리로 데려가셔서 그 오래된 소방차를 보여 주신 거예요. 그제서야 확신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을 한 게 맞구나 하고요.”
딕 더크슨 목사이자 이야기꾼이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산다. 사람들에게 ‘은혜의 배달꾼’으로 통한다.
발문
“밀러 선생님은 저의 친구예요. 제게 희망을 주신 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