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재림
파라다이스 2.0
찬란한 신세계에 대한 이상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인간 그리고 에덴 즉 낙원을 창조하셨다. 그 환상의 동산은 모든 필요가 충족되는 곳, 완벽하게 조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죄로 인해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곳은 서서히 잊히다가 마침내 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곳을 향한 열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모든 세대는 파라다이스를 꿈꾸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는 그곳을 찾고 있다.
이상적인 세계: 남태평양 섬 유토피아
500여 년 전,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인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다. ‘유토피아’란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뜻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선원 라파엘 히들로데우스는 멀리 떨어진 곳의 유토피아라고 하는 완벽한 섬에 대해 극찬한다. 섬의 길이는 320킬로미터가 넘고 도시들은 장엄하다. 모든 주민은 같은 언어를 쓴다. 돈도 권력도 없고 공유된 공동선의 원칙에 근거해서 협력이 이루어진다.
먼 세상: 스타워즈
19세기까지 저술가들은 먼 섬이나 가기 힘든 위치에 이상적인 장소가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지도에서 마지막 미개척지가 사라지고 지구에 더 이상 새로이 찾아낼 곳이 없게 되자 완전한 장소는 미래 혹은 우주로, 이상적으로는 그 두 조건이 합쳐진 미래의 우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문학 장르와 예술은 공상 과학 소설로 불려졌다.
1828년에 태어난 프랑스의 쥘 베른은 일반적으로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베른은 처음으로 과학과 기술을 문학의 중심에 두었다. 우리 가운데는 그가 창조한 영웅들과 친숙한 사람이 많다. 네모 선장과 그의 잠수함 노틸러스, 세계 여행가 필리스 포그와 리텐브로크 교수를 기억하는가?
붉은 세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쥘 베른과 동시대 사람 칼 마르크스는 파라다이스를 재발견하는 아주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1818년,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주의 이론가였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근본 사상은 그의 작품에 근거한다. 사회평등주의 이론을 통해 그는 자기가 사는 동안 이 땅에 인류의 파라다이스를 약속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이런 시도 또한 재앙으로 끝났다고 역사는 말한다. 평등의 꿈은 낙원이 아니라 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1989년, 절망이 그 모든 과정을 무너뜨렸고 독일을 둘로 나누었던 장벽은 붕괴됐다. 강제를 통한 평등이라는 모든 이상도 함께 스러졌다.
테크노 세상: 메가시티 ‘네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려는 가장 최근의 사상 중 하나는 이른바 ‘네옴(NEOM)’이다. 네옴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의 일부를 포괄하는 하이테크 메가시티이다. 2만 6,500제곱킬로미터 크기에 5천억 달러가 투입되는 이 도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모하멧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가 다음 수십 년간 사막에 세우려는 도시이다. 네옴은 ‘네오’와 ‘무스타크발’의 조어로 ‘새로운 미래’ 같은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 첫 번째 건설 사업이 2025년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옴은 혁신적이고 초현대적이며 새로운 법과 세금 제도를 운영하는 과학, 비즈니스, 번영의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메가 산업 지역은 자동화 도로, 드론 택시, 자가 학습 교통 시스템 등을 갖춘다. 도시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는 바람과 태양으로 생산되고 사람과 사물이 디지털 방식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려는 또 하나의 시도이다.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다. 과연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정말 제대로 만족시켜 줄 것인가? 지금까지 기술로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무너진 세상: 디스토피아의 매력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몰락은 거대한 사회·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를 드러냈다. 유토피아 세상의 저자들 또한 사라졌다. 20세기에는 선이나 행운이라는 상상력이 사라졌다. 유토피아 대신 디스토피아가 세워졌다. 테크놀로지와 감시에 대한 공포가 증가하는 모습이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베스트셀러로 나타났다. 21세기의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왔다. 세상은 환멸이 가득하고 붕괴해 가고 있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세상을 한데 묶어 주는 웅대한 서사 없이 살아가는 듯하다. 오늘날 파라다이스는 지금 여기에서도, 미래에서도 찾을 수 없다.
새로운 세상: 하늘 예루살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파라다이스는 그것을 다시 찾으려는 인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상실됐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들은 멋진 신세계가 이곳 지구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성경은 다가올 더 나은 세상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서기 1세기에 사도 요한은 미래에 관한 이상을 보았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그는 새로운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계 21: 2, 5).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게 멋진 신세계를 실제로 창조하실 것이다. 파라다이스는 먼 섬에 있는 목가적인 안식처가 아니다. 우주 여행, 터무니없는 평등의 환상, 하이테크놀로지가 아니다. 그것은 죄가 없는 세상이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27절). 하나님의 임재가 최고의 행복을 보장한다. 에덴에서처럼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할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계 22:3~4).
더 나은 곳을 열망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믿고 따라오라고 초청받는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계 22:17).
그렇다. 오라!
클라우디아 모어 독일 재림교회 홍보부장이다. 남편 옌스-올리베르, 딸 멜로디와 함께 오스트필더른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