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과 얻은 것
난민의 이야기
정리: 키미-루 제임스, 제공: 이고르 미트로비츠
2년! 18살 마시 나자리가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빠져나와 세르비아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저는 고향을 사랑했어요.” 나자리가 말했다.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 살았어요. 그곳에서 학교도 마치고, 이야기, 소설, 시를 습작했지요. 재봉도 배웠고요.” 나자리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나 고향 카불이 불안으로 동요하면서 그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한때 평화와 조화가 넘쳤던 곳이 폭력과 경제난에 시달렸다. 갑작스런 삶의 변화로 나자리의 미래 계획은 중단됐다.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저는 중도에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하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일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가족은 남기로 했지만 나자리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혹독한 악조건을 뚫고 마침내 세르비아에 도착했다.
남자, 여자, 어린이 등 아프가니스탄 난민 4,000여 명이 세르비아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 낮은 수입, 불안전한 상황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난민이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돼요.” 나자리가 말했다. “저는 더 나은 길을 원했을 뿐이에요.” 나자리는 더 서쪽으로 여행하여 유럽으로 가고 싶었지만 정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세르비아의 국경은 폐쇄된 상태다.
나자리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외곽 망명자 수용소에 거처를 얻었고 여러 달 머물렀다. 직업을 찾을 수 없어 절망적이었다.
“행복을 찾는 것도 이제 끝일까?” 나자리는 곰곰이 생각했다.
희망을 찾다
희망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친구를 통하여 베오그라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보르카에 지역 센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재림교회가 세르비아에서 운영하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아드라였다.
“아드라 직원인 야신과 카림을 만났고 그들은 제게 아드라가 어떤 곳이며 어떤 프로젝트를 제공하는지 설명해 주었어요. 설명을 듣고 귀가 솔깃해 아드라 센터를 방문하기 시작했죠.”
나자리가 매우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다는 걸 교사들은 알게 되었다. 시를 낭송할 때는 자신의 모국어인 이란어로 했다. “나자리가 좀 더 발전하려면 다른 언어와 과목들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사들이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통역의 도움으로 야신과 카림은 나자리가 더 좋은 교육을 받도록 도왔다.
나자리는 스포츠에도 참여하고 재봉 수업도 들었다. “저는 재봉이 재미있어요. 재봉사로서 좋은 기술들을 배우고 있어요.” 나자리는 희망에 찼고, 직업 훈련을 마친 뒤에는 재봉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게 아무도 없을 때 아드라의 직원들이 있었어요.”라고 나자리는 말했다. “제 일생의 벗들이지요.”
1년 후
1년이 지났다. 현재 나자리는 아드라에서 자원봉사자로 다른 난민들에게 재봉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지역 서점과 온라인으로 출판될 시집을 준비하는 중이기도 하다.
“나자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희망과 꿈을 갖게 되었어요.” 아드라 세르비아의 사무총장 이고르 미트로비츠가 말했다. “나자리처럼 우리는 난민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일하고 있어요. 센터에서는 그들의 쉼이 보장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재림교회 국제구호개발기구(Adventist Development and Relief Agency)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세계적인 인도주의 조직이다. 국제적 사업소 연결망을 통해 장기 발전 프로그램과 지역사회의 긴급한 필요를 채워 주며 130여 나라에서 활동한다. 다음 사이트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www.adra.org
키미-루 제임스 아드라 마케팅 개발홍보 담당자이다. 이고르 미트로비츠 아드라 세르비아 사무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