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오솔길
폭풍 속에서 즐기는 단잠
나는 비행기 여행을 좋아한다. 기쁨과 자유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움직임과 모험 그리고 발견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윌버 라이트는 이러한 기분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그 느낌은 모든 신경을 최대한 긴장시키는 흥분과 뒤섞인 완벽한 평안 중의 하나다.”1
2016년에 남편과 함께 여행했을 때다. 도쿄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해당 항공사의 중앙 컴퓨터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세계 곳곳의 비행기들의 발이 묶였다. 7시간 뒤에 이륙 허가를 받은 기장은 우리의 비행경로에 태풍이 불고 있다고 알렸다. 비행기는 남쪽으로 650킬로미터 정도 항로를 변경해야 했다. 조종사는 안전한 비행을 약속하면서도 “약간의 진동”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비행 시 느긋한 편이었지만 그때는 긴장이 되었다. “약간의 진동”에 대한 조종사의 해석과 나의 해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잠시 뒤에 알게 되었다. 날아가는 게 아니라 추락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6시간 동안 난기류에 흔들렸고 모든 진동이 고스란히 기내로 전달됐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1만 600미터 상공에서 태풍을 만나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안전과 평온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동안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것과 같은 격렬한 폭풍을 상상해 보았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성난 파도가 일었다. 나는 그 배가 괴물 같은 거친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선원들의 눈에서 두려움이 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배 위에 폭풍이 몰아치는데 갑판 아래에서 평화롭게 자는 한 남자를 보았다. 폭풍 속해서 즐기는 단잠! 바로 내가 원하는 바였다.
왜 두려워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마치 내게 말씀하시는 듯이 들렸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 4:40). ‘아직도’라는 말에는 진작에 그들이 믿음을 키울 수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을 충분히 믿고도 남을 만한 사건들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련이 닥치자 전능하신 분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자기가 어떻게 인도하고 돌보고 은혜를 베풀었는지 기억하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신다. 난기류 속에서 나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자보다 엔지니어, 조종사, 장비에 더 의존했다(히 1:3).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되새겼다. “만유의 주재!” 마침내 난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고난의 한가운데서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참 많지 않은가? 우리는 저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부딪히며 산다. 낙담과 절망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때때로 돈, 의약품 또는 우리가 만든 회생 계획을 굳게 믿는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싸우다가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기진맥진하기에 이른다.
가장 약한 그 순간에 사탄은 우리 마음에 불신과 의심을 심으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시는지, 기도를 들으시는지 우리는 의심하게 된다. 게네사렛 호수의 배에서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지키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살피시는 아버지를 시야에서 놓쳐 버린다.
하늘의 칭찬
성경에는 믿음의 영웅들, 그들이 인내하며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브라함, 야곱, 엘리야, 욥은 우리에게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가도록 영감을 불어넣는다. 마찬가지로 큰 시련을 극복한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훌륭한 간증을 들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뒤 노래한 것처럼, 그들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간증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할까?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을까?
믿음의 영웅들도 의심을 품고 약해진 적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자신을 의지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했고 야곱은 두려워했다. 엘리야는 도망쳤고 욥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시작이시며 완성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그분을 의지하도록 하셨다. 그분은 모든 시련에 대해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고전 10:13).
우리도 그렇게 믿고 의지할 수 있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단지 읽고 놀라워하라고 이런 일이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종들이 지녔던 똑같은 믿음을 우리도 지니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도 그분께서는 능력의 통로가 되는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 옛날과 똑같이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2
시련을 겪도록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준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길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견뎌 낼 줄로 믿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평화가 우리에게 온다. 고난 받고 있다는 것은 하늘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한다는 증거이다.
남편과 내가 2016년 경험했던 비행보다 이후에 더 힘든 시련들도 있었다. 그중 몇 가지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나에게 “평화로워 보여요.”라고 말했다.
항상 평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날도 있지만 내가 통제력을 잃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은 날도 있다. 자신을 믿다가 실패한 뒤에야 믿음을 찾고 예수님과 그분의 끊임없는 보살핌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난기류 속에서도 단잠을 이루었던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것은 모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순간에도 완벽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간증이다. 우리는 자신의 간증으로 상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시련이 지나간 이후만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말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알고 있으면 현재 시련을 당할 때 믿음이 생긴다.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자신의 믿음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께서 어떻게 내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말해 주면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알고 있는 것,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길을 정확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그분의 약속을 어떻게 시험해 보았고 그 약속의 확실성을 확인하게 되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알게 된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증언하라고 부르신다. 이 증거가 부족하여 세상이 멸망해 가고 있다.”3
시에라 브루노 벤처기업 재정 담당자이자 지역 교회 재무이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외곽에 살고 있다.
1 David McCullough,
2 <교육> 256
3 <시대의 소망>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