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꾸러미
노래하는 교회
그 마을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에는 그 기억이 다채로운 색깔로 선명하게 담겨 있다. 진회색 먼지, 누더기 옷, 가느다란 캐슈나무, 드문드문 자라난 풀 사이로 가시나무 덤불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었다.
두 남자아이가 버려진 철사, 빨간 고무밴드, 콜라 깡통으로 만든 경주용 자동차를 내게 팔려고 했다. 나는 흥정을 했다. 두 아이에게는 얼마가 되었든지 내가 줄 수 있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값이 정해졌고 나는 게리에게 그 지역 화폐를 빌려서 가격의 두 배를 지불했다. 미화로 2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게리에게 그 차를 보여 주자 어떻게 집으로 가져갈 거냐고 웃으며 물었다.
“글쎄.” 내가 대꾸했다.
“걱정 마세요.” 게리가 말했다. “내 가방에 넣었다가 다음 행선지로 떠날 때 건네줄게요.”
게리다웠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힘든 상황에서 나를 돕고 싶어 ‘물건을 날라 주는 사람’이 되기로 자처한 것이다.
***
4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먼지와 땀 범벅으로 모잠비크 덤불을 헤쳐 가며 하루를 시작했다. 게리는 우물을 팔 때 우리가 옆에 있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우리가 방문한 가장 가난한 곳 중 하나예요.” 게리가 마을을 소개했다. “길을 따라 1.6킬로미터쯤 내려가면 우물이 하나 있는데 주인이 물값을 너무 비싸게 불러서 주민 대부분은 매일 밤 목이 마른 채 잠자리에 들어요. 교회 근처에 물이 있을 만한 장소를 한 군데 찾아냈어요. 30미터 정도만 내려가도 될 것 같아요. 빨리 파고 싶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죠.”
게리의 아드라 동료들이 어젯밤에 끌고 온 드릴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독자들은 이 ‘드릴’을 픽업트럭 짐칸에서 싣고 다니는 기계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리의 드릴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주 동안 게리가 모잠비크 오지의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돌아다니면서 고안해 낸 장치였다. 실제로 드릴은 차량 세 대로 구성되었다. 굴착 장비를 설치한 몬스터 트럭 한 대, 물탱크와 발전기가 적재된 또 다른 몬스터 트럭 그리고 사륜구동 픽업이 하나 더 있었다. 우물을 파려면 세 차량 전부와 인부 4명이 필요했다.
“제 생각인데요.” 게리가 말했다. “여기에 교회가 새로 생길 때마다 샘을 파는 거예요. 생활에 필요한 물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둘 다 마을에 끌어오는 거죠. 그것도 교회 바로 옆에 우물을 파서요. 상상해 보세요. 마을 사람들이 값없이 물을 뜨러 와서 교인들이 생명수이신 예수님에 대해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이거야말로 최고의 전도죠.”
우물을 팔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게리가 찾아냈다. 교인들이 갈대와 야자나무 가지로 직접 지은 교회에서 20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은 들판에 일하러 갔거나 멀리 남아프리카 광산에 가 있었다. 그들은 노래로 인사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인사는 많은 노래로 이뤄진 것이었다. 큰 소리로 음조를 높이고 음을 서로 맞추어서 높였다가 먼 강기슭의 물총새처럼 뚝 떨어지는 소리였다.
게리는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머금고 웃으며 모두에게 교회 장의자에 앉도록 손짓했다. 흙바닥에 박아 놓은 Y 자 모양의 새총 위에 기다란 나뭇가지를 얹어 놓은 게 장의자였다.
“앉아 본 것 중 가장 불편한 교회 장의자였어요.” 게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게리는 우물을 파는 이유, 우물의 깊이, 펌프에 대해 그리고 낡은 타이어로 만든 간단한 고무 와셔를 수리하는 법을 설명했다. 왜 물을 주민에게 ‘무료로’ 공급해야 하는지도.
게리는 우리를 트럭으로 안내했고 많은 교우가 우물을 위해 기도했다. 길고 간절한 기도였다. 거의 하루 종일 우물을 팠다. 게리의 예상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다. 15미터를 팠지만 모래뿐이었다. 더 내려가자 돌이 조금 있었고 그다음은 더 많은 모래였다.
“곧 물이 나올 것 같은데요.” 게리가 미소를 지었다.
여자들 대부분은 각자의 일을 보러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왔다 갔다 했고 공사 팀이 파이프를 하나 더 넣거나 굴착 장치가 폭발음을 낼 때만 다시 돌아왔다.
36미터가 넘었지만 물기가 보이지 않았다. 54미터 이상을 파도 마찬가지였다. 드릴로 팔 수 있는 최대의 깊이였다.
게리는 눈물을 흘렸다.
***
자신이 직접 설계하여 개발한 굴착 장비 옆에서. 모잠비크의 먼지를 뚫고 물을 뿜어내는 우물 800여 곳을 파낸 그 장비 옆에서 말이다.
게리는 울고 있었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땀에 젖은 셔츠 위로 떨어졌다.
굴착기 모터가 꺼지자 여인들이 밝은 플라스틱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기대감에 부풀어 돌아왔다. 아프리카 열기 속에서 빨갛고 노랗고 파란 대형 엠앤엠즈 초콜릿이 춤을 추는 듯했다.
게리는 최고 깊이인 54미터까지 팠지만 모래뿐이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다.
모두가 울었다.
그때 수석장로가 우리에게 교회에 있는 교우들에게 가자고 몸짓을 했다. 우리는 몹시도 불편한 교회 좌석에 앉아 게리가 모든 것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슬픈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한 노부인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도 함께 참여했고 곧 땀에 젖은 성도들의 노래가 먼지 가득한 슬픔을 쫓아냈다. “예수님은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왕이시며 구세주이십니다.” 장로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다른 방법으로 우리 항아리에 물을 채워 주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