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부르셨다
빌 노트
나는 여섯 살도 안 되어 남은 무리에 관한 핵심 진리를 깨달았다.
글래디스 숙모는 ‘멀티태스킹(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그것을 몸소 보여 준 놀라운 여성 중 한 사람이다. 숙모는 한 가지 일만 한 적이 없었다. 길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나 복잡한 단어 게임을 하면서도 코바늘을 뜨고, 카펫 실을 꼬고, 꼬마들이 좋아하는 셔츠를 깁곤 했다. 숙모와 함께 보내는 오후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시간이었고 ‘자투리 원단 가게’에 방문하는 일도 거기 포함됐다.
숙모는 날염된 면직물과 화려한 원단의 조각들을 찾아다녔고 노련한 안목과 알뜰한 감각으로 차기 프로젝트를 구상해 냈다. 우리는 삼각형, 사각형 천 조각을 비닐 백에 가득 담아 돌아왔고 조각들은 또 하나의 퀼트나 짱짱한 수제 카펫으로 재탄생했다.
그 말의 뜻으로 보나 실물로 보나 ‘남은 조각’이란 다른 누군가의 선택으로 생긴 산물이다. 정해진 목적에 사용된 더 큰 조각의 자투리인 것이다. 붉은색 깅엄체크 원단이든 꽃무늬 옷감이든 스스로 ‘남은 조각’이 되기로 선택하는 경우는 없다. 자투리가 가치 있는 상품으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그것의 가능성을 엿본 예술가나 제작자가 있기 때문이다.
‘남은 무리’라는 미사여구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때 남은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배타적이고 자기 선택적인 주체 의식이 느껴질 때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마음속에 각인된 어린 시절의 깨달음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책임질 수 없는 만큼, 남은 자가 되는 선택도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예수를 따르라는 은혜로운 부르심이 있기에 그분의 남은 무리로서의 정체성과 목적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업과 다른 신앙 집단에서 버려진 자투리를 모아 혼자만이 알고 있는 형태로 결합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분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전 3:11) 하시고, 세상에서 거절당하고 박해받는 이들을 모아서 역사를 이루신다. 요한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셀 수 없는 무리는 다른 데서 괄시받고 업신여김 당한 자투리들의 모임이다. 말하자면 예술가의 기쁜 뜻에 따라 다시 창조된 형형색색의 퀼트 작품인 것이다. 그분이 부르셨기에 그분의 남은 무리가 된 것이다. 그분의 은혜는 지금도 우리를 다른 수백만 신자들과 한데 묶는다.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모두 그분의 계획 속에서 만족을 얻는 이들이다.
그러니 기뻐하라. 주님이 소중히 보시는 남은 무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 12:17)가 되도록 우리 모두는 은혜의 초청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