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는가
예수님에게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그분은 아신다
하나님의 교회가 드러내야 할 거의 모든 것이 시작부터 위태로워진 듯하다. 그러나 다가올 모든 일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
교회의 시작
서기 30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자기가 원하던 자들” 중에서 불러낸 열두 명에게 이것을 말씀하셨다. 그 무리에서 열두 명을 선별하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셨다(막 3:14~15). “승천하신 뒤 지상에서 자기를 대표할 교회를 조직하기 위해”1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첫 단계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지명받고 부름 받고 선택받은 제자 중 한 사람의 고백을 듣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하셨다.
예수님의 설문 조사에 제자들은 훌륭한 항목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그분을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 생각했다. 다 선지자들의 이름이다. 나쁜 항목[탐식자, 술고래, 인간 말종의 친구(마 11:19; 눅 15:1)]은 없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물으신다. 베드로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 그의 고백은 “[모든] 신자의 신앙의 기초이다.”2
오해받는 교회
실망스럽게도 베드로의 영적 통찰은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 주께서 머지않아 겪게 될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시자 그는 곧바로 반박한다(마 16:21). 베드로는 예수를 도와야 한다고 느꼈다. 사려 깊게, 그는 예수를 따로 불러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나무란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
베드로는 아주 직설적으로 사탄을 위한 말을 했고 예수는 대답하시면서 사탄을 직접 꾸짖는말씀을 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
방금 전의 고백은 훌륭했지만 곧 그가 예수를 만류하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묻는 질문에 답했던 제자들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를 선지자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의 영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 예수님이 정치적 스타로 부상하는 게 베드로의 최고 관심사다. 베드로의 권고와 친구들의 대답을 보면 딱하게도 영적 이해력이 부족하다. 이 땅의 교회를 이끌도록 예수께서 찾고 부르시고 선택하신 이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그랬다.
교회의 결말
여기서 ‘결말’이란 ‘목적’, ‘목표’와 동의어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목적과 운명은 인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사탄에게서 자녀들을 구출하기 위해 지옥문을 부술 때, 그 목적의 성취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흠 많은 인간들을 사용하셨다. 감사하게도 베드로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을 위해,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명확히 하셨다.
분리: 그분은 독특함을 구축하신다. 그러나 거만하거나 착취적인 차별이 아니다. ‘교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자체는 ‘분리’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영적 은사(고전 12:28)를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분의 몸 된 조직을 가리켜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에베소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소리 지른 광분한 군중에게도 그 말이 똑같이 사용됐다(행 19:32). 두 집단 모두 집으로부터, 거리로부터, 생각과 행동이 획일적인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무리다.
섞여야 하는 소금의 비유와 반대로, 하나님의 교회는 “나오라”(계 18:1~4)고 큰 소리로 외치는 천사의 은유를 시종일관 듣는다. 구원하는 진리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도록 어둠에서부터 나오라는 것이다(벧전 2:9; 요 8:32; 14:6). 아들들을 위한 어머니의 야망과 충돌하는(마 20:20~21), 친구들의 현세적인 초점과 충돌하는, 거룩함과 경건함을 향한 초점이 있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는 분이 세워 놓은 목표가 있다. 그분의 도덕적 빛 그리고 악을 조장하는 어둠 사이에는 어떤 연속성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와 불의 사이에는 어떤 끈끈한 관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후 6:14~15). 그리스도의 교회는 철저히 주변 세상과 구별되며, “택함을 받고”, “고귀하고”, “거룩하고”, “특별하다”(벧전 2:9; 출 19:6).
구원: 그분은 정치적인 명성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교회를 세운다.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요 18:36). 모든 이에게 구원을 제공하는(딛 2:11) 은혜는 곧 어마어마한 영광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계 1:7). 한편 교회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현재와 미래의 왕국에 대한 복음을 전한다(마 28:18~20). 그분이 찾고 부르고 선택했던 이들이 비겁하게 겟세마네에서 그분을 버렸던 슬픈 이야기와 달리,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기적이 생긴다(눅 13:29). 십자가의 밤에 수치스럽게 뿔뿔이 흩어졌던 일과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모든 시대를 통해 늘어나고 함께 모인 가족들(엡 1:5), 즉 그분에게 지금 속해 있고 영원히 서로에게 속해 있는 백성을 보셨다.
영원: 그분은 영원히 서 있을 교회를 세우신다. 그분의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영원히 설 것이다”(단 2:44). 열두 사도를 부르심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 시작되었다(눅 6:13).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전진한다(롬 8:14). 지옥문에 모인 무리가 자신들의 지도자 마귀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함께 일을 꾸미고 세운 모든 전략을, 전진하는 교회는 물리친다. 마귀보다 더 강하신 분이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마귀의 주장과 계책을 물리치시며 죄의 포로들을 끊임없이 해방하신다(눅 11:22; 요 8:36).
신뢰: 예수께서 열둘을 언급하셨다는 것은, 변치 않는 견고한 반석인 자기 위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부인한 제자와 반대로 그분은 자신의 성실함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우셨다. 바울이 증언했듯,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롬 8:35~39). 그분은 어떤 것에도 위협받지 않으신다. 변치 않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편에서 우리를 돌보신다(말 3:6).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연약하고 흠 많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교회는 인간들의 조직체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닌 신뢰성, 내구성, 보편성은 그분 자신의 신성한 특성이다. 분명 교회는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1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291
2 앞의 책, 412
레이얼 시저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발문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명확히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