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레바논 베이루트의 가난하고 밀집된 교외, 부르즈 하무드에 있는 조각상 옆에서 마침내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는 샤니파를 만났다. 중동대학교회에서 주는 식료품을 배달하는 참이었다. 예상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마른 데다가 근심 걱정으로 찌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망울은 기대감에 반짝였다. 우리를 만나 기쁜 모양이다. 세 학생과 나는 그녀를 따라 거리를 내려가 좁고 답답한 계단을 올라 아파트로 들어갔다. 안에는 남편이 코와 입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산송장 같았다.
우리는 식료품 가방들을 어수선한 거실 바닥에 놓고 편안하지만 낡은 가구에 앉았다. 샤니파는 의료비 청구서들을 꺼내어 남편에게 필요한 약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청구서들을 보여 주었다. 가끔 남편은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환자는 목욕용 가운을 둘러 온기를 유지했다. 샤니파는 분명 도움이 절실했고 무엇보다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절하고 상냥하게도 사탕과 과자를 건네 주었다.
학생들은 (샤니파 남편의 당뇨에 필요한) 인슐린을 이집트에서 구하면 좋겠다고 웅성거렸다. 거기서는 가격이 더 쌌다. 처음에 우리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기나 한 듯이 샤니파는 자신의 재정적 문제와 스트레스를 계속 이야기했다.
또 다른 방문
샤니파는 10분 거리에 있는 자기 딸의 집을 우리가 방문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딸에게 줄 만한 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지 그녀는 궁금해했다. 우리에게 있던 식료품은 이미 바닥이 났다. 딸에게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작은 딸아이가 있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샤니파의 가정을 위해 기도한 후 우리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차들이 바짝 붙어서 달리는 복잡한 거리를 따라 내려가 샤니파는 또 다른 어둡고 음산한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샤니파의 딸 루나의 무릎에 작은 아리안이 앉아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사지가 뒤틀린 장애인 딸에게 음식을 먹이려 애쓰고 있었다. ‘여기서 울면 안 돼!’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우리는 그저 작은 사랑과 후원을 전하려 왔다. 하지만 딸이 있는 아빠로서 감정을 참기 어려웠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인지 강렬하게 느꼈고 동시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압도됐다. 아리안은 아기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물으니 21살이란다. 그런데 기저귀를 차야 한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웃을 수는 있었다. 엄마는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 엄마는 참을성 있게 애정을 기울여 딸을 먹이려 애쓰는데 딸은 잇몸 감염 질환 때문에 먹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나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살펴보았다. 엄마는 아리안의 다른 아픈 곳도 보여 주려 했다. 나는 의료인이 아니라고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속이 상했다.
남편이 외국인이라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루나는 설명했다. 루나는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늘 함께하신다고 기도했고 가족에게 복이 있기를, 천사가 함께하기를 구했다.
더 극심한 가난
루나는 친구들을 방문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또 다른 방문을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더러운 계단을 향했다. 마침내 문에 도착하자 구부러진 이가 2개밖에 없는 늙은 어르신이 우리를 환영했다.
답답한 방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해 기침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공기가 희박했다. 남자의 아내는 심각하게 깡말랐고 몸져누워 있었다. 우리는 둘러앉았다. 남편이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놀랐다.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했지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예수님이 물 위에서 베드로를 구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다. 내 뒤의 벽에는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었다. 모두 아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방에는 단순한 의자 몇 개와 침대 두 개가 있었다. 아내는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맥에 스텐트를 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뇨도 있다. 정말 너무 말라 있었다. 남편 것으로 보이는 담배 뭉치가 그녀 옆 테이블에 놓여 있다. 남편이 보여 주는 아내의 발을 보니 발가락이 함께 짓눌려 뭉그러져 피부가 벗겨지고 염증으로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내가 다리 통증으로 잠을 못 잔다고 남편이 설명해 준다. 당뇨가 삶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
세 번째 방문이 끝났다. 우리는 또 한 번 더 기도를 드리고 복잡한 거리를 지나 돌아왔다. 우리가 주차한 차를 보고 화가 나서 투덜거리는 점포 주인에게 학생들이 사과했다. 결국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
학생 중 한 명이 돌아서서 물었다. “캠퍼스로 돌아가기 전 다른 곳에 들러도 될까요?” 우리 모두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돌아가기 전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쇼핑몰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면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방문 소감을 나누었다.
넘치는 필요
필요한 게 너무 많다. 우리가 본 가슴 아픈 사연 중에는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면 그러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무기력함을 느낀다. 우리가 한 일은 양동이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같았다. 식료품을 전하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대해 제자들이 꺼낸 말이 떠올랐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부르즈 하무드에 있는 세 아파트를 방문했다. 아마도 수백 개 아파트 건물이 이 교외에 있을 것이고 실제적이고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 수천 명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세 곳의 방문이라니?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편안하다. 그러나 죄가 인류에게 지운 값을 나는 오늘 대면했다. 수많은 필요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적다. 그리고 충분하지도 않다. 하지만 해야 한다.
변화를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는 느낀다. 단 한 사람의 삶이라 할지라도.
*기사에 소개된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조지 D. 잭슨 레바논 베이루트 중동대학 예술과학부 학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