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꾸러미
버트의 목소리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보디로 향하는 가느다란 회색 길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의 타호 호수 동쪽을 꼬불꼬불 지나간다. 해발 2,554미터에 있는 보디는 1859년에 떠돌이 광부들이 산쑥지대 아래에서 금을 발견하면서 형성된 거주지이다. 금이 발견된 소식을 광부들은 재빨리 전했고 잠시 동안이었지만 사막에는 교회 2곳과 술집 65곳 그리고 약 7,000명이 머무는 도시가 생겨났다.
오늘날의 보디는 ‘퇴락이 멈춘’ 건물들이 모여 있는 ‘유령 도시’이며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디는 길을 잃기 딱 좋은 곳이다. 여름이 되면 관광객 20만 명이 울퉁불퉁한 산쑥지대와 방울뱀 가족들을 지나 금방이라도 주인이 돌아올 것 같은 건물들을 보러 온다.
하지만 겨울에는 어마어마한 눈 아래 파묻힌 황량한 곳이며 권총을 휴대한 주립공원 경비원 2명만이 지키고 있다.
***
2월의 어느 흐린 날에 나는 그곳을 처음 찾아갔다. 겨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생물학 교수인 친구 돈 헴필의 말만 믿고 갔던 것이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딕, 보디에 한번 가 봐야 해. 정말 좋아하게 될 거야.” 돈의 아버지가 예전에 보디에서 화물 운송 회사를 운영했기에 나는 그 친구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은 보디의 겨울에 대해서는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차에 타고 있던 우리 넷은 성경학회를 끝내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면서 보디 근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위에 있었다. ‘보디 16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을 보고 버트와 나 그리고 우리의 아내 도나와 브렌다는 돈의 추천에 따라 유령 도시에 가 보기로 했다. 지도에는 보디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좁은 길이 있었다.
지도는 맞았지만 우리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8킬로미터 정도 지났을 때 눈길에 차가 미끄러졌다. 두꺼운 얼음을 돌파하다가 얼어붙은 개울 위에서 딱 멈춰 버렸다. 깎아지른 벼랑 밑으로 보디 도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이었다. 주도로까지 걸어서 돌아가다가는 온몸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았고 불길한 벼랑 너머 보디까지 가는 길도 8킬로미터나 남아 있었다.
컴컴한 구름이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기도했다.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아내들은 차에 있기로 했다. 시동이 꺼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브렌다는 스페인어를 연습했고 도나는 뜨개질을 했다. 히터를 틀어 놓은 차 안은 따뜻했다. 버트와 나는 오리털 재킷을 껴입고 등산화의 끈을 단단히 묶고 따뜻한 장갑을 끼고 전화기가 있는 캘리포니아 공원 경비원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브렌다와 도나가 차 안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곧 구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때가 일요일 아침 10시 40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후 3시가 되었다. 펑펑 쏟아져 무릎까지 차오른 눈 위에서 계속 뱅글뱅글 돌며 우리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앞의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 속을 우리는 아무런 성과 없이 천천히 걸었다. 발가락은 나무토막처럼 얼어 버렸다. 속눈썹은 커다란 고드름이 달려 서로 붙어 버렸다. 장갑도 재킷도 바지도 등산화도 보디의 눈보라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얼어서 죽어 가고 있었다.
***
“더 이상은 갈 수 없겠어.” 나는 중얼거리며 눈 위에 쓰러졌다. 버트도 그 말을 듣고 내 옆에 고꾸라졌다. 우리는 아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동안 선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서로 악수를 했고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 갔다.”
동사는 고통 없이 죽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겨울도 부활의 약속도 잊지 않고 계셨다.
“딕! 일어나!” 버트가 내 귀에 소리쳤다.
퍼붓는 눈 속에서 나는 버트의 놀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앉았다.
“나를 깨워 줘서 고마워.” 버트가 말했다.
“난 아닌데.” 내가 말했다. “네가 일어나라고 소리쳐 나를 깨웠잖아!”
“아니야. 네가 나한테 일어나라고 소리쳤지.”
“아니라니까, 네가 그랬잖아!”
“아니라고. 네가 그랬다고!”
우리는 입씨름을 멈추고 경외감에 빠졌다. 눈 내리는 고요 속에 앉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둘을 동시에 깨우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 것 같았다. 버트의 목소리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다.
버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의 목소리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감사 기도를 드렸고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몰아치는 눈보라 가운데서 나란히 일어섰다. “아멘!”을 외친 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천사들의 엄호 가운데 비틀걸음으로 보디의 황량한 도로로 들어섰다.
보디에 있는 카페 안을 들여다보니 150년 된 난로와 신문 그리고 등유 캔이 하나 있었다. 유리창을 깨고 우리는 난로에 불을 피울 수 있었다.
***
20분쯤 지나 발이 녹기 시작할 때 젊은 경비원이 나타나 우리를 본부로 데려갔다.
“경비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가 웅얼거렸다. “창문을 깼으니, 어르신이 노발대발하시겠네요!”
경비대장이 황급히 나타났다. 격분한 그의 얼굴은 캘리포니아 법의 모든 위력을 우리에게 쏟아부을 기세였다. 우리는 최대한 히터 가까운 바닥에 앉아 벌을 받을 각오를 했다.
“주정부의 재산인 창문을 깨는 것이 중범죄라는 사실을 몰랐나요? 도대체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보디는 겨울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몰랐나요?”
“지금 막 알았어요.” 나는 인정했다. “우리 친구 돈 헴필이 보디에 꼭 가 봐야 한다고 말해서 와 봤죠. 겨울이라는 계절 생각을 못했네요.”
그 어르신은 화를 풀고 우리 옆 바닥에 앉았다.
“돈 헴필을 알아요?” 어르신이 큰 소리로 물었다. “절친한 저의 친구인데, 아세요?”
경비대장은 우리의 친구 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며 깨진 유리창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마침내 그분이 깊은 숨을 내쉬었고 우리는 길 아래 차 안에서 아내들이 뜨개질을 하고 스페인어를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를 몇 번 걸고 나서 그는 견인차를 현장으로 보냈고 아내들이 머물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버트와 나는 유령 도시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어르신의 거대한 눈 기계를 타고 언덕을 내려갈 수 있었다.
“당신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도 하나님은 도와주시나 봐요!” 어르신이 말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우리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거의 밤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침이 되어 아내를 만났을 때도 길고 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마 5:3, 메시지신약).
딕 더크슨 목사이자 이야기꾼이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산다. 사람들에게 ‘은혜의 배달꾼’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