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앤디, 고마워요
청중은 넋을 잃었다. 숨이 멎을 듯한 감동으로 앞에서 공연하는 음악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아니스트와 가수가 음악에 영혼을 쏟아부었고 감미로운 하모니가 흘러나왔다. 관심 어린 청중이 모여 있는 흔한 공연장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이었다.
나와 내 남자 친구는 이 집 주인 앤디로부터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초청받았다. 그날 밤의 가수는 TV와 연주회에서 여러 번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앤디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대로 참석한 것이다.
나이와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소박한 거실에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가운데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연주자들이 노래에 담긴 사연을 들려줄 때 우리는 함께 웃고 또 함께 안타까워했다. 연주자가 학교 폭력을 반대하는 뜻으로 지은 노래, 그의 조카가 사람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영감 받아 쓴 노래들이었다. 잘 아는 노래는 음정이 안 맞아도 즐겁게 함께 불렀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날 저녁 공연을 즐기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나중에 남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날 밤의 경험은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아름다운 무언가에 마음을 모으는 모습 말이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가 된다.
“그런데 애당초 그 공연에 가게 된 이유가 뭐였더라?” 공연과 교회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자 친구가 물었다. 가수를 알아서 그 공연에 간 것은 아니라 앤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앤디를 알고 있었기에 공연을 보고 감동할 기회도 생긴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친분을 맺고 교회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유아 모임에서 친구를 사귀었다가 안식일학교나 뒤죽박죽 교회(Messy Church)에 참석하기 시작한 젊은 부모도 알고 있다. 재림교인인 이웃과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수다를 떨다가 재림교인이 된 가족도 있다. 음악 학교가 열린 교회에 부모를 데려온 십 대 학생도 있고,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예수님을 알고 있는 친구와 그저 함께 생활하다가 기독교에 관심이 생긴 성인들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나다나엘과 빌립 이야기가 생각났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했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야.” 그러자 나다나엘이 소리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단 말이야?”
그때 빌립이 미소 짓는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와서 직접 보라고”(요 1:45~46). 나다나엘은 빌립을 알고 지냈기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와 거실 음악회에서 겪은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 사랑, 생명을 직접 지으신 창조주께 나도 다른 사람을 데려가고 싶어.’
올해,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리넷 올콕 서던 재림교회 대학을 졸업했고 영국 왓포드에 살고 있다. 애드벤티스트 라디오 런던의 PD이자 진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