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난민
그리스도인으로 다가가기
“제발 우리가 집단 학살의 희생자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여기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그리스 올림푸스산 저지대 근처의 페트라 올림푸스 난민촌에서 야지디 부족의 무니르 족장이 지역 관계자들에게 간절한 도움을 요청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부터 난민촌으로 사용하던 곳은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인 허름한 천막들뿐이었다. 산꼭대기에는 이미 눈이 쌓였다.
어린이 500여 명을 포함하여 약 1,200명이 독일에서 가족들과 합류할 방법을 찾기 위해 8개월을 기다려 왔다.
“우리 부족은 70차례 이상의 집단 학살을 겪었습니다. 작년에는 이라크에서 한 차례 겪었지요. 너무 끔찍했어요. 바다로 건너는 것만큼 끔찍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무니르 족장이 말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치적·군사적 불안정과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뭄과 기근으로 2015~16년에 15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안전한 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두고 와야 했다.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던 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제 난민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동정심에서,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이 위협이 되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말이다.
실제 숫자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따르면 박해, 갈등, 폭력이나 인권 침해로 고향을 등진 사람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급격하게 늘었다.1 2017년에는 전 세계에서 6,850만 명이 고향을 떠났는데 이는 프랑스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이들 중 2,540만 명이 난민이며, 절반 이상이 18세 이하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00만 명은 본국을 떠나지 않았지만 계속 떠돌아야 하는 국내 실향민이다.
전체 난민의 절반 이상이 3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시리아 630만 명, 아프가니스탄 260만 명, 남수단 240만 명 등이다.
난민 85퍼센트는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며 터키에는 가장 많은 수인 350만 명이 살고 있다. 총인구 대비 난민 수로 볼 때 난민에게 가장 관대한 나라는 레바논이다. 인구 600만 명인 나라에서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터키를 제외하고 인구 총 7억 4,100만 명에 이르는 유럽 연합 국가들에는 난민 240만이 머물고 있다.
종교 박해
UN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민족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2를 말한다.
고향을 떠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종교 박해이다. 그럼에도 종교는 난민 발생의 원인이라기보다 난민 수용 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제시될 때가 많다.
대부분의 난민은 무력 충돌 때문에 강제로 집을 떠난다. 그런데 이러한 충돌은 종종 종교적인 이유나 양심의 자유로 문제가 불거진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및 최근 미얀마의 로힝야족 사태에 나타난 충돌은 종교적인 원인이 그 뿌리이다.
앞서 언급한 야지디 부족의 예도 만찬가지다. 수 세기 동안 그들은 종교적 원칙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유럽이 위협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난민들의 종교를 박해의 원인이 아니라 전통적인 유대-기독교 기반의 위협 요소로 보는 이가 많았다. 낯선 종교, 문화, 풍습의 침투를 그들은 두려워한다. 일부 난민의 종교 생활 양식이 실제로 현지 국가의 전통, 관습과 충돌하고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중재자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명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자국에 난민이 찾아올 때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발휘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다른 신념을 표방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의 신념을 용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적 지원을 거의 혹은 전혀 받지 못하는 소수 집단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연대 의식을 지녀야 한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 31:8).
난민을 수용하는 지역 사회는 현지 언어와 문화 습득을 장려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효과적인 통합으로 평화와 관용이 촉진되고 노동 시장의 접근도 가능해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을 때 주어진 명령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현재 유럽은 관용, 결속,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 줄 특별한 기회를 맞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과 평화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존중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할 또 다른 책임이 있다.
다행히 무니르 족장과 부족은 올림푸스산 아래에서 겨울을 보내지 않았다. 아드라, 국제연합, 정부가 협력하여 비수기에 공실률이 높은 그리스 호텔에 난민들을 재배치했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망명 신청을 받아들여 마침내 독일에 있는 가족들과 합류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평화와 안전을 얻게 되었다.
다행히 유럽은 기독교 정신에 부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베오그라드 난민을 위한 아드라 활동 영상을 다음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adra.org.rs/?lang=en
1www.unhcr.org/figures-at-a-glace.html
21951년 유엔난민조약, www.refugeelegalaidinformation.org/1951-convention
주앙 마르팅스 아드라 유럽 사무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