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꾸러미
앤더슨 목사님의 오렌지
딕 더크슨
이 이야기는 1895년 미국 배틀크리크 대학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해리 앤더슨은 배틀크리크에서 선생님이나 설교자 또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선교 사역의 꿈을 함께 나누는 우수한 젊은 여성 노라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둘 다 큰 농장에서 성장했다.
두 사람의 예상보다 기회는 더 빨리 왔다. 졸업하기 10주 전, 대총회에서는 해리와 노라에게 “즉시” 아프리카로 가서 솔루시 학교에서 일하라고 했다. 솔루시는 오늘날의 짐바브웨에 해당하는 나라인 로데시아에 있었다.
졸업 후에 떠나도 되는지 교회 지도자들에게 허락을 구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학교에 농장이 있을 거예요. 농장을 시작하려면 당신들이 거기 있어야 합니다.” 선교부장은 단호했다.
어느 추운 3월의 아침, 둘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둘은 솔루시에서 다른 선교사 가족들과 합류하여 교실을 짓고, 땅을 마련하고, 농작물을 심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기후에 고된 노동이었다. 다른 선교사 가족들이 병이 나서 학교를 떠나야 했을 때, 대총회에서는 새로운 가족들을 보냈다. 그런데 새로 온 가족들도 말라리아와 풍토병에 걸려 곧 돌아가게 되었다. 얼마 안 가 학교 공동묘지에는 희생당한 선교사 가족들의 묘비가 여럿 세워졌다.
***
8년 후, 솔루시에 열성적인 학생들이 가득 차게 되자, 앤더슨 가족은 북로데시아(오늘날의 잠비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도록 요청받았다. 해리 앤더슨은 완벽한 땅을 찾아 북쪽으로 걸으며 4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거대 인구 밀집 지역 근처여야 해. 깨끗하고 맑은 자분정(自噴井)이 있어야겠고 오렌지, 밀, 기타 작물들이 잘 자라는 비옥한 토양을 지닌 평탄한 토지면 좋겠어. 그리고 철도도 가까워야 해.” 앤더슨은 중얼거렸다.
땅을 찾아 오랜 시간 헤맸고 마침내 루산구라는 곳에서 바통가 부족의 추장 몬제와 협상하여 부지 5,000에이커(612만 평)를 구했다. 1년 뒤 해리 앤더슨, 아내 노라, 어린 딸 나오미는 소 16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이동하여 루산구 샘물 옆에서 야영을 시작했다.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샘이야.” 앤더슨이 가족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가족은 그날 밤 천막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앤더슨이 천막 덮개를 열자 키 큰 아프리카 청년이 나무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앤더슨의 모국어는 영어였고 솔루시에서 센테발레어를 배웠다. 그런데 그 남자 청년은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센테발레어도 몇 단어만 알고 있었다. 치통가가 모국어였던 것이다. 그는 앤더슨에게 손짓 발짓으로 애를 쓰며 의사를 전달하고자 했다.
“선생님이시죠?”
“그래요.”
“그럼 저를 가르쳐 주세요. 저는 학교를 찾아서 왔어요.”
앤더슨은 집과 교실을 지어야 하고 오렌지 나무를 심을 땅도 경작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그 남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저를 가르쳐 주세요.”라는 말만 계속했다.
다음 날 아침, 더 많은 사람이 우물 곁에 서서 가르쳐 달라고 선생에게 요청했다. 지금 말이다.
앤더슨 부인이 문제를 해결했다.
“해리.”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오지 않았나요?”
그날 앤더슨 선생은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숲으로 가서 학교 건물, 테이블, 침대 그리고 책상이 될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2년 뒤 루산구의 교실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농장에는 곡식이 익어 가고 작은 오렌지 나무 동산에 첫 열매가 열리고 있었다.
성경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오후, 앤더슨 선생은 오렌지 동산 근처에서 낯선 사람 10명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앤더슨은 치통가어와 센테발레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고 영어를 조금만 사용하고도 대화를 수월하게 이어 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 오렌지를 주세요.” 그 사람들이 요청했다.
“여러분 각자에게 오렌지를 하나씩 줄 수는 없어요.” 앤더슨이 말했다. “올해 수확한 오렌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내일 오후 우리 집에 오시면 오렌지보다 더 좋은 것을 드릴게요.”
***
다음 날 오후, 10명 모두가 오렌지 동산 옆에서 원예가 앤더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앤더슨 선생은 자신의 가방에서 오렌지 한 개와 주머니칼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오렌지 껍질을 벗기고 각자 한 조각씩 맛보도록 나눠 주었다.
그들은 한 방울까지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먹었다.
오렌지를 다 먹고 나자 앤더슨은 그들을 집으로 데려와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다. “이것은 오렌지보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들의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오렌지 나무를 받았다. 동산에 심기 딱 좋은 크기였다.
“이것은 오렌지 나무입니다.” 앤더슨이 오렌지 나무를 건넸다. “동산 어디에다 심으면 좋을지 보여 줄게요. 여러분이 나무를 심도록 도와주고 어떻게 돌봐야 할지 가르쳐 주겠습니다. 제 지시를 따라 매일 잘 돌보면, 내년에는 적어도 오렌지 한 개는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이 대단한 선물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앤더슨을 따라 동산으로 갔고 조심스럽게 그의 지시를 따라 땅을 고르고 비료를 주고 작은 나무에 물을 주었다.
“물을 매일 줘야 해요.” 앤더슨이 일렀다. “절대로 빼먹으면 안 돼요. 사랑 어린 보살핌을 받아야 무럭무럭 자라나요.”
그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각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루산구로 데려와 오렌지 나무를 보게 하고 완벽하게 돌봤다. 매일 와서 나무를 돌보며 하나님에 대해 배웠다.
나는 어느 날, 해리 앤더슨이 살던 집 앞의 시원한 그늘 아래 라이프 무카타와 함께 서 있었다. 그는 남잠비아연합회의 교육부장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재림교회 대학 중 하나인 루산구 재림교회 대학의 운영위원이었다.
“저의 할아버지가 바로 그 10명 중 한 명이었답니다.” 무타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분이 예수님을 만났던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신선한 오렌지는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랍니다.”
발문
“물을 매일 줘야 해요. 절대로 빼먹으면 안 돼요. 사랑 어린 보살핌을 받아야 무럭무럭 자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