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수업 시간은 우리 삶의 광경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거창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문화에서 흔히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역사’란 부족·민족·국가의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인물들이 중요한 순간에 말하거나 이루어 놓은 위대한(또는 무서운) 사건들의 서술이다. 우리가 배운 대로 그 스토리 라인은 4천년 넘게 위대한 군사 영웅, 막강한 군주, 웅변적인 정치가들이 남긴 점들을 이어 놓은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국회의원의 유명한 연설에 관한 속보에 이르기까지 ‘역사 만들기’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작업이다. 재산, 혈통, 교육 여건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역사의 이와 같은 ‘위인’ 이론은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낮추어 버린다. 우리가 한 번도 밟아 볼 수 없는 무대에서 중요한 말이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벌여 놓는 것이 기록할 만한 역사라면, 세상을 변화시킬 우리의 책임은 어쨌든 줄어드는 것이다. 굶주림은 정치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평화는 주요 도시를 들락날락하는 능숙한 외교관들의 책임이며 인간 평등은 회의실에서 입법자들이 가까스로 개혁안을 승인했을 때나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몸소 살아가신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비천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신자들이 역사의 티핑 포인트를 장식하고 있다. 결코 헤드라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인물들이 이루어 놓은, 변화와 충격이라는 복음적 실체가 철학자·왕·정치가의 이야기 곁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만물을 심판하시는 분께서 냉수 한 그릇과 빵 한 덩이를 눈여겨보고 가치 있게 여기신다면, 위대하신 분의 이름으로 행해진 친절한 행위 또한 그 어떤 승리나 연설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
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전쟁터와 의회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잊고 친절을 베풀어 타인 한 사람이 변화되는 순간,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순간, 자괴감에 빠진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격려하는 순간, 이런 순간을 하늘에서는 세계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여긴다.
이번 달 <애드벤티스트 월드>에서는 “이 땅에 거하면서” 왕국을 위해 변화를 이루어 내는 재림교인들의 짧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무도 권력이나 영향력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기사를 읽으며 우리 역시 다가올 예수님의 왕국에서는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타인을 복되게 하고 붙들어 주고 떠받들 수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영향력과 기회를 모두 제공하신다.
역사 만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