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믿음
새 노래로 찬양하라!
회중 찬양으로 진리를 전하다
만약 당신이 중세 시대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사제나 전문적인 남성 합창단원이 아니고서는 교회에서 찬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악기의 연주도 금지되었을 것이다. 중세 그리스도교는 예배 의식에서 악기의 사용을 수 세기 동안 피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큰 소리 나는 제금,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뿐 아니라(시 150편 참조)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1~2)라고 반복적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데 왜 이런 요소들이 그리스도인 예배에서 금지되어야 했던 것일까?
라오디게아 공의회(서기 363~364) 기간에 교부들은 회중 찬양, 악기 사용, 세속 음악 곡조의 차용을 금지했다. 위험천만하게도 예배는 성경적 예배의 모델로부터 전통과 교회의 권위에 기초한 모델로 급속히 옮겨 갔다.
기독교 음악에 표현된 기독교 신학
중세기 동안 회중 찬양을 금지한 배경에는 교인들을 위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중재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믿은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이 일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인들을 위해서 노래도 불렀다. 합창대가 노래하는 동안 회중의 목소리는 침묵을 지켰을 뿐 아니라 사람들은 공중 기도, 성경 봉독, 교회의 의사 결정에서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그 뒤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회중 찬양을 대중화하고 오직 예수(soli Jesu),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기독교 신학과 음악의 중심으로 삼는 신학적 개혁을 이끌었다. 루터는 성경적 예배의 정신으로 찬양을 드리는 권리를 회중에게 돌려주었고, 그런 예배에서 우리 모두는 영과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고전 14:15), 예배의 일부분으로 악기를 사용하는 일(시 149~150편), 영과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하나로 엮어 드리는 온전한 예배(시 103~104, 150편)로 초청을 받은 것이다.
새 노래로 찬양하라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찬미하는 것은 예배의 한 표현이다. 그렇게 찬미는 하나님께 봉헌된다. 노래로 예배에 참여하면서 우리도 서로 연결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된다.
성경은 새 노래를 부르라고 우리를 거듭 초청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찬미가 중에는 당시에 새로운 노래였을 뿐 아니라 혁명적이었던 곡이 많다. 폴 하멜은 자신의 책 <엘렌 화잇과 음악(Ellen White an Music)>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최초의 재림교회 찬미가가 출판된 1849년부터 ‘주님께 찬양(Christ in Song)’이 선을 보인 1900년에 이르기까지 찬양집 23권을 출판했다는 사실에서 19세기 재림 성도들의 삶에 교회 음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1
150여 년 전,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음악과 예배에 관련하여 교회를 위한 혁신적인 비전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찬미를 창작하고 편집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거의 2년마다 새 노래집을 출판하였다. 18~19세기에 개신교 찬송(protestant hymns)이라고도 불렸던 이러한 루터교회 합창곡(Lutheran Chorales)은 영적 부흥의 생생한 표출이었다. 이런 힘 있는 찬송가들 중에는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 세대가 부르기에도 여전히 적합한 곡이 많다. 하지만 어떤 곡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이 되었다. 성경에서 ‘오래된 노래 부르기를 계속 고수하라’는 초청은 절대 찾을 수 없다. 시편 기자는 정반대로 기록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시 96:1).
그렇다면 우리 예배가 회중에게 더 의미 있고 적절한 예배가 되도록 도와줄 찬양 목록에 새 노래들을 어떻게 잘 융화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매끄럽게 해 줄 몇 가지 좋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찬양 목록에 오래된 곡과 새 노래를 섞어 넣으라.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나오는 바울의 공식이 참 효과적이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참조 엡 5:19). 음악 형식을 다양하게 하면 좋다. 각 교회에는 세대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므로 곡을 선정할 때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힘찬 찬미가와 시대에 맞는 찬양을 포함하여 다양화된 찬양 목록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음이 입증되었다.
한 번에 한 곡씩 가르치라. 대다수 사람이 알지 못하는 노래를 예배 팀이 계속 부르면 회중은 찬양에서 ‘소외’된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보통 매달 새 찬미 한두 곡을 소개하는 게 적절하다. 새로운 노래를 한 곡 가르칠 때 처음에는 회중이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화음이나 악기 연주도 하지 말고 멜로디만 불러 보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경청하라. 회중 찬양은 모든 사람이 부르도록 의도된 예배의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반응으로 함께 모이고 찬양한다. 온 마음과 온 존재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담아 찬양할 때 우리는 개인적으로 새로워지고 공동체는 결속된다. 회중 대다수가 함께 찬양해야 한다. 사람들이 찬양을 부르지 않는다면 그 이유와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 회중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경청하라. 교인들에게 지지받는 느낌과 확신을 심어 주려면 진정 어린 대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1년에 한 번 정도 설문 조사를 하는 것도 회중의 제안과 견해에 주의를 기울이는 좋은 방법이다.
예수님을 메시지의 중심에 세우라. “노래는 마음에 영적인 진리를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2라고 엘렌 화잇은 진술했다. 기독교의 찬양은 진리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강력한 도구이다. 하나님의 기별이 예수 안에 자리 잡게 하자. 예수는 과거에도 예배의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기독교 예배의 중심일 것이다. 노래로 교리를 가르치는 동안에도 예수께서 중심 되심을 결코 놓치지 말자.
진보를 계속하라
릴리안 두캉은 “종교적 경험이 새로워지거나 종교 신념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면 표현의 방식도 새로워진다.”3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음악은 계속해서 진보하는 언어이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는 끊임없는 갱신이 따른다. 그것은 또한 창조적이고 탐구적인 태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변화의 통로가 되는 책임감도 수반한다.
우리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 되어 찬양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함께 그분을 예배하는 참된 길을 계속 추구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다.
1 Paul Hamel,
2 Ellen G. White,
3 Lilianne Doukhan,
아드리아나 페레라 미국 미시간주 베리언 스프링스에 있는 앤드루스대학교 음악 이론 및 작곡 교수이며 음악학과장이다.
발문
기독교의 찬양은 진리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강력한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