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그들의 입장에서 지낸 한 시간
자기 보호와 타인을 위한 봉사의 경계는 어디일까?
몇 해 전에 나는 ‘정의를 위한 목소리’라는 행사에 참석했다. 그 행사는 세계의 빈곤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과 대화하는 기독교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간이 지나고 그 행사에 대한 기억도 잊혀져 갔지만 한 가지 기억은 뚜렷하게 남았다. 이른바 ‘모의 활동’이다.
참가자 수백 명이 ‘패밀리’라고 불리는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우리는 직접 잡은 ‘생선’을 지역 ‘시장’에서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 역할을 맡았다. 저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매일 충분한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가능하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사람들로 설정됐다.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패밀리’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혼돈 상태였다. 경쟁심이 생겼다. 다른 참석자들과 겨루어 우리 가족이 굶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매일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경주가 시작되었다. 주최 측이 강에서 점점 물고기를 제거하자 물고기가 사라졌고 위기에 빠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낚시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활동이 계속되자 우리는 단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돈만 벌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교육시켜야겠다는 목표와 집 마련에 대한 생각들은 사라졌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매일 굶지 않고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버는 것이 되어 버렸다.
주최 측이 활동 종료를 선언할 무렵, 나는 어린 물고기까지 무조건 잡는 상태가 되었고 우리 가족은 안전한 피난처가 없어 태풍에 아이를 잃은 상태였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뮬레이션 활동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다른 사람을 거의 돌보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전 세계 가족 수천수만 명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겪은 한 시간 동안의 시뮬레이션 활동은 그들에게는 삶의 현실이며 그들은 내 경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먹고살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배불리 먹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는 집의 편안한 침대에서 잤다. 다음 끼니를 위해, 교육을 받기 위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를 온몸으로 배웠고 감사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가 느끼고 경험했듯 다른 이들도 자신이 소유한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신을 돌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도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들이 옆집에 사는 이웃이든 세상의 반대편에 사는 이웃이든.
이 죄악 세계 어디에나 가난과 불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낙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적극적으로 정의를 이루고 불우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이것이 개별적으로 하기에는 벅찬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일한다면 우리의 개별적인 노력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자. 지역 사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자. 여러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도주의 단체에 기부하라.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조화롭고 사랑스러우며 정의로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