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여행 중의 기쁨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기쁨이 있을까?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찬미에는 다음과 같은 소중한 구절이 있다. “큰 풍파로 무섭고 두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시절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그 가사를 읊을 때 드는 감정은 사계절처럼 변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동행한다는 게 어떤 상황에서든 그분의 평안과 임재를 경험케 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진정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 세계 독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희망을 견고히 할 새로운 이유와 관점을 찾기를 바란다. -편집실
불길을 뚫고
2018년 11월 8일 목요일에 우리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른 아침의 태양 빛이 심상치 않아 밖으로 나가 살펴보았다. 구름처럼 넘실거리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화염이 우리 집과 재산을 포함해 캘리포니아 패러다이스 마을 대부분을 삼켜 버릴 것처럼 보였다. 불길을 피해 14년간 우리의 터전이 되었던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는 말씀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이상할 만큼 마음은 평안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결정적 사건 후에 겪는 스트레스 장애로 고생했다. 상실과 강제적인 변화로 인한 슬픔의 단계도 거쳤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과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다. 화재 발생 사흘 뒤 “내가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일러 주신 이사야 42장 16절 말씀으로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들 가족이 살고 있는 집 근처의 새 집과 새로운 친구들과 새롭고도 다른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고백한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기로 했다. 그와 더불어 자족이란 선택임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분의 임재는 그 어떤 불보다 강하다.
벤과 메리 맥슨 캘리포니주 패러다이스에서 2017년에 재림교회 목회자로 은퇴했다.
예측 그 너머
‘기쁨’이라는 짤막한 말에는 풍성한 경험이 담겨 있다. 기쁨은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기쁨으로 우리의 내면은 반짝이기 시작하고 일상과 미래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밝아 온다.
마음이 기쁘면 어두운 구름 대신 축복의 단비로 눈길이 향한다. 힘든 일이 끝난 뒤의 고단함을 성실한 노고에 따르는 상장처럼 소중히 여기며 달콤한 휴식을 기대한다. 언어치료를 받는 어린 환자들이 처음으로 힘겹게 내뱉는 말소리에서 나는 일하는 기쁨을 느낀다. 마음이 기쁘면 아들이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는 일보다 우리 가족이 다시 재회할 날을 바라보게 된다.
기쁨이란 소망의 하나님께서만이 성령의 능력으로 주실 수 있는 선물이다(롬 15:13). 개인 기도를 드린 뒤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불안한 세상임에도 만물이 그분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이다.
무엇보다도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을 떠올릴 때 기쁨이 찾아온다(히 10:37). 머지않아 하나님의 팔에 영원히 안기우리라는 확신에서 기쁨이 생긴다.
아나 제믈레두크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 오베라에 거주하며 언어치료사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이다.
기쁨이라는 기본 선율
고통은 기쁘지 않다. 괴로움은 기쁘지 않다. 역경은 기쁘지 않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기쁨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문제는 ‘항상’이라는 단어이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몸이나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데도 기뻐할 수 있을까?
기쁨은 깨지기 쉽고 금세 사라지고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고통이나 슬픔이 기쁨과 충돌하면 기쁨은 종종 가루가 된다. 그러나 진짜 일어나는 일은 고통은 우리의 미묘한 기쁨의 대체물을 모두 없앤다는 것이다.
삶의 환경의 무서운 맹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더 큰 기쁨이 있어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기도 마지막에 기쁨의 신비로움을 멋지게 표현한다. 삶의 환경이 극도로 암울하고 어두울지라도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너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면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기 바로 직전에 이 하박국 선지자의 글을 매일 묵상하지 않았을까?
나의 삶에는 기쁨이라는 기본 선율이 흐른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고통 중에도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있고, 그분이 내게 주신 모든 좋은 선물에 대한 기쁨이 있다. 내 경험상 기쁨과 감사는 서로 닮은 덕목이다. 오늘도 나는 감사해야 할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기쁨을 기대하며 지내면 감사와 기쁨이 생기게 하는 일, 상황, 사람들을 문득문득 만나게 된다. 기쁨은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자세이며 고난을 더 잘 견디게 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요한 프랑크는 이를 올바로 이해했다. 유명한 합창곡 ‘예수 나의 기쁨’은 기독교인의 여러 긴장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기쁨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마음에 들어오셔서 모든 “슬픈 생각”을 없애 주실 때,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슬픔의 생각들은 더 이상 우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고통을 겪는 중에도 기쁨이 있는 것이다.
마르틴 프로에브스틀 오스트리아 보겐호펜 신학대학의 신학과장이다.
하나님은 나의 힘
19년을 함께해 온 남편이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에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남편의 죽음은 16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다음으로 내게 가장 슬픈 일이었다. 남편은 아픈지 일주일 만에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독감인 줄 알았지만,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서 오진임을 알았다.
남편이 응급실에 있는 동안 의사들은 여러 검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진정제를 투여했고 나는 차마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마침내 주치의가 말했다. “바이러스성 염증으로 인한 뇌수막염입니다.” 신장 및 다른 장기들이 이미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므로 16살 된 세쌍둥이와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 슬프게도 병원에 온 다음 날, 남편은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시련을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갈까? 이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지? 내가 버는 돈으로 세 아이를 교육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이셨다. 나는 그분의 수많은 약속에 매달렸다. 그리고 한 가지를 간구했다. 그분께서 내게 곧바로 평안을 허락하셨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그런 평안을 주셨다.
남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이었고 그가 그런 하나님 안에서 눈을 감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자고 서로 약속했고, 나는 지금도 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힘의 원천은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그분,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신 그분을 나는 전적으로 신뢰한다.
세쌍둥이는 이제 21세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힘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칼린 피셔 금융계에서 13년 동안 재무 분석가로 일했다. 현재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의 운영 관리자이다.
하나님의 확성기
아쉽게도 이것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속한 문제 해결책을 찾고 있다면, 그런 방법은 없다. 보는 것은 그만하고 실제로 변화를 위한 일들을 찾고 싶은가? 그렇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나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수시로 대화했고, 무엇보다 나는 규칙적으로 교회에 다녔다. 내가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나는 뭔가 놓치고 있음을 알았지만 평범한 일상에 싫증이 난 나머지 거기에 많은 관심을 쏟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결혼 생활에 금이 갔다. 서둘러 내 삶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그 과정에서 C. S. 루이스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즐거움에 속삭이시고, 양심에 말씀하시며, 우리의 고통에 소리치신다. 고통은 귀가 먼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 관심 안에 계신다. 나는 스리랑카를 떠나 인도에 있는 집으로 갔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내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셜 미디어를 잠시 내려놓고 엄마와 함께 망고 나무에 오르거나 아빠와 아침에 산책하고, 사촌들과 나무 열매를 따고, 야외에서 내 발밑에 있는 충견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내가 잘못 기도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께 쉬운 출구를 달라고, 망가진 것을 기적적으로 고쳐 달라고 이기적으로 떼쓰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었지만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내게 그분을 끊임없이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친한 친구가 뇌종양으로 죽었고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해가 생겨 친한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고 12년간의 결혼 생활도 끝났다.
남은 것은 여행 가방 2개와 피아노였다. 10년 전에 함께 설립한 회사를 떠났고 교회 가족, 친구들 그리고 아름다운 나라 스리랑카에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이전에 몰랐던 놀랍고도 실제적인 하나님을 발견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매우 가까이 끌어당기시므로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분의 자비는 매일 새롭고 아름답다.
셰릴 호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며 인도의 호수르에서 이 글을 썼다. 틈나는 대로 산에 달려가 하이킹하고 사진을 찍는다.
믿음에 뿌리내리다
‘믿음에 뿌리를 내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이크가 생각난다.
대학 육상 팀에서 가장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열성적이었던 마이크는 늘 반듯하게 수업을 준비했고 동기들을 도우며 봉사에 앞장섰다. 그리고 9·11 이후 의무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학기 마지막 날 그가 내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리라 믿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보증을 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곧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겠죠. ‘하나님은 당신을 내버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까요? 단지 믿음이 뿌리내려야겠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상기하면서요.”
마이크의 앞길이 험난한 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믿음이 뿌리내린다. …좋은 말이야.’ 이후 그에게 그 말을 다시 듣지 못했다.
7년 뒤 나는 소아과 병원 당직 근무 중에 다리가 절단된 아이의 가족을 만났다. 정형외과 의사가 도착했고, 그 의사는 어린 소년 옆에 앉아 과정을 설명해 주며 속삭였다. “나는 널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우리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널 버려두지 않으실 거야. 그분도 같이 계실 거야.”
의사는 일어서서 나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목사님, 가기 전에 기도 좀 해 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믿음에 뿌리를 내린 마이크였다.
몇 시간 뒤 우리는 앉아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아 정형외과 의사인 마이크는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자신의 경험으로 그는 소년에게 필요할 모든 치료법을 알고 있었고 그에게 마음속 깊은 친절을 베풀 수 있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내버리지 않으셨어요. 저 역시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고요. 저 역시 뿌리째 뽑히고, 다시 심겨졌죠. 그 새로운 뿌리는 더 깊이 자랐어요. 섬기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요. 다시 걷는 법을 배웠지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믿음에 뿌리내리는 길만이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임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딕실 로드리게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병원 원목이자 대학 교수이다.
만족
최근 오클랜드 타운 홀에서 열린 틱스(오클랜드의 싱어송 라이터) 콘서트에 갔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노래는 홀리 스미스와 함께 부른 ‘와카리아 마이(마오리어와 영어 가사로 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였다. 너무도 감동적인 무대였다. 그 노래는 최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노래였다. 그는 콘서트에서 얻은 음반 수익금을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모슬렘 공동체에 기부했다.
뉴질랜드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 후원, 기금 마련 행사와 더불어 뉴질랜드 전역에서 추모 장소도 마련했다. 사람들이 지도를 그리면서도 빼먹기 쉬울 정도로 뉴질랜드는 세계의 귀퉁이에 있는 외로운 나라다. 가장 추악한 증오로부터 면제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통제 불능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인생 항해의 지도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이토록 불확실한 시대에 견고히 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국가적인 큰 손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간단히 말해, 연합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지역 사회, 가족, 무엇보다도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삼하 22:32).
통제 불능의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안전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사벨라 맥퍼슨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에서 생명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상실의 얼굴에도 기쁨이
기쁨을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통, 손실, 심지어 학살극을 마주하며 어디서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따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그분의 손길로 얻은 구원을 기뻐했다. 출애굽기 18장 9~11절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기뻐한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함락당하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대해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 31:9). 25년 전 내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거의 35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다. 그동안 수차례 고문을 당했고 총살대 앞에 섰다가 사격수들 총탄이 빗나간 적도 있었다. 25년 전부터 자국에 살고 있는 지금, 내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오기 전에 르완다에는 ‘왕의 백성’이라 불리는 기쁨이 있었다. 오늘날 르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두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기에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 ‘은디 우문야르완다(Ndi Umunyarwanda)’는 ‘나는 르완다인이다.’라는 뜻이며 신뢰와 존엄성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든지 간에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기쁨을 경험할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애 3:21)이 되었다는 말씀은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이다.
욜라이 폴 우무레므예 센트럴르완다 필드지에서 선교 책임자로 봉사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자녀 다섯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