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구도자
“와헤구루, 와헤구루,* 예수님, 감사합니다.”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에 있는 산간 피서지 마을 마날리로 가는 도로 정체가 풀리는 가운데 이 말이 내 뇌리에 박혔다. 처음에는 이 감사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 못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내 친구의 삶에 성령이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셨는지를 하나님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2월에 마날리와 심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재림교회 학교에 같이 다니고 이후에도 인도 퐁디셰리 소재 공과대학에도 함께 다녔다. 그중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친구 한 명을 우연히 만났다. 마침 같은 시기에 나도 북부 인도에 갈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같이 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렇게 해서 퐁디셰리에서 쿨루, 마날리, 심라까지 나흘 동안 도로를 타고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첸나이의 무더위를 피해 히마찰프라데시에 있는 아주 멋진 눈을 볼 생각에 분위기는 온통 들떠 있었다.
여행 3일 차에 심라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타라 데비 사원을 찾았다. 급커브 경사로가 길게 나 있는 길을 따라 차를 몰아야 했다. 나는 멀미가 나서 도로를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는 도중 다른 사원이나 교회를 중간중간에 들렀다. 타라 데비 사원까지 빙 돌아서 가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우리 팀 리더였는데 그러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못했다. 마침내 사원에 도착했을 때는 배가 고프고 지친 데다 머리도 조금 어지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따라 대범하게 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몇 계단을 올라가서 카운터에 신발을 맡겼다. 날씨가 추워서 신발 없이 걷는 게 싫었다. 사원에 있는 정교한 목공 조각품을 감탄하며 보고 있는 사이 몇 분이 지나자 추위에 발이 얼얼해졌다. 그런 다음 사원 마당으로 나와 그림 같은 히말라야산맥을 응시했다. 풍경에 빨려 들어가다 보니 갑자기 평온이 찾아왔다.
내 일행은 사원 구내에서 주는 식사를 했다. 내가 그들을 기다리는 사이, 그 친구들의 질문인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닿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누구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매년 인도인 수백만 명이 성지 순례를 다니며 하나님과 진리, 평안, 번영을 찾으며 제물을 바치고 절을 한다. 바로 여기서 구도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전날 밤 저녁을 먹는데, 시크교도 친구가 내 전공이 종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나님께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다 순발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단순하고 간결하게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재빨리 기도했다. “주님, 주님을 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고는 그 친구에게 하나님이 누구냐는 질문이냐고 되물은 다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가족과 친구를 주시고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신 분이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내려보내어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셨다. 진리와 구원, 묵상에 대한 그 친구의 질문에 내가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놀라웠다.
그 친구의 질문이 진실하다는 사실은 그의 눈에 다 나타났다. 우월감이라든지 조롱의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 친구가 재림 학교에서 외웠던 첫 번째 성경 구절이나 예수님의 이야기, 안식일에 학교에 가지 않던 사실을 떠올리는 사이, 나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산꼭대기 타라 데비 사원 마당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내 친구에게 실체로 다가가게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을 찾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
*와헤구루(Waheguru)는 시크교 언어로 ‘능력의 하나님’을 일컫는다. 직역하면 ‘놀라운 주님’이라는 뜻이다.
비어세바 제이컵 최근 재림교회 국제대학원(AIIAS)을 졸업하고 앤드루스 제이컵과 결혼하여 인도에서 열성적으로 주님께 봉사하고 있다.